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 시술 기록
시험관 시술을 시작하기로 결정하다.
혹독한 추위의 계절에 우리 부부는 시험관 시술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시험관 시술을 하는 과정이 여자에게 몹시 힘든 일이 될 거라는 사실과 우리의 재정적인 부분을 고려해 딱 두 번까지만 시도해 보고 포기하자고 남편이 제안했고, 나는 수락했다.
세 번의 인공수정 실패 후, 작년 10월과 11월 두 달을 쉬는 동안 오랜만에 몸과 마음이 홀가분했더랬다. 시간 맞춰 약을 챙겨 먹지 않아도 되고, 때맞춰 주사를 맞거나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고, 약 때문에 오락가락했던 기분도 평정을 되찾았으며, 약을 먹은 뒤로 내내 아팠던 손가락 관절들도 편안해졌고, 피로와 무기력도 나아졌다. 엄격하게 식단이나 몸 관리를 해온 것도 아니면서, 운동을 제대로 하지 않고 먹는 것도 건강하게 먹지 않았다는 자책으로 마음 한 켠이 무거웠는데, 그런 무거운 기분도 떨쳐버릴 수 있었다. 과자도 초콜릿도 떡볶이도 피자도 마음껏 먹었다. 같은 일상이지만 통제받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생을 낙관하게 되기도 했다.
그런데 12월이 가까워지자 마음이 조금씩 동요하기 시작했다. 몇 달 사이에 나의 난소나 자궁이 눈에 띄게 늙어버리거나 기능을 상실하지는 않겠지만, 12월이라는 시기 자체가 어떤 임계점처럼 느껴져서 '12월이 지나면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된다,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된다는 것은 그만큼 더 늙게 되는 것과 같다'로 생각이 흘러, 12월이 지나면 내가 엄청나게 늙어버릴 것 같은 근거 없는 불안에 휩싸였다. 그래서 11월 말에 남편과 시험관 시술에 대한 합의를 끝냈다. 사실 아기를 향한 간절함 보다는 생물학적 한계에 대한 압박에 쫓기듯 내린 결정이 맞다. '나중에 후회하기 싫다, 지금 가능한 것을 해보자'는 기회주의자 같은 선택도 맞다. 하지만 아기가 있는 삶을 바라는 마음도 맞다. 우리 부부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새로운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을 기대하고 있었다.
여정의 시작 - 기대와 실망의 반복
12월 초, 비장하게 생리의 시작을 맞이하고, 본격적인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다. 긴 대기 끝에 마주한 의사는 변함없이 미소 띤 얼굴로 우리 부부를 맞이했고, 여러 검사와 약물을 처방해 주었으며, 우리는 전보다 많은 수의 주사기들과 약병이 든 도시락 가방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매일 산책을 하고 어쩌다 달리기도 시작했으며, 비가 오는 날에는 아파트 계단을 오르며 운동을 쉬지 않았다. 또한 안 먹던 아침도 먹기 시작했고, 하루에 한 번은 찐 채소로만 이루어진 식사를 했다. 그리고 영양제도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그와 동시에 시험관 시술을 하는 다른 사람들의 체험기나 영상기록을 찾아보며 희망을 품었다가 걱정에 휩싸이기를 반복했다. 인터넷에는 누구는 난자를 20개 채취했는데 누구는 난자를 2개밖에 채취하지 못했다는 이야기, 주사가 많이 아프다는 이야기, 주사를 많이 맞아 시퍼렇게 멍이 든 복부 사진들, 난자를 많이 채취한 탓에 배가 붓고 아파 며칠을 침대에 누운 채로 보냈다는 이야기, 그렇게 채취했으나 공난포가 많아 실제로 배양에 성공한 배아가 거의 없다는 이야기, 난자를 몇 개밖에 채취하지 못했는데도 성공했다는 이야기 등등 '평균적으로 어떻다'라고 말할 수 없는 매우 다양한 사례들이 넘쳐나 기대와 실망 사이를 오락가락하게 만들었다. 내 나이를 고려했을 때 기대를 내려놓는 편이 타당했지만, 나는 내심 운동도 하고 밥도 잘 먹고 영양제도 잘 먹고 있으니 5~9개 정도의 난자를 채취해서 3~4개 정도의 배아는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기대를 했더랬다.
