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생되는 기쁨에 대한 이해 (feat. 임밍아웃)
임밍아웃과 의아한 축하
임신 9주 차에 난임 병원을 졸업하고, 이제는 유산확률이 높은 시기를 어느 정도 지났다는 판단 하에, 더 늦기 전에 양가 부모님들께 소식을 전하기로 했다. 요즘 사람들이 많이 하는 식으로 기억에 남을 만한 임밍아웃 이벤트를 해볼까, 잠시 고민도 했지만 그냥 우리 부부의 스타일대로 쿨하게(라 쓰고 무미건조하게, 라 읽는다) 전화로 문자로 소식을 전하기로 했다. 남편과 나는 무뚝뚝한 장남 장녀인데, 안 하던 행동을 한다는 게 낯간지럽기도 하고, 두 가족 모두 분위기 자체가 친밀하고 애정이 많은 편은 아니어서 괜한 시도를 했다가 되레 분위기가 어색해질 것 같았기 때문에 그냥 하던 대로 하자고 남편과 합의를 보았다.
*
엄마와는 이런 류의 대화가 이어졌다.
(엄마에게 카톡으로 초음파 사진을 보내자, 금방 전화가 왔다.)
아이고, 축하한다. 시부모님도 기뻐하시지?
- 응 고마워, 이제 말씀드려야지.
얼마나 된 거야?
- 9주 됐어.
벌써 9주라고? 알면서도 그동안 조용했어?
- 초기에는 유산확률이 높으니까, 내 나이가 많아서 더 그렇기도 하고. 좀 안정되면 말하려고 했지.
그래도 그동안 그렇게 알면서도 조용했어?
-...... (혹시 일찍 전했다가, 안 좋은 소식을 전해야 할 일이 생기면, 그건 말할 엄두가 안 나기 때문이었다고 말하지 못했다...)
요새는 주위에 보면 연예인들도 그렇고 나이 많아서도 잘만 낳더라.
- 연예인들이야 돈이 많으니까 관리도 잘 받고 애 봐줄 사람도 있고 그러겠지. 먹는 거며 운동이며 얼마나 신경을 쓰겠어. 노산이면 유산 확률도 높고, 산모나 아기가 건강하지 않을 확률도 높대.
엄마는 입덧도 별로 안 하고, 병원 가서도 몇 시간 만에 별로 힘들이지도 않고 낳았다. 엄마 닮았으면 괜찮을 거야.
- 엄마는 20대 초반에 나 낳았잖아. 나는 이제 마흔인데? 나이가 완전히 다르지. 엄마 나이 마흔 일 때 내가 고등학생이었어. 마흔에 다시 애 키운다고 생각해 봐. 힘들지.
요새는 다 노산인데 다들 잘만 낳더라. 별거 아니야. 또 애들은 낳기만 하면 알아서 다 큰다. 아유 너도 이제 애엄마가 되는구나.
엄마는, 최근 몇 년간 들어본 것 중 가장 기쁘고 격앙된 목소리로 축하를 건넸다. 그리고 한껏 흥분한 목소리로 나의 걱정들을 괜찮다, 남들 다 한다는 말로 뭉뚱그려 불필요한, 아무것도 아닌 걸로 취급해 버렸다. 나는 왜 축하한다는 말의 바로 다음 말이 '몸은 괜찮니?' 같은 말이 아니라 '시부모님도 기뻐하시지?' 인지 의아했다. 그리고 엄마가 한 대부분의 말들이 소화되지 못한 채로 위에 머무르는 음식물처럼 거북했다. 엄마에게는 '유산될까 마음을 졸였을 나, 노산에 첫 임신이라 걱정하는 나'의 개별성은 전혀 보이지 않고, 그저 '임산부'라는 보편성만이 보이는 듯했다. '아마도' 그 말들 속에는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는 숨은 속뜻이 있는 거겠지만, 곱씹어 생각해 보면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 '나는 힘들이지도 않고 별 탈 없이 잘 낳았는데, 너는 나를 닮지 않았나 보다' 혹은 '남들은 쉽게 잘만 하는 걸 너는 힘들게 하는 걸 보면, 네가 예민해서 그런가 보다' 혹은 '그러게 일찍 아이를 가졌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고집부리더니 그렇게 됐잖니' 혹은 '그러게 평소에 운동 좀 열심히 하고 잘 좀 챙겨 먹으라니까, 내 말을 안 들으니까 그렇지' 같은 나를 탓하는 말들로 돌아올 수 있다는 의미로 들렸다. 너도 애엄마가 되는구나,라는 말도 '너도 뭐 대단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별 수 없이 애 낳고 사는 다른 여자들처럼 그저 그런 인생을 살게 되는구나'처럼 들렸다. 엄마가 한숨 쉬듯 내뱉은 그 말이 앞으로 고생할 게 눈에 훤해서 안쓰러운 마음이었던 거라고 믿고 싶지만 역시 진실은 알 수 없다.
