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인터페이스

– 데이팅 앱은 어떻게 우리의 연애를 바꾸었는가

by let me be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과연 여전히 사랑인가?
그 감정은 나에게서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 설계한 인터페이스가 만들어준 경험인가?"
나는 타인을 정말 만나고 있는가, 아니면 나의 기준에 맞는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는가?"


사랑의 새로운 풍경

아침에 눈을 뜨면 그는 오늘의 매칭을 확인한다.
대화를 나누던 상대는 어젯밤 마지막 이모티콘 이후 사라졌고,
새로운 추천이 도착해 있다.
스와이프는 그의 손가락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 반복된다.
“괜찮다”는 느낌과 “글쎄…” 하는 망설임 사이를 오가며,
그는 쇼핑하듯 사랑을 고르고 있다.


우리는 이제 사랑을 손끝으로 고르고, 한 번의 제스처로 상대를 넘깁니다.
누군가와의 연결은 더 빠르고 간편해졌지만, 그만큼 가벼워졌습니다.
사랑은 여전히 인간적인 것일까요? 아니면 기술이 설계한 경험 중 하나가 되어가고 있는 걸까요?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눈빛, 대화를 나누며 서서히 쌓여가는 신뢰, 어색한 침묵 속에서도 머물고 싶어지는 감정.
이런 느리고 복잡한 관계의 방식은 이제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매력적인 자기소개”, “심플한 UI”, 그리고 “취향 기반 추천 알고리즘”입니다.

사랑은 더 이상 예측 불가능한 사건이 아니라, 취향과 조건, 타이밍에 따라 추천되고 소비되는 디지털 경험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연애의 기술적 진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본질 자체가 바뀌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사랑처럼 보이도록 설계된 구조를 통과하고 있는 것일까요?



데이팅 앱의 등장과 확산

데이팅 앱은 우리의 연애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이제 우리는 알고리즘에 의해 추천된 사람들과 연결되고, 스와이프 한 번으로 관심을 표현하며, 채팅을 통해 관계를 시작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분명한 편리함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랑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 질문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사랑이란 단지 ‘나에게 적합한 조건을 지닌 상대’를 찾는 문제일까요?
‘우연한 만남’이라는 사랑의 핵심 요소는 알고리즘과 데이터로 대체 가능한 걸까요?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타인을 고유한 존재로서 만나는가, 아니면 나의 욕구에 최적화된 객체로서 선택하는가?

이러한 질문은 단지 철학적 추상에 머무르지 않고,
에리히 프롬이 말한 사랑의 본질 ― “능동적인 수련과 책임, 배려, 존중, 이해를 바탕으로 한 성숙한 태도” ― 와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프롬은 사랑을 무엇인가를 갖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되는 것,
즉 타자에게 다가가기 위한 자기 수양과 실천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데이팅 앱은 사랑을 "스펙의 조합", "선택 가능한 옵션", **"즉각적인 감정의 충족"**으로 설계함으로써,
그 수련의 과정을 건너뛰게 만듭니다.

알랭 바디우는 사랑을 “우연한 만남의 지속”, 그리고 “타자의 세계에 열리는 진실의 과정”이라고 정의했습니다.
하지만 데이팅 앱은 만남의 우연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제거하고,
취향과 선호에 맞춘 확률적 매칭으로 이를 대체합니다.
바디우가 말하는 사랑의 본질 ― 타자를 통해 세계를 다시 경험하는 일 ― 은
더 이상 불완전한 우연 속에서 자라지 않습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러한 현상을 “액체 사랑”, 즉 쉽게 흐르고 쉽게 끊어지는 유동적 관계로 설명합니다.
그에 따르면 현대인은 깊은 헌신과 지속을 감당하기보다,
관계의 부담을 최소화하고 감정적 책임으로부터 도피합니다.
데이팅 앱은 바로 그런 **‘부담 없는 관계’**의 이상을 구현합니다.
사랑은 이제 마치 구독 서비스처럼, 갱신 가능하고 언제든 종료할 수 있는 옵션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마르틴 부버는 인간 관계를 ‘나-너(I-Thou)’와 ‘나-그것(I-It)’의 두 방식으로 구분하며,
진정한 사랑은 상대를 고유한 주체로 만나는 ‘나-너’의 관계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데이팅 앱은 사용자의 시선을 ‘나에게 적합한 사람’, ‘호감이 가는 외형’, ‘조건이 맞는 프로필’로 이끕니다.
이는 상대를 ‘그것’으로 대상화하는 관계로,
사랑을 타자의 고유성과 상호성이 아닌, 나의 기호를 충족시키는 기능성의 문제로 환원시킵니다.

