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낯선 너에게

아직 낯가리는 서툴고 부족한 엄마가

by 신새눈




너를 처음 보았던 건 수술실 조명 아래에서였다. 아직 여덟 개 정도의 세포덩어리인 너를 내 자궁에 이식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을 때, 병원 직원이 블랙베리처럼 생긴 배아 두 개가 찍힌 흑백 사진 한 장을 건네주었다. 두 개의 배아 중 어떤 것이 너 인지는 알지 못했으나, 그때 너를 처음 목격했음은 분명하다. 너는 작년 12월에 탄생하여 3일 간 자라났고, 이후 약 한 달간 냉동되어 있었다. 그리고 막 해동되어 내게 이식될 준비를 마친 참이었다. 사진에 찍힌 너를 처음 보았을 때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운 낯설고도 묘한 기분이 들었고, 너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나의 난자와 남편의 정자가 만나 수정란이 된 이후, 하나의 생명체로 거듭나기 위한 과정을 본능적으로 밟고 있는 다세포 단계의 너는 한편으로 연약해 보였지만, 한편으로 경이롭고 위대하며 강력한 생명의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네 존재만으로 수술실은 생명의 신비로 가득 차고, 그 순간이 마치 매우 숭고하고도 신성한 어떤 역사적 순간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네 존재에 압도되어, 평소에 믿지도 않던 신을 떠올리기도 하고, 이만큼이나 발달한 과학기술 앞에 숙연해지기도 하고, 신이나 과학기술 앞에 한없이 무력해지는 내가 보잘것없이 느껴져서 잠시 마음이 움츠러들기도 했다. 낯선 고통의 감각 끝에 내게로 온 너는, 그날 오후 거실로 비쳐들던 따사로운 햇살처럼 내 세상에 스며들었다.


열흘 후, 네가 무사히 내 몸속에 정착하여 자라나고 있음을 처음으로 확인했던 날, 집안을 맴돌던 어수선하고 서늘했던 아침 공기가 아직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남편을 찾아 헤매다 끝내 찾지 못한 꿈에서 깬 뒤, 좀처럼 다시 잠에 들 수 없어서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 한참 누워있었다. 꿈도 꿈이지만 내 머릿속은 온통 몇 시간 후에 네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병원에 갈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병원 방문 전에 아침 첫 소변으로 간이 테스트를 해보라는 의사의 지시를 수행할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는 데다가, 그 결과가 너무 궁금한 마음과 결과를 아는 것이 두려운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느라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지도, 눈을 감고 잠 속으로 빠져들지도 못하고 눈만 꿈뻑대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날이 밝고 나서야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갔다. 테스트기에 소변을 묻히고 몇 분 정도 기다리니 결과창에 희미한 빨간 선이 두 줄 떠올랐다. 고백하자면, 두 줄을 확인한 순간, 기쁨과 환희와 감동에 휩싸여 마음이 들뜨기보다는, 조금 당황스럽고 놀라고 실감이 나지 않아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멍해졌다. 테스트기를 한 손에 쥔 채 엉덩이에 닿는 서늘한 변기뚜껑의 감촉을 느끼며 한참을 그대로 앉아 있었다.