※ 난포: 난자가 자라는 주머니 모양의 구조물. 난자와 함께 자라난다. 난포 안에서 성숙과정을 거친 난자는 난포를 뚫고 나오게 된다.
※ 공난포: 난자가 없는 난포. 난포 안에 난자가 없거나, 채취 전에 난자가 퇴화했거나 등의 이유로 발생한다.
※ 배아: 난자와 정자가 수정된 후 8주 이내의 세포. 8주 이후에는 태아라고 칭한다.
그렇게 10일 후, 아침 7시 40분. 옷을 모두 벗고 수술복으로 갈아입은 나는 또다시 해부당하는 개구리 같은 자세로 수술대에 올라 수면마취 상태에 들었다. 시간이 흐르고 매우 기운이 없는 상태로 잠에서 깨어난 나는 40분 정도 회복하는 시간을 갖고 남편과 함께 의사를 만났다. 의사는 근심 어린 얼굴로 '4개의 난포 중에 1개의 공난포를 제외하고 3개의 난자를 채취했으나, 그중 1개는 미성숙한 상태라, 최종적으로 2개의 난자를 획득했다' 고 알려주었다. 덧붙여 '2개의 난자를 잘 수정시켜서 배양시켜 봐야 알겠지만, 일단 채취한 난자 개수가 너무 적으니 이번 것은 수정시켜서 얼려놨다가 한 번 더 난자를 채취한 다음에 이식을 하는 걸로 해보자'고 말했다. 순간적으로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채취한 난자가 달랑 2개뿐이라고?!....'
나름대로 맘카페 게시글과 댓글들을 조사한 바에 의하면 채취한 난자 중 50% 정도가 수정이 되고, 그중에서도 일부가 이식 가능한 등급의 배아라고 했다. 물론 착상은 신의 영역이라지만, 애초에 난자가 2개뿐이면 1개가 수정에 성공하더라도 배아의 등급에 따라 이식 자체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역시 시험관 시술은 만만하지 않았다. 케바케, 사바사의 영역 속에서도 확률과의 싸움인 시험관 시술에서는 나이가 깡패라더니, 역시 마흔의 여자는 쉽지 않구나. 나는 상심한 채로 병원을 나섰다. 질 안에 기구를 넣어 기다란 바늘로 난소를 찔러 난자를 채취한다는데, 바늘을 세 번 밖에 찌르지 않아서인지 난자 채취 후 필수로 동반된다는 복부 통증도 출혈도 거의 없었다. 배가 아프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지만 대신 마음이 아팠다. 차라리 배가 아플 만큼 난자를 채취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집으로 돌아온 나는 착잡한 심경으로 맘카페를 기웃거리다 '난자나 배아 개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똘똘한 놈 한 놈만 있으면 된다'는 댓글을 발견하고 그제야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2개의 난자 중 1개라도 잘 수정되었기를 바라는 것뿐이었다. 일주일 후, 배아 배양 결과를 듣기 위해 병원을 방문하여 계단을 오르고 있을 때 문자 한 통이 왔다. 무심코 확인한 핸드폰 화면에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있었다.
'신새눈님 동결배아 결과입니다.
동결개수: 2개 (3일 배양)'
...!!
2개 모두 수정이 되었다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호들갑을 떨며 남편의 팔짱을 끼고 속삭였다.
"이건 엄청난 확률이야, 100% 수정이라니! 우리 난자와 정자가 못 만났어서 그렇지, 만나기만 하면 되었던 건가 봐! 역시 우리 난자랑 정자는 건강했었어!"