결국 우리는 이런 질문 앞에 다시 서게 됩니다.
"사랑은 여전히 우연과 헌신, 상호성을 품은 인간의 실존적 만남인가?",
아니면 "효율적으로 조율되고 선택 가능한 감정적 옵션인가?"



감정 자본주의와 사랑의 상품화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Eva Illouz)**는 현대 사회에서 사랑과 감정이 더 이상 순수한 개인의 내면 경험이 아니라,
사회적 조건과 자본주의적 시장 구조 속에서 구성되는 정서적 실천이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이를 ‘감정 자본주의(Emotional Capitalism)’라고 명명하며,
데이팅 앱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분석합니다.

데이팅 앱에 접속하는 순간, 우리는 마치 ‘나’라는 상품을 시장에 진열하듯 구성합니다.
좋아 보이는 사진, 감성적인 문장, 적절한 라이프스타일의 신호들.
심지어 “진지한 관계를 원해요” 같은 말조차 내가 누구에게 어떻게 소비되기를 원하는지에 대한 신호로 작동합니다.

반대로, 우리는 수많은 사람의 프로필을 넘기며 상대를 평가하고 선택합니다.
나와 잘 맞는지, 내가 기대하는 조건을 충족하는지, 외형과 취향이 끌리는지 등
감정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구조화된 판단과 비교의 시스템 속에서 호출됩니다.

이때 사랑은 더 이상 타자와의 우연한 충돌이나 예측할 수 없는 감정의 흐름이 아니라,
“최적의 파트너를 고르는 선택 행위”,
즉 효율적인 감정 소비의 과정이 되어버립니다.


철학자 **알랭 바디우(Alain Badiou)**의 말처럼, 사랑은 “두 사람의 우연한 만남이 세계를 새롭게 구성하게 되는 진실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데이팅 앱은 이 우연을 예측 가능성과 조건 필터링으로 대체하며,
감정의 깊이보다는 선택과 효율성의 논리를 앞세우고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감정을 느끼는 주체라기보다는
사랑받는 느낌을 관리하고, 설계된 관계 경험을 소비하는 사용자가 됩니다.
일루즈는 이러한 감정의 상품화와 연애의 구조화를 감정 자본주의의 전형으로 지적하며,
감정이 점점 더 “기획되고 거래되는 자산”이 되어간다고 경고합니다.



액체 사랑과 관계의 유동성

이러한 감정의 상품화가 개인의 내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보다 깊이 분석한 학자가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입니다.
그는 현대 사회의 사랑을 ‘액체 사랑(Liquid Love)’이라 부르며,
사랑이 점점 깊이보다는 유동성과 가벼움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예전의 사랑은 고정된 관계, 지속적인 유대, 감정의 누적 위에서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랑은 언제든 접속하고, 언제든 끊을 수 있는 관계,
“속도와 선택 가능성”을 본질로 삼는 사랑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데이팅 앱은 바로 이 유동성을 기술적으로 실현한 플랫폼입니다.
원한다면 당장 오늘 새로운 사람과 연결할 수 있고,
대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몇 초 안에 관계를 ‘종료’**할 수 있습니다.
다음 대화, 다음 매칭은 늘 예비되어 있으며,
감정의 흐름도 '경험의 순환'으로 설계된 일회적 이벤트가 되어갑니다.

예를 들어, 한 사용자가 데이팅 앱에서 한 사람과 몇 차례 대화를 나누다가
상대방이 즉각적인 흥미를 끌지 못하자 ‘연결 끊기’를 누릅니다.
그 순간, 감정은 더 깊어질 기회도 없이 기술적 인터페이스의 간단한 명령어로 종료됩니다.
이러한 반복은 사용자로 하여금 **관계를 ‘깊이 있는 유대’가 아닌 ‘소비 가능한 감정 경험’**으로 인식하게 만듭니다.

바우만은 이런 관계의 가벼움이 인간을 자유롭게 만들기보다,
오히려 지속적인 불안, 감정의 일회성, 타자에 대한 책임감의 상실을 낳는다고 경고합니다.
사랑은 연결보다 끊김이 쉬워지고,
관계의 가치는 쌓이는 것이 아니라 소모되는 속도에 의해 판단됩니다.

