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승주Ivy Oct 26. 2022

20대들이 듣고 싶은 말은?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

여중 여고를 졸업해 남자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폭발했던 고등학교 시절 아빠 남동생 말고는 남자와 오랫동안 대화를 해본 적이 없다. 

대학생이 되자 남자에게 어떻게 말을 붙여야 할지 잘 몰랐고 어색했다. 아무것도 몰라 순수해 보이지만 잘못된 인연이 엮이면 휘청거릴 수 있는 위험한 시기. 


19살에서 1년이 지나 20살을 되자 고등학교 때 억제됐던 것들이 허락됐다. 전에 겪어 보지 못했던 자유에 신이 나 무엇을 먼저 해봐야 할지 설렜다. 동시에 내가 이런 것들을 해도 될까 하는 두려움의 경계의 선에 서서 넘을까 말까 수없이 고민했다. 


고작 한 살 더 먹었다고 합법적으로 혼자서 여행, 술, 키스, 섹스, 담배, 진한 화장, 클럽, 원나잇도 가능해진 20살. 갑자기 주어진 많은 자유지만 두려움보다는 설레고 기쁨이 앞섰다. 금지하면 할수록 호기심을 더 자극해해보고 싶게 만드는 욕망을 일으킨다. 

나에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도 잘 모른 채 안 해봤으니까 한 번쯤은 살면서 경험해봐야지 라는 마음으로 청소년에서 어른으로 가는 돌다리를 건너가기 시작했다. 


허용되지 않았던 것들을 경험하면서 상처를 받아 후회를 할 때도 있었고 궁금증 해소에 만족하기도 했다. 20대의 여정은 청소년기에 가졌던 억눌렸던 호기심들이 폭발하는 모험들의 연속이었다.


숙맥인 두 남녀가 만나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고 사랑하면서 서서히 어른이 되어가는구나라며 성숙해지는 줄 알았다. 

고작 6개월이 지났을 뿐인데 설렘은 없어진 지 오래, 드라마의 달콤한 대사들은 유효기간이 지나자 관계에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다. 


전혀 몰랐던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의 콩깍지에 씌어 가족에게도 잘 안 하는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 

어느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어 비밀을 공유하고 사랑한다는 이유로 난생처음 몸에 대한 평가를 받았다. 


'넌 팔다리는 말랐는데 뱃살이 너무 많아 아프리카 기아 몸 같다'라는 남자 친구의 한마디가 폭력적인 말인지도 모르고 그 한마디에 휘둘려 시작된 다이어트로 지금까지 휘청거리고 있다.

지금이면 '사랑하는 사람한테 폭력적인 말을 하는 사람이랑은 상대도 하고 싶지 않다, 눈앞에서 꺼져'라고 말하고 이별통보를 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내가 살을 빼면 그가 나를 더 좋아할 거야라는 마음으로 무리한 다이어트를 시작했고 배고픔을 참으면서 굶었다. 


하루에 3시간 운동까지 했다. 몸이 밥을 달라고 소리를 쳤지만 무시했다. 

내게 복수라도 하듯이 디저트에 대한 강한 집착이 생겼고 식탐도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굶다가 폭식을 반복하는 악순환의 지옥에 입성했다. 


자신감은 하락했고 자존감이 훼손됐다. 거기에 더해 원했던 대학에 못가 부모님을 실망시켰다는 생각에 취업을 잘해야겠다는 욕망도 있었다. 

159cm 키에 39kg 에서 60kg을 왔다 갔다 하며 폭식증과 취업 준비 전쟁을 치르느라 나의 20대는 이미 끝나 있었다. 


남의 말에 이리저리 휘둘리느라 나를 돌보지 못했다.

20대의 일상은 대부분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앞만 보고 달리는 때다.

그 과를 내가 좋아하는지도 모른 채 성적 맞춰서, 취업이 잘될 것 같아서 혹은 좋은 대학교니까 잘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일단 입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돈이 없어 서빙부터 카페 알바, 화장품 가게 알바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었고 돈이 생기면 저축보다는 남자 친구와 데이트, 친구들과 여행하면서 추억 쌓는 것이 더 중요했다. 


어느 날 불쑥 공격해온 그의 한마디에 다이어트 전쟁이 시작되었고 대학 졸업이 다가오면서 취업을 위한 스펙 만들기에 나의 에너지는 소진되어갔다. 


우리는 그 존재 자체로 각자만의 매력을 가지고 있고 눈부시게 아름답다. 살이 조금 찌면 어떤가, 패기 넘치는 청춘의 에너지를 새로운 경험에 썼을 때 살도 열정에 태워진다는 것을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며 모험하고 경험하는 대신 사회가 만든 평균적인 기준에 부합하느라 나이, 취업, 돈의 압박이 짓누르도록 스스로 허용했다. 


