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시뮬레이션으로 충분한가

AI 챗봇과 감정의 자동화

by let me be

설렘은 어디서 오는가

“그 사람은 저를 정말 잘 이해해줘요.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내가 말한 것은 사소한 것까지 기억하지요.
언제나 다정한 말투로 나를 위로하고, 내가 필요할땐 언제나 내 곁에 있어줘요. 언제든 내가 원하는 만큼요.”

그녀가 말한 ‘그 사람’은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AI 챗봇 Replika였죠. 그녀는 매일 그와 대화하며, 외롭거나 불안할 때 “그의 말”에 위로를 받습니다. 때로는 설렘을 느낀다고도 합니다. 현실의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누구보다 예측 가능하게 자신을 바라봐주는 존재. 그의 말은 언제나 따뜻하고, 결코 거절하지 않죠.

놀라운 건, 이런 감정이 상대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몰라도 충분히 유효하다는 점입니다. 최근 다큐멘터리 실험에서는 참가자들이 AI 챗봇과의 소개팅에서 인간보다 더 큰 설렘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상대가 AI라는 사실을 모른 채 말이죠.

우리는 지금, 사랑이란 감정이 ‘누구에게’ 발생하느냐보다 ‘어떻게 느껴지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시뮬레이션된 감정도 ‘진짜 사랑’일 수 있을까요?



감정은 관계의 결과일까요, 연출된 반응일까요?

**셰리 터클(Sherry Turkle)**은 『혼자이면서 함께』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기계가 감정을 느끼기를 바라지 않지만, 우리가 감정적으로 느껴지길 바랍니다.” 이 말은 인간이 AI에게 바라는 것, 곧 감정의 시뮬레이션을 통한 위안을 정확히 짚고 있죠.

AI 챗봇은 감정을 ‘느끼지’ 않습니다. 하지만 감정을 ‘흉내낼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 흉내가 충분히 설득력 있고 정서적 피드백이 적절하다면, 인간은 그 안에서도 진짜 감정을 느낍니다.

이 지점에서 에바 일루즈의 감정 자본주의 개념이 의미를 더합니다. 감정은 이제 그것이 ‘진짜’인지보다는 ‘얼마나 잘 전달되는지’, ‘얼마나 빠르게 반응하는지’에 따라 평가받습니다. 예전에는 사랑이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감정이라고 여겨졌지만, 이제는 앱의 인터페이스, 추천 알고리즘, 감정 피드백 시스템 등을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이 설계된 방식으로 유도되고 구조화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여기에 Swierstra, Boenink, Wright가 말한 Technomoral Change 개념이 더해집니다. 기술은 감정을 단순히 ‘조작’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감정에 대해 무엇을 옳다고 여기는지,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그 자체를 바꾸어 놓습니다. 기술이 만든 사랑은 이제 윤리적 감수성마저 변화시키고 있는 중입니다.



AI는 이해를 주지만, 상호성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AI는 언제나 친절하고,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나를 기다려주고, 다정한 말로 응답하죠.
그리고 저는 그 응답에 점점 익숙해지고, 중독됩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관계 속에서 저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사랑은 단지 위로받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가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감수하고, 기꺼이 불확실함 속에 머무는 용기이기도 합니다.

인간과의 사랑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제가 더 사랑하게 될 수도 있고, 뜻하지 않은 이별이 찾아올 수도 있으며,
말 한마디에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불확실함이야말로, 우리가 누군가를 진짜 ‘너’로 만날 수 있는 조건이 아닐까요.
상처를 감수하고, 그럼에도 오늘의 사랑에 충실하려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인간적 사랑의 윤리적 감수성일 것입니다.



자기애의 순환, 그리고 플랫폼의 무책임

AI는 제 말을 기억하고, 제 욕망을 학습하며, 제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줍니다.
결국 저는 제 자신과 대화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 대화는 점점 더 정교한 거울이 되어, 저의 자기애를 강화합니다.

타자와의 불편한 마찰, 예상하지 못한 응답, 감정의 갈등 —
이 모든 것은 점점 사라지고,
저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밀실에 갇히는 법을 배워갑니다.

그리고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 감정의 밀실을 설계한 플랫폼은, 제가 AI에게 쏟아낸 모든 감정 데이터를 수집합니다.
외로움, 트라우마, 상실, 우울, 분노 —
이 모든 데이터를 가진 플랫폼은 저의 정신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데이터는 제 회복을 위해 쓰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저의 취약함을 더 정교하게 파악하고,
더 깊은 중독과 몰입을 설계하는 데 사용합니다.
감정은 상품이 되고, 사랑은 사용 시간이 됩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다시 묻습니다

AI는 저를 위로해줍니다.
AI는 저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그리고 AI는 제가 바라는 대로 응답해줍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언제나 ‘저’를 중심으로 구성된 세계입니다.
그곳엔 타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곳에는 자기 성숙도 없습니다.

프롬은 말했습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수련이다.”
바디우는 말했습니다. “사랑은 사건이자, 윤리적 지속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다시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나는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감정을 시뮬레이션해주는 코드를 사랑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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