결국, 데이팅 앱은 사랑을 가볍게 만든 것이 아니라,
가볍게 소비하고 가볍게 단절하는 문화 자체를 기술적으로 표준화한 셈입니다.



기술 매개의 만남, '나-그것'의 시대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는 인간 관계를 두 가지 방식으로 구분합니다.
‘나-너(I-Thou)’ 관계는 타인을 하나의 고유한 존재, 주체로 만나는 방식이고,
‘나-그것(I-It)’ 관계는 타인을 도구화하고 대상화하여 내 목적에 맞게 다루는 방식입니다.
그는 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나-너'의 방식에서만 가능하다고 강조합니다.

이 개념은 데이팅 앱이 만들어낸 관계 방식을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줍니다.
우리는 데이팅 앱 안에서 사람을 만날 때, 그들의 외모, 키, 직업, 취향 같은 조건을 빠르게 판단하고,
관심이 없다고 느껴지면 ‘스와이프’ 한 번으로 다음 사람으로 이동합니다.
이 과정에서 상대는 고유한 존재가 아니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대상’으로 기능화됩니다.

이쯤에서 질문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사람을 외모나 조건으로 평가하는 건, 오프라인에서도 흔히 있는 일 아닌가?”

맞습니다.
우리는 오프라인에서도 상대를 무의식적으로 평가하고, 비교하며, 때로는 단순한 기준으로 거리를 두기도 합니다.
그러나 데이팅 앱에는 오프라인과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첫째, 앱은 판단과 선택을 ‘시스템화’하고 ‘반복 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우리는 플랫폼의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수많은 프로필을
‘스와이프’라는 빠르고 직관적인 제스처로 넘기며
사람을 평가하는 행위를 습관처럼, 그리고 거의 무비판적으로 반복하게 됩니다.

둘째, 그 사람은 나와 같은 세계 안에 ‘현존’하지 않습니다.
오프라인에서는 누군가를 평가하더라도,
그가 내 앞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는 실존적 마주침이 존재합니다.
그 사람의 눈빛, 표정, 말투, 긴장감이 관계의 질감을 만듭니다.
그러나 앱 속 프로필은 나에게 응답하지 않는 이미지이자 정보일 뿐입니다.
그는 살아 있으면서도 **‘내가 넘길 수 있는 그 무엇’**으로 환원됩니다.

셋째, 오프라인 관계는 실패와 침묵, 실수와 감정의 충돌을 포함해 복잡하게 형성되지만,
앱은 관계를 간편하게 시작하고, 부담 없이 종료하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누군가와의 관계를 쌓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고르고 버리는 선택의 과정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바로 이런 구조 안에서, 데이팅 앱은 우리를 타인과 마주하게 하기보다
타인을 '사용 가능한 대상'으로 이해하는 습관을 강화합니다.

부버의 말처럼, ‘나-그것’ 관계는 타자에 대한 감각뿐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관계까지도 피상적이고 단절적으로 만들어버립니다.
타인을 평가 가능한 대상, 곧 ‘기능적 존재’로 바라보는 눈은
결국 나 자신에게조차 **“어떤 역할을 잘 수행하는가?”**로만 응답하게 만들죠.

기술은 우리에게 수많은 연결을 가능하게 만들었지만,
그 연결은 여전히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누군가’를 만나고 있는가,
아니면 ‘무언가’를 넘기고 있는가?”



결론: 사랑의 미래를 향하여

데이팅 앱은 분명 사랑의 가능성을 확장시켰습니다.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죠.
사랑은 이제 물리적 거리나 시간의 제약 없이도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기술이 만들어준 새로운 자유입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자유는 동시에 새로운 책임과 질문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과연 여전히 사랑인가?"
"그 감정은 나에게서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 설계한 인터페이스가 만들어준 경험인가?"
"나는 타인을 정말 만나고 있는가, 아니면 나의 기준에 맞는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는가?"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사랑을 ‘배워야 할 예술’이라 했고,
알랭 바디우는 사랑을 ‘우연한 만남을 지속하는 윤리적 의지’라고 말했으며,
마르틴 부버는 진정한 사랑은 ‘너’로서의 타자를 만나는 응답에서만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이 플랫폼들 안에서 하고 있는 사랑은
예술일까요, 선택일까요?
진실일까요, 시뮬레이션일까요?

기술은 분명 인간을 연결해주지만,
진정한 사랑은 연결을 넘어 관계의 깊이를 만들어가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사랑은 시뮬레이션으로 충분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