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승주Ivy Oct 27. 2022

한국 냄새를 토론토에서 찾을 수 있을까

유독 한국의 냄새를 맡고 싶은 날이 있다. 

길가에 풍기는 삼겹살, 분식집 냄새가 그리워 무작정 지하철을 타고 코리아 타운에 간다. 

강아지 마냥 냄새를 한창 맡다가 배가 고파져 떡볶이와 김밥을 먹으며 울적한 마음을 달래곤 한다. 

떡볶이와 김밥을 같이 입안에 오물 거리면 매콤한 고추장 양념과 김밥의 다양한 채소들이 입에 어우러져 행복했다.


어릴 때 케첩 맛이 나는 떡볶이를 자주 해줬던 엄마표 떡볶이, 학교 마치고 학원 가기 전 매일 들렸던 학교 앞 분식점, 

점심시간에 급식 먹고도 떡볶이 배는 따로 있어 친구와 까르르 웃으며 분식집으로 달려가던 중고등학교 시절, 

주머니에 돈은 없지만 떡볶이로 배와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줬던 대학교 시절, 

추억의 양념이 묻은 떡볶이는 그리움에 사무칠 때 꺼내볼 수 있는 가장 맛있는 앨범이다.


한국에 대한 그리움의 감정이 짙어질 때면 폭식증에도 영향을 미쳤다.

추억의 과자 감자깡, 고구마깡, 새우깡, 조과 유청, 쌀로별, 오징어 땅콩 등을 사 와 펼쳐놓고 먹기도 했고 파김치, 각 김치, 무말랭이, 총각김치, 배추김치를 종류별로 사와 따끈한 밥에 얹어서 김에 싸서 먹기도 했다. 


폭식증으로 모든 것이 다 엉망이고 세상에 나 혼자라고 느껴질 때 동네 근처에 있는 숲으로 무작정 달려갔다. 

자작나무, 단풍나무, 참나무, 은행나무, 소나무들은 언제나 두 팔 벌려 '어서 와' 하며 맞이해줬다. 

저 멀리 보이는 엄마를 보고 어린아이가 달려가는 것처럼 나도 반가운 마음에 나무들에게 달려가곤 했다. 


굵은 기둥을 가진 큰 참나무를 두 팔 벌려 안았지만 오히려 나무가 나를 품어줬다. 

나무의 꺼끌꺼끌한 껍질을 만지작 거릴 때면 '우리 강새이 왔나'하던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나무의 피부는 비바람, 폭설 등의 역경들을 오랜 세월 동안 겪어낸 만큼 단단했고 강인함이 느껴졌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묵묵히 끝까지 들어줬다.


3월에 찾아가면 애기 나뭇잎이 세상에 나와 연둣빛으로 물들였다. 4월이 되면 꽃을 피우며 예쁜 미모를 뽐냈고 잔잔한 꽃향기를 풍겼다. 


5월이 되면 꽃가루가 흩날렸고 가을에 열매를 맺기 위해 본격적으로 일을 했다. 

매미들의 합창을 배경음악으로 삼고 나뭇잎들은 태양과 협동했다.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공급했고 자신에게 서식하는 여러 생명체들에게 식량도 공급했다.


9월에는 청설모와 다람쥐들에게 도토리를 나눠주고 겨울을 나기 위해 나뭇잎 가족들도 분주해졌다. 

맨 꼭대기에 있는 첫째 언니가 앞장서서 진정한 자신으로 거듭나는 시기를 맞이한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로 태양빛에 서서히 물들어간다. 

모든 만물과 조화를 이루며 개인화를 하는 눈부신 시기이다.

큰언니 따라 둘째, 셋째 언니, 가장 아래에 자리 잡은 막내들도 11월 마지막까지 자신만의 색으로 세상을 물들여가며 아름다움, 감사함, 그리고 아쉬움을 선물해준다. 

마지막 잎새가 바람에 휘날리며 겨울의 시작을 알린다. 

먼저 간 언니들은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남긴 채 대지의 어머니 땅의 품으로 돌아가 겨울맞이를 비로소 완성한다.  


매년 같은 일을 반복하는 나무지만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봄이 되면 다시 자신으로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우리도 인생에 한 번은 자기 자신으로 온 마음을 다해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좌절과 기다림이 동반하더라도 같은 길을 걸어가는 나무와 벗을 삼아 나아간다면 한 뼘 더 성장한 나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소중한 사람과의 추억을 향기와 냄새로 기억하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한국의 냄새를 찾아 토론토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곤 한다.


토론토의 5월의 봄, 8월의 여름, 9월의 가을 그리고 12월 초의 겨울은 한국의 사계절에 가장 흡사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특히 비가 내릴 때면 흙과 나무는 진한 냄새를 풍겨내기 때문에 비 온 후 항상 숲과 공원으로 달려갔다. 


고국의 향을 찾아다닐 때 비슷한 냄새를 맡기라도 하면 나의 코는 바빠졌다. 주머니에 냄새를 담아올 수 있다면 좋으련만, 

세포 속에라도 간직하려고 크게 숨을 들이마시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매일 다른 태양과 구름의 합작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토론토에서 버틸 수 있었던 힘이었다.


맑은 하늘에 다양한 모습을 띈 구름은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풍부한 감정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기 때문에 구름이 어느 정도 있는 푸른 하늘을 좋아했다.


5월 봄 하늘 위로 장엄하게 솟아 오른 뭉게구름을 보고 있으면 그리스 로마 신들이 그 위에 신전을 짓고 살 고 있을 것 같은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


9월 동쪽 끝 편에서 서쪽 끝까지 펼쳐진 새털구름은 천사의 날개를 연상시켰다. 천사가 하늘 위에서 날개를 펼쳐 지상을 품고 있는 듯해 좋은 일만 일어날 것 같은 따스함이 마음속에 깃들었다.