엄마는 툭하면 내가 예민해서 그렇다, 고집이 세서 그렇다고 말하는데, 언뜻 그 말은 나를 잘 알고 있고 그런 나를 이해한다는 말로 들리지만, 나에게는 모든 것이 유난스러운 네 탓이고, 나는 그런 네가 피곤하다는 말로 읽히곤 했다. 엄마가 굳이 나를 비난할 이유가 없으므로 그냥 생각 없이 한 말로 치부해 버리면 그만일 텐데 그게 잘 안 됐다. 그런 말들이 내 마음속 어딘가를 쿡 찌를 때마다 엄마의 말들을 이상적인 부모의 것으로 곱게 포장해서 이해한 다음 괜찮은 척해보려 하지만, 그 이해라는 것이 내가 받아들이고 싶은 해석일 뿐 엄마에게 직접 물어서 확인한 것은 아니므로 엄마의 진짜 속마음을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이미 인지하고 있는 상태라서 그런지 그다지 효과가 있지는 않다.
엄마의 말들이 나를 부정하고 비난하는 것처럼 들려서 거슬리고 불편한 이유를 굳이 찾아보자면, 엄마의 말투가 원래 그렇거나, 어린 시절 엄마로부터 칭찬을 받아본 경험이 없어서 내가 스스로에 대해 부정적인 자아상을 갖고 있거나, 아니면 나의 독립과 엄마의 가출로 인해 따로 지내게 된 약 20년 간의 세월이 남긴 정서적인 거리감 때문이거나, 그 시간 동안 각자의 삶을 살면서 생겨난 적응되지 못한 변화 때문일 수 있겠지만, 어쨌거나 엄마를 이해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는 사실은 씁쓸하다. 그저 엄마는 위로를 그런 식으로 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인 거겠지, 하고 납득하는 수밖에. 나는 엄마에게 매번 내 방식대로의 무언가를 기대하지만, 결국 내가 싫어하는 나의 단점들을 엄마에게서 발견하거나 엄마는 나와 다른 사람임을 재차 확인하게 되어, 마음이 착잡해진 채로 무언가를 멋대로 기대해 버린 스스로를 책망하는 결말을 맞는다. 실상 엄마에게는 이런 내 속마음을 한 번도 얘기한 적이 없는데, 이렇게 뒤에서 글을 통해 엄마에 대한 속내를 고백하는 것이 뒷담화를 하는 것만 같아 약간은 비겁하고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
시어머니와는 이런 류의 대화가 이어졌다.
(남편이 시어머니께 전화를 드렸고, 나에게 전화를 바꿔주었다.)
축하한다.
- 네 감사합니다.
휴, 이제야 마음이 놓이는구나.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 얼마나 걱정을 했던지. 다행이야. 아무쪼록 돈 걱정하지 말고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마음 편히 가지렴.
- 네. 그럴게요.
몸 잘 챙기고.
- 네.
시어머니는 별로 기쁘지 않으신 건가 싶을 정도로 차분한 목소리였다. 남편에게 물으니 자신이 느끼기에는 분명히 기뻐하는 목소리였다고 했다. 암튼 이번에도 축하한다는 말의 다음 말이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 여서 좀 씁쓸했다. 그 말은 우리 부부가 이미 일찍이 해냈어야 할 일을 이제야 겨우 해낸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우리 부부가 전한 소식은 부모의 마음을 뿌듯하게 만드는 부류가 아니라, 그저 걱정을 종결시키는 부류의 소식이었다는 사실, 그러니까 나의 임신은 또 하나의 경사라기보다는 결핍이 해소된 것에 가까운 의미라는 사실, 그러니까 우리 부부에게 애초에 해소되어야 할 결핍이 있었고 그 결핍이 당연히 채워진 것에 불과하다는 의미로 축하가 풀이되자 썩 유쾌하지 않았다.
물론 이상적으로 해석해 보자면, 마음이 놓인다는 말 이면에는 인생을 먼저 살아 본 입장에서 자식이라는 존재가 삶에 주는 행복이 크므로 자신의 자식도 그 행복을 누리며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자식이 그 행복을 누리지 못할까 염려했던 것일 테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동안 아이가 없으면 나중에 외로우니 아이는 있어야지,라는 말을 자주 하셨고, 시험관 시술을 할 때 보태서 쓰라고 적지 않은 용돈도 주셨으니 이해되지 않는 반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소식을 전하면 좀 더 본능적으로 많이 기뻐하실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서 얼떨떨했다.