설레는 마음으로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의사는 차분한 표정으로 난자 개수가 적어 미세수정 시술을 했고 다행히 수정이 잘 되었다고, 배아의 등급도 이식이 가능한 수준이라 다음 달에 이식을 해볼 수 있겠다고 말했다. 순진하게도 난자와 정자를 같은 공간에 두면 자연스레 수정이 되는 건 줄로만 알아서 나의 난자와 남편의 정자에 대한 자부심이 잠깐 생겨나고 마음이 부풀었었는데, 의사의 말을 듣자마자 그 마음은 비누거품처럼 사그라들었다. 우리의 경우에는 정자의 수, 난자의 수, 난자의 질이 전반적으로 자연수정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 인위적으로 난자의 세포질 내에 정자를 주입하는 시술을 통해서 수정의 확률을 높였던 것이다. (나중에 찾아본 바로는 미세수정의 실패확률은 매우 낮다고 한다.) 그리고 의사가 덧붙이길, 5일 배양 배아가 착상확률이 좀 더 높긴 하지만, 3일 배양 배아도 나쁘지 않으며, 또한 배아의 등급이 중급이긴 하지만, 등급이 높다고 해서 이식 후 성공률이 높다는 보장도 없으니, 일단 배아를 이식할 수 있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준비를 잘해서 다음 달에 이식을 해보자고 했다. 나는 발달한 의료기술에 안도하고 감사하면서도 조금 시무룩해진 채로 진료실을 나섰다. 5일도 아니고 3일 배아에, 상급 최상급도 아닌 중급 배아라는데.. 괜찮을까...ㅠ
긴박했던 배아 이식의 순간 - 엄마가 되는 일은 쉽지 않아
1월 1일, 기쁜 마음으로 생리의 시작을 맞았다. 이틀 후 병원에 방문해서 배아 이식 날짜를 정하고, 배아가 잘 착상하여 자랄 수 있도록 자궁 내막을 두껍게 하는 약을 받아왔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몸을 따뜻하게 해서 착상에 도움을 준다고 입소문이 자자한 대추차를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그래, 하는 데 까지는 열심히 해 보는 거야!'
약을 먹으면서 병원에 방문하여 자궁 내막이 잘 두꺼워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이식 날짜를 잡았다. 그리고 이식할 배아의 개수에 대해서도 논의를 했다. 의사는 '35세 이상은 3일 배양 배아를 3개까지 이식하기도 하기 때문에 일단 2개의 배아를 모두 이식하는 것을 추천하는데, 2개의 배아를 이식하는 것은 쌍둥이 가능성도 염두에 두셔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동결된 배아를 해동하는 과정에서 드물게 손상이 발생하기도 하므로 1개의 배아만 이식하게 될 수고 있고 최악의 경우 이식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음을 미리 알고 계셔라, 정확한 건 이식 당일에 배아의 해동 상태를 보고 다시 말씀드리겠다'라고 말했다.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들의 연속이었다.
1월 15일, 이식 예정 1시간 전에 간호사의 안내대로 물 500cc 를 마시고 소변을 참은 상태로 병원에 갔다. 향기가 배아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해서 전 날 밤에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고, 아침에는 물세안 후 무향의 화장품을 간단하게 바르고 핸드크림도 바르지 않았다. 맘카페에서 이식 전에 소변을 참는 일이 고역이라고 들었기 때문인지 유독 긴장이 되었다. TMI지만 평소에 물을 마시면 소변을 자주 보는 편이라, 혹시라도 화장실이 아닌 장소에서 소변을 흘리는? 불상사가 발생할까 조마조마했다. 혹시 몰라서 물도 500cc 보다는 조금 덜 마셨다. 이식 전에 물을 마시고 소변을 참는 이유는, 방광과 자궁이 인접해 있는데, 소변이 가득 차서 방광이 빵빵해진 상태면 자궁의 굴곡이 완만해지게 되어 배아를 이식하기 수월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의를 고무줄 치마로 갈아입고 초음파로 방광의 상태를 확인한 다음, 커튼으로 분리된 공간에 마련된 침대에 누웠다. 시간이 30분, 40분 지나고 점점 뇨의가 강하게 느껴지는데 커튼 바깥에선 인기척이 없었다. 누워 있으니 소변을 참기가 더 힘든 것 같아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거의 정확하게 예정 시간이 되어서야 커튼이 걷히고 간호사 두 명이 양 옆에서 내 침대를 밀고 끌어 수술실로 데려갔다.