구름은 매일 다른 모습으로 쳇바퀴 같은 하루의 지루함을 덜어내고 새로움을 선물해줬다. 

수많은 인류들이 구름을 통해 상상력을 키웠고, 위대한 신화를 낳았고, 예술을 탄생하게 했듯이 나만의 도화지에 한 자 한 자를 꾹꾹 눌러 적었다.


태양은 구름 이불을 걷어내고 수평선 침대에서 기지개를 켰다. 모든 만물은 어둠에서 깨어났고 나 역시도 피어오르는 생명력을 받아 하루를 시작할 용기를 얻었다. 


태양이 수평선 침대에 누워 잠을 잘 때면 분홍과 보랏빛이 섞인 매혹적인 자태를 뿜어내며 보고 싶은 그대들을 불러들였다. 


언젠가 만날 그대들을 생각하며 눈물이 차오를 때면 구름과 태양도 눈시울을 붉게 밝혀 같이 슬퍼해줬다. 

덕분에 보고 싶은 이들과 체온을 느끼고 함께 할 날들을 기대하며 그대들을 마음에 새겼다.


어느 9월 중순, 삶이 바빠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지쳐 터벅터벅 걷던 퇴근길, 해가 짧아져 마음이 뒤숭숭해졌고 가족들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가끔은 보고 싶은 사람들과 고국을 떠나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내가 토론토에 있어야 하는 이유들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막상 매일 보면 티격태격할 엄마인데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다. 

자신감이 떨어져 어깨가 축 처졌을 때 이름보다는 큰 딸, 공주, 내 이름 마지막 글자를 애교 담아 불러주는 엄마의 목소리를 기억해 힘을 얻는다.


아직 못한 그녀와의 여행, 같이 걷기, 단 둘이 데이트하기, 영화보기, 늦기 전에 엄마와의 추억 앨범을 만들어야 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나중에 기회가 있을 거라며 미뤄왔다. 

보고 싶어 막상 전화하면 항상 그랬듯이 티격태격한다. 투닥거리면서 느껴지는 그녀와 나의 편안한 숨결들이 좋다. 


별 내용 없는 대화에서 오는 안정감과 따스함이 좋다. 상대방 기분을 살피지 않고, 눈치 보지도 않고, 내 솔직한 마음을 입 밖으로 꺼내 놓을 수 있어서 좋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내편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에서 오는 모든 시련들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물론 잔소리와 걱정들이 그녀의 입에서 어김없이 나온다. 쓸데없는 걱정들로 화가 불쑥 올라오기도 한다. 


'결혼할 나이가 됐다, 이제 손주도 보고 싶다'는 끝없는 잔소리는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 싶은 충동이 들게 하지만 엄마니까 할 수 있는 잔소리라고 받아들였다. 

이 잔소리마저도 그리워할 날이 올 것임을 알고 있기에 한쪽 귀로 흘리고 넘어갈 수 있었다.


여전히 서른이 넘은 자식을 걱정하는 엄마에게 "이제 우리 다 취업하고 잘 살아가고 있으니 엄마가 진짜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제2의 인생을 살아보는 게 어때?."라고 말하니


"제2의 인생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지금 행복한데 이때까지 해왔던 것처럼 살아가면 되지 제2의 인생은 무슨, 너도 자식 놓고 살아봐라 엄마처럼 된다. 

엄마로서 자식 걱정하는 건 당연한 거다. 엄마는 아직도 너희들 필요한 거 챙겨주고 맛있는 요리 하는 게 즐겁다."


우리를 위해 희생하는 엄마를 보며 자신만의 삶을 놓치는 게 아닐까 걱정되었지만 내 기준으로만 생각하고 판단 내린 것이었다. 


본인이 진심으로 기뻐서 행복해서 하는 일을 내 편협한 생각으로 막아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찬란했던 여름이 가고 진한 가을의 향과 함께 추석이 성큼 코 앞으로 다가올 때면 엄마 밥이 먹고 싶었다. 


집밥이 그리워 한국 마트로 달려가 낙지볶음 재료, 상추, 깻잎, 청양고추, 마늘, 각종 나물 반찬들을 양손 가득 담아 들고 온다. 

백종원 선생님 유투버를 보고 따라 하면 맛은 있지만 엄마의 손맛은 빠져 내가 찾던 그 맛이 아니었다. 


나의 성장 시기와 함께했던 그녀의 맛을 토론토에서 찾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르는 일이지도 모른다. 


엄마의 손맛을 찾는 과정에서 그녀를 그리워하는 먹먹한 마음이 좋다. 이 마음이 좋아 술래 없는 숨바꼭질을 계속할 예정이다. 


학창 시절에는 엄마가 밥을 해 놓아도 나는 군것질로 밥맛이 없어 먹는 둥 마는 둥 했었고 

그런 나의 모습에 엄마는 이 반찬 저 반찬 권유했지만 사춘기로 삐딱해져 있던 나는 '먹기 싫어'라며 방문을 쾅 닫았던 기억이 많아 가슴이 저릿하다. 


직장도 다니셨던 엄마는 집안일을 놓고 멀리 떠나고 싶은 마음도 있으셨을 텐데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매일 밥을 하셨을까. 

왜 엄마가 밥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아빠에게는 밥해달라고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을까.


그녀가 집밥의 그리움을 선물해준 것처럼 나도 더 늦기 전에 엄마에게 맛있는 한 끼를 만들어 선물하리라 다짐한다.


고난과 역경이 닥칠 때마다 꺼내 보면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추억의 앨범 만들기에 최선을 다 하려고 한다. 


후회의 그리움이 아니라 행복한 그리움이 되도록. 

이전 03화 20대들이 듣고 싶은 말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