사실 테스트기의 반응을 기다리는 짧은 시간 동안, 만약 이번에 너를 만날 수 없다면 임신 시도를 다시 고민해 봐야겠다는 생각도 잠시 했었다. 너를 원하고 기다리고 의도한 건 맞지만, 이식을 한 후에 실제로 네가 자라고 있는 것 같은 감각(물론 확신할 순 없었지만)이 느껴졌을 땐 왠지 자신이 없어지고 겁이 덜컥 났다. 상상이 피부를 통해 실체화되는 순간 본능처럼 깨달을 수 있더구나. 나의 각오가 아직 단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그 감각이 정말로 너의 증명이라면 앞으로 모든 것이 변할 텐데, 내가 겪어보지 않은 새로운 변화들로 가득한 나의 삶을 내가 잘 받아들일 수 있을지, 내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지, 우리가 행복한 가족이 될 수 있을지 아직 자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물론 자신할 수 있는 때가 결코 오지 않으리라는 건 잘 알고 있지만, 나의 삶을 온통 바꿔놓을 너를 변수로 하는, 그 무엇도 확실하지 않은 미래가 불안하기만 한 건, 나의 부족함과 미성숙함과 불완전함, 그리고 그런 나로 인해 네가 혹은 내가, 혹은 남편이 상처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남편을 만나 그 두려움 너머의 행복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에 시도한 임신이었지만, 태생적인 불안이랄까, 가족으로 인해 상처받는 이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반응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날 병원에서 네 존재를 축하받았다. 축하를 받으니 그제야 멍해 있던 머릿속이 깨어나는 기분이 들더구나. 남편은 내 손을 잡고 그동안 수고했다고 말해주었다. 남편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걸 보고 있자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정상적이고 건강한 임신임을 확실히 판단하기 위해서는 검사도 한 번 더 해야 하고, 배아가 자궁에 잘 자리 잡아 성장하는지 추이를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했지만, 다음 날 아침에 나는 눈을 뜨자마자 너를 맞이할 현실적인 첫 단계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침대에 누운 채 핸드폰으로 산후조리원과 태아보험에 대한 정보를 검색했다. 전 날까지도 마음이 싱숭생숭하더니 하루 만에 마음이 차분해지고 너무도 당연하게 내가 엄마로서 해야 할 일들에 착수하고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신기했다. 침대에서 일어나서는 화장대에 놓아둔 임신테스트기에 연분홍색 리본을 묶었다. 리본을 묶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저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던 거라고. 나는 너를 잘 맞이할 거라고.


다음 날에는 남편이 꿈을 꾸었다. 강아지가 다섯 마리가 있었는데 세 마리는 축 늘어져서 거의 죽은 것 같아 보였고, 두 마리가 살아서 꼬물거렸는데 흰 강아지와 회색 강아지 두 마리 중에서 회색 털을 가진 강아지가 다가와서 애교를 부리길래 남편이 귀여워하면서 쓰다듬어주었다고 했다. 털 빛깔이 아주 고급진 회색이었다면서 왠지 태몽 같다고 신나 했다. 남편 나름대로는 축 늘어진 세 마리의 강아지는 실패한 세 번의 인공수정을, 살아 있는 두 마리의 강아지는 시험관 시술에서 생긴 두 개의 배아를, 남편에게 다가와 애교를 부리던 강아지는 두 개의 배아 중 우리에게 찾아온 하나의 생명을 의미하는 것 같다고 그럴듯한 추측을 했다. 남편도 티가 나게 감동을 하거나 기뻐하지는 않았지만, 너의 존재를 확실히 받아들이고 반기는 것 같았다. 네 얘기를 할 때 표정이 숨길 수 없이 밝아지는 걸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면회를 가듯 병원에서 너를 만났다. 흑백의 화면 속에서 우리는 조우했다. 흑과 백으로 이루어진 거친 결의 영상 혹은 사진 속에서 너는 조금씩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었다. 너는 처음에 네가 자리 잡은 동그란 공간으로, 그다음엔 그 공간에 맺힌 4.5mm의 콩알 같은 모습으로, 그다음엔 조금 길쭉하게 자라난 1.1cm의 번데기 같은 모습으로 변모하며 나를 맞이했다. 번데기 같은 모습일 때 처음으로 들었던 너의 심장 소리는 매우 세차고 빨랐는데, 몇 초간 스치듯 지나간 그 소리는 짧은 순간에도 나의 심장을 뛰게 만들고 나의 눈에 눈물을 차오르게 만들었다. 그 감정이 무엇인지 미처 알아채기도 전에 우리의 면회는 끝나고 말았지만, 나는 의사가 건네준 초음파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참 동안 그 여운 속을 헤매었다. 실감할 수 없었지만 너는 그곳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1.1cm.. 나는 자꾸만 엄지손톱을 들여다보았다. 엄지손톱 만한 자그마한 몸이 자라나서 하나의 작은 인간이 되고, 언젠가 세상 밖으로 나와 내 품에 안기게 될 수 있을까. 그런 일이 정말로 일어날 수 있을까. 믿어지지 않아서, 믿고 싶어서 자꾸만 쳐다보았다. 그렇게 엄지손톱을 바라볼 때면 꿈을 꾸는 것 같았다.


2주 후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의 날에 만난 너는 짧둥한 팔다리가 자라나 흔히 말하는 젤리곰 모습이 되어 있었다. 너를 만나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팔다리를 이리저리 씰룩씰룩 움직이는 네가 기특하고 귀엽고 신기했더랬다. 처음으로 네가 실감이 났다. 움직이는 너라니!