나는 지시대로 수술대 위로 올라가서 양 옆으로 벌어진 기구 위에 다리를 올리고 누웠다. 잠시 후 자신을 배양실 연구원 누구라고 소개한 직원이 곁에 다가오더니 배아 2개가 확대되어 찍힌 흑백 사진 한 장을 건네며, 배아가 둘 다 정상적으로 잘 해동되었다고 말해주었다. 곧이어 들어온 의사가 해동 이후 배아 2개 중 1개가 좀 더 분열을 했다고 알려주며 좋은 신호라고 덧붙였다. 그 사진을 품에 꼭 안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천장을 응시했다. 간호사 중 한 명이 배 아래쪽을 초음파 기구로 누르면서 천천히 움직이자, 모니터에 배아를 이식할 자궁내부 상황이 띄워졌다. 그때부터 소변을 참는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간호사가 기구로 배를 누르거나 움직일 때마다, 아니 기구가 배에 닿아있는 모든 순간에 소변이 금방이라도 배출될 것 같은 긴박하고 긴급한 신호가 온몸에 전기를 찌릿찌릿 보냈다. 배를 누르는 것에 더불어 질 입구로 기구를 넣어 시술을 하는 데에도 통증과 자극이 동반되다 보니 배 아랫부분에 힘을 주어 소변을 참느라 그야말로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앙다문 입술이 아파오고, 머리카락은 쭈뼛 서고, 손바닥에는 땀이 흥건해졌으며, 질끈 감은 눈가로 눈물이 차올랐다. 온 힘을 다해 소변을 참으면서, 다 끝나가는지 궁금한 마음과 제발 빨리 끝내달라고 재촉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애처롭게 간호사를 쳐다봤지만 평온한 얼굴의 간호사들은 내 쪽을 잠깐 돌아보지도 않았다. 나는 '참을 수 있다'를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되뇌며 배아 사진을 두 손에 꼭 쥐고 눈을 질끈 감은 채 고통을 견뎠다. 소변을 참지 못해 수술실이 어지럽혀지고 직원들이 당황해하는 상상을 하며, 절대로 그렇게 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몇 시간 같은 10여분이 지났다. 내 몸에서 기구가 빠져나가고, 초음파 기계가 내 몸과 분리되자 그제야 긴장이 풀리며 이제 살았다, 는 생각이 들었다. 인체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그런 고통은 평생 처음이었는데, 흡사 고문과도 같았다. 이식이 잘 되었다는 의사의 말 이후로도 30분 정도 더 누워서 소변을 참은 후에야 간호사로부터 화장실에 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기다림의 결과 - 편안한 마음으로
이식 후 매일 약을 먹고 주사를 맞고 질정을 넣으며 인위적으로 호르몬 수치를 유지시켰다. 그리고 매일 따뜻한 대추차를 마시고,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하며, 하체 순환에 좋다는 요가와 스트레칭을 했다. 이식 다음 날 평소와 다르게 뭘 먹어도 계속 허기가 지고, 식욕이 왕성해지고, 아랫배가 뻐근하거나 소화가 잘 되지 않는 증상이 나타났다. 하지만 세 번의 인공수정에서 증상놀이에 심하게 놀아났던 터라 이번에는 섣불리 짐작하지 않고 증상들을 지켜봤다. 그러한 증상들은 며칠 정도 유지되더니 점차 사라졌다. 사실 난자 채취 결과와 배아 배양 결과를 들은 이후, 기대를 많이 내려놓은 터라 전처럼 초조하지 않았다. 결과가 좋으면 감사한 일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그저 때때로 동글동글한 배아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묘한 기분을 음미했다. 과연 사진 속 8개짜리 세포 덩어리가 내가 목격하는 내 아이의 최초 모습이 될 것인가!