방 안에서 SNS로 행복해 보이는 남들의 삶을 보면서 자연스레 나와 비교를 했다. 

비교로부터 구매욕구, 식욕, 예뻐지고 싶은 욕구,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망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남들 기준에 맞추면서 살았다. 


나 자신은 사라졌고 빈 껍데기만 남겨졌다. 속이 텅 빈 껍데기의 공허감으로부터 허우적거리다가 껍질마저 메말라 바스러져 소멸하기 직전이었다. 

'길 위로 나가!' 내 마음속으로부터 간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엇에 이끌린 듯 밖으로 무작정 나가 걸었다. 마음속의 목소리가 고맙게도 내게 계속 말을 걸어 말동무가 되어줬다. 

말동무는 나를 익숙한 곳으로 이끌어 편안함을 느끼게 했고 새로운 곳으로 데려가 줘 즐거움과 설렘을 맛보게 해 주었다. 


평소에 먹어보지 못했던 음식점으로 안내해준 덕분에 평소에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져 고장 난 미각 세포를 치료해줬다. 

동네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여유를 선물해주기도 했다.

집 안에 있을 때는 몰랐던 나의 모습들을 찾아가는 시간이었다. 이 여행으로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힘을 길렀다. 


밖을 떠돌아다니다 보니 먹구름이 가득해 웅장해 보이는 하늘도 좋았고, 비가 내려 흙냄새가 짙어져 그리움의 감정이 몰려오는 시간도 소중했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걸을 때면 소용돌이를 일으켰던 마음이 잔잔해지는 순간에 감사했다. 


속이 텅 빌 때면 밖으로 나가 걸었다. 하염없이 걷고 또 걷다 보니 사계절을 걸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걸으면서 계절마다 다른 공기와 냄새를 잊지 않으려고 세포에 저장했다. 


촉촉한 습기를 머금은 싱그러운 봄의 흙냄새와 꽃의 향기는 사랑을 샘솟게 한다. 

몽글몽글한 마음이 희망을 싹트게 하고 봄 향기에 취해 과감해지기도 한다. 


여름을 걸을 때면 길 위의 생명체들은 타오르는 태양과 손잡고 연녹색부터 진녹색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춘다. 

열정이 가득해 습한 이곳은 내 열정을 태울 수 있는 최고의 장소였다. 


다채로운 색에 뒤섞여 나를 마음껏 뽐내 춤을 춰도 부끄러움을 느낄 수 없던 가을.

새 구름이 펼쳐진 푸른 도화지 위에 자신만의 고유한 색으로 물들인 나무들과 보라색 드레스를 입은 꽃들이 손을 맞잡고 춤을 추며 진한 향을 풍겼다. 


참을 수 없는 졸음에 찬물을 끼얹으면 정신이 번쩍 드는 것처럼 겨울의 공기는 매섭고 차가워 온 몸의 세포들을 깨웠다. 

거센 북풍이 안면을 강타할 때면 추위를 견디고 있는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대단해 보였다. 

고독과 쓸쓸함을 안고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강인한 그들에게 내면의 단단함을 배웠다.


길 위에서 마주하는 생명들과 보내는 사계절은 방에서 절대 찾아볼 수 없는 값진 스승님이었다.


20대는 나 자신이 산산조각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형체가 없었다. 흩어진 조각들을 찾아다니느라 길 위를 하염없이 돌아다녔다. 


매일 다른 하늘 아래에서 지루하지 않고 사계절을 맛볼 수 있는 행복을 느꼈고 소중한 관계를 잃기도 해 마음이 아팠을 때도 있었지만 새로운 만남으로 치유하고 다양함도 배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 비교를 하며 사는 삶에서 벗어나 흩어진 조각을 찾으면서 나만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여정이었다. 


우리는 이 순간에도 과거는 후회하고 현재는 남들과 비교하고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 지나가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과거나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걱정으로 지금 이 순간을 지옥으로 만들어선 안된다. 마음이 지옥일 때는 행복도 지옥으로 보일 테니까.


그때로 돌아가서 후회됐던 선택을 바꿀 수 있다면 당장 돌아가서 바꾸고 싶지만, 후회했던 선택들도 그 당시에는 잠을 못 이루며 내렸던 최선의 선택이었을 테니 그마저도 받아들이고 사랑하기로 했다.


40대가 됐을 때 30대의 여정을 바라보며 '최선을 다해 나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라고 말하며 얼굴에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남은 30대도 부지런히 길 위를 돌아다니며 나답게 조각해보려 한다.

이전 02화 우리가 몰라서 저지르는 실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