그날 난임병원을 졸업하고, 그 기념으로 남편과 나는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고 집에서 아주 슬픈 로맨스 영화를 보며 함께 울었다. 남편이 우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다.





다음 병원 예약은 한 달 후로 잡혔다. 실감이 나지 않는 너의 존재를 감각하려 애쓰며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다. 그즈음 나는 틈만 나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 부부에서 세 가족이 된 사람들의 사진과 영상을 찾아보며 나의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상상해 보려 애를 썼다. 하지만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엄마가 된 내 모습이라니! 이 세상에 아직 형태를 가지고 존재하지 않는 존재와 함께하는 내 모습이라니! 상상하기 위해 2차원 비현실 속을 헤매는 가운데 피곤하고 나른하고 속이 쓰리고 울렁거리는 날들이 이어졌다. 컨디션이 안 좋아지고 신체적인 변화가 생기기 시작해서 그런지 마음이 약해지고 기분이 울적해졌다. '너를 만나러 가는 길이 멀어서 이리 멀미 같은 입덧을 하는 걸까, 네가 있는 세상으로 가는 이 길이 나는... 낯설고 두렵다'는 생각을 하다가, '너를 마음껏 기뻐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다가, 의연하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하면서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너의 존재, 그 단 하나의 변수가 내 온몸의 시스템을 이토록 바꿔놓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낯설었다. 때때로 이과생의 상상력이 더해져, 예전 SF영화에서 보았던 한 장면이 떠오르면서 내가 너의 생존을 위해 이용되는 숙주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의 공원을 걷다가 나뭇가지 너머로 엄마 품에 안겨 찡긋 웃는 아기를 보았다.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이의 행복이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소중해 보였다. 찰나, 햇살 아래 거닐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아름다워 보였다. 새삼 신기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궁 안에서 세포분열을 통해 자라나 엄마의 몸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온 존재라는 사실이. 그들 모두 한 때는 몇 개의 세포덩어리였으며, 한 팔에 안기는 아기였던 시절을 지나, 어린이가 되고, 어른이 되고, 그리고 또 누군가의 부모가 된다는 사실이. 이 세상이, 인간이, 모든 생물이 그런 식으로 대를 거듭하여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는 지구에 있는 나를 만나러 온 우주인*이 아닐까.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나를 데리러 올, 나의 별 사람이 아닐까.

이 지구에서 나를 통해 세상을 살아갈 나의 이방인, 나를 믿고 나를 만나러 온 나의 우주인이 아닐까.


*우주인, 이라는 비유가 언뜻 비약이 심하고 문맥상 이해가 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설명을 덧붙이자면, 나는 어릴 때부터 밤하늘을 보며 우주를 동경했었고, 인생을 비관하게 될 때면 우주로 현실도피를 했다. '나는 원래 다른 별에 사는 우주인인데, 큰 죄를 지어서 기억이 지워진 채로 지구에 귀양 보내지는 벌을 받는 중이고, 때가 되면 언젠가 내가 원래 살던 별에서 동족들이 나를 데리러 와서 이 지구를(현실을) 벗어나게 될 거'라는 이야기를 지어내 자기 암시처럼 곱씹곤 했다. 문득 뱃속의 아기(=너)가 나의 삶을 구원해 줄, 나를 다른 세상으로 데려가 줄, 내가 기다리던 우주인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를 내 인생을 낙관적으로 만들어 줄 절대적인 존재로 여기는 행위가 위험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사고의 전환, 혹은 관점을 달리하게 된 우연한 계기가 영감처럼 떠오른 데 대한 추상적인 표현이라고 읽어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이 들자, 어쩌면 나에게 가장 큰 도전이자 도피일 네가 기적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이것도 조금 비약이 심하지만, 너를 만나기 위해 그 수많은 절망들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니, 지난 인생에 드리워진 비극들이 어느 정도는 합당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너를 기뻐하기로 했다. 기쁜 것이 틀림없다.

희망과 행복의 씨앗이 피워낸 꽃 같은 너를 나는 기뻐한다.

이제는 주삿바늘 자국이 희미해진 배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너와 함께할 인생이 기대된다고.


아가야,

첫 순간에 너를 마음껏 기뻐하지 못한 나를,

아직 낯가리는 서툴고 부족한 엄마를 이해해 주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