10일 후, 혈액으로 보는 1차 임신반응 검사에서 hGC수치가 159, 그 이틀 후 2차 임신반응 검사에서 hGC수치가 345.46 으로 임신이 확인되었다. (1차 검사에서 수치가 100 이상, 2차 검사에서 1차 검사 수치의 두 배 이상이 되어야 안정적으로 착상이 되었다고 판단한다.) 그 일주일 후 초음파로 아기집과 난황을 확인했고, 그로부터 9일 후 초음파로 태아의 심장 박동을 확인했으며, 또 그로부터 일주일 후 초음파로 태아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태아의 크기는 심장 박동을 확인했을 때 4.5mm였다가 일주일 만에 1.1cm로 자라났다. 태아의 크기가 4.5mm 라는 얘기를 듣고 나서는 자꾸만 그 비슷한 크기인 새끼손톱으로 시선이 갔고, 태아의 크기가 1.1cm 라는 얘기를 듣고 나서는 또 그 비슷한 크기인 엄지손톱으로 자꾸만 시선이 갔다. 태아는 미묘하게 내 몸을 변화시키면서 문득문득 신경 쓰이는 존재로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었다. 그로부터 2주 정도 지난 후 태반이 잘 형성되고 태반에서 자연스럽게 임신을 유지하는 호르몬이 나오는 시기가 되어서야 난임병원을 졸업할 수 있었다.
계산을 해보니 작년 2월에 처음 난임 병원에 방문한 이후, 약 1년이라는 시간과 약 300만 원이라는 비용이 들었다. (가임력 검사와, 자궁 용종 제거, 세 번의 인공수정 시술 포함. 시험관 시술을 하는 동안의 진료 및 처방 기록과 비용 내역은 아래의 표에 정리해 두었다.) 시험관 시술 과정에서 난자를 2개밖에 채취하지 못해서 절망했지만, 생각해 보면 덕분에 난자 채취 후 배가 거의 아프지 않았고, 배아 개수가 적어서 배아 동결 비용도 최소한으로 들었으며, 기대를 내려놓을 수 있어서 오히려 편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그 편안한 마음이 아기와 닿을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준 게 아닐까.
시험관 시술을 끝낸 소감 - 새로운 시작 앞에서
돌이켜보니 나는 대체로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징검다리 삼아 여기까지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천문학자가 아닌 다른 직업을 갖게 될 줄, 롯데월드 혹은 공연기획아카데미 혹은 대학병원 혹은 여행사 혹은 기상청 등에서 일을 하게 될 줄, 제주도에서 몇 년을 살게 될 줄, 결혼이라는 걸 하게 될 줄, 난임 진단을 받게 될 줄, 인공수정이나 시험관 시술을 받게 될 줄, 정말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상상력이 빈곤한 탓일 수도,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기질 탓일 수도, 주어진 선택지 중에서 유난히 낮은 확률의 선택지만 골라잡는 특이 성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름대로 나다운 선택을 해왔고, 선택에 후회가 없으며, 그 선택들을 딛고 나다운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믿는다.
어쨌든 만 나이로의 나이 체계 변화 덕분에 조금의 유예를 얻은 마흔의 코 앞에서 눈앞에 닥친 난임이라는 과제를 해결하는데 본격적으로 돌입했고, 절망 속에서 임신에 성공했다. 앞으로 또 내가 예상하지 못한 어떤 일들을 겪으며 살아가게 될까, 생각하면 아득하면서도 설렌다.
나는 과연 무사히 건강한 아기를 출산할 수 있을까. 그 후에는 어떤 엄마로, 아이와 어떤 시간들을 보내며 살게 될까. 그 시간들은 분명 나를 성장시키고 성숙하게 할 것이며, 더 나은 인간으로 나아가게 하겠지. 다른 모든 선택들과 마찬가지로 후회를 남기지 않으며 아이와 함께 더욱 나다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그 시간들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