파생되는 기쁨
축하를 받았는데 이렇게 의아하고 얼떨떨하기는 처음이었다. 소식을 전하고 축하를 받는 동안 감동적인 말들이 몇 마디 오가고 마음이 충만해지는 장면을 상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현실에서의 축하는 뭔가 허전하고 뭔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고 뭔가 달갑지 않고 뭔가 찜찜한 기분을 남겼다. 내가 축하를 너무 거창하게 정의하고 있나. 부모님들의 말이 내가 추측한 속뜻을 가진 말들이었다면, 정말로 그런 거라면 엄마와 시어머니는 말을 좀 더 충분히 길게 해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면 축하를 잘 건넸는데 받는 내가 제대로 받지 못한 건가. 난임 병원을 졸업할 당시에 의사나 간호사들이 건넨 축하까지도 형식적으로 들린 걸 보면 사실 내 마음이 꼬여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축하는 축하일 뿐인데 엄마 말처럼 모두 내가 예민해서 그럴지도. 임신을 해서 더 예민해졌거나.
어쨌든 나는 제대로 된 축하를 받지 못했다고 느꼈다. 내가 생각하는 제대로 된 축하란 '너에게 생긴 좋은 일이 나도 기쁘다' 정도의 담백한 진심이 전해지는 일인데, 어른들이 건넨 축하에는 본질이 없고 개별적인 사심들만 가득한 느낌이었달까. 내가 느낀 바로는 어른들에게 나의 임신이란, 자식의 자식을 보고 싶은 개인적인 욕망의 충족, 또는 결혼을 했으면 아이를 낳는 인생의 과업을 달성해야 한다는 의무의 이행, 또는 자식이 자식 없이 살다가 이혼을 하고 고독하게 노년을 보내는 불행을 피해가기 위한 방편으로써 축하할 일로 여겨지는 것 같았다. 기쁜 감정의 근원이 우리 부부의 행복이 아니라는 점이 나쁘거나 잘못된 일은 아닌데, 어쨌든 조금 서운했다.
본인의 로망이나 희망사항이 아니라, 아이의 존재 자체를, 우리 부부의 새로운 시작 자체를 축하받고 싶었는데 그런 마음을 건네준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느껴져서 좀 외로운 기분이 들었다. 남편에게 속내를 털어놓으니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축하하느냐가 무엇이 중요하냐고, 우리 두 사람에게 아이가 찾아온 것을 우리 두 사람이 기뻐하고 축하하면 될 일 아니냐고, 아이에게는 아이를 가장 소중히 해줄 엄마 아빠가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보통은 장난스럽고 철없는 말들을 하는 남편이 때때로 이렇게 어른스러운 소리를 할 때면 깜짝 놀라면서도 든든해진다.
남편의 말을 듣고 보니 날이 서 있던 마음이 좀 누그러졌다. 마음이 누그러지니 부모님들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 기쁨은 연결되어 있는 거지, 우리 부부의 기쁨은 부모님들과 연관되어 있으니까, 상관없는 기쁨이 아니니까, 너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는 순간 또 다른 의미를 가지기도 하니까, 그러니까 모두 같은 의미로 기뻐하고 축하하지 않아도 축하가 축하인 건 변함이 없지, 그래 그럴 수 있지. 기쁨은 이런 식으로 다른 의미를 맺어가며 파생되어 번져가기도 하는 거구나.'
생각해 보면 서운하고 외로운 기분이 들었던 건, 어쩌면 내가 스스로 확신이 부족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임신이 우리 부부를 위한 최선의 최대의 행복이라는 확신을, 내게 부족한 만큼의 확신을 다른 사람이 채워주길 바랐던 건지도. 아직 내게 남아있는 불안한 마음을 없애줄, 나를 위한 축하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가족이라는 양분
SNS에서 흙속에 심어진 토마토의 단면을 오랜 시간 촬영한 동영상을 보았던 일을 떠올렸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제목이었던가, 암튼.
흙 속에 심긴 싱싱했던 빨간 토마토는 점차 무르고 썩어 하얗고 까만 곰팡이로 뒤덮이더니 이내 원래의 형체가 사라지고 씨앗에서 싹들이 돋아나 춤추듯 자라기 시작했다. 토마토는 잎과 줄기를 계속해서 위로 옆으로 뻗어 올리며 무럭무럭 자라더니 튼튼한 줄기와 커다란 잎사귀를 가진 하나의 식물체가 되었고, 결국 꽃을 피우고 작은 열매를 맺었다.
처음엔 그 영상에서 희망을 보았다. 그래, 끝은 또 다른 시작이기도 하지, 해는 저물어도 다시 떠오르고, 꽃은 시들어서 열매가 되고,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리고, 절망 끝에 희망이 있고, 소멸의 끝에 탄생이 있고, 모든 것이 그렇게 순환하지, 나의 개인적인 실패 끝에 이 아이가 찾아온 것처럼, 하고 가슴이 잠시 뭉클해졌더랬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영상은 또 다른 절망을 말하고 있었다. 토마토는 흙 속에서 끝을 맞이했기 때문에, 썩어 문드러져서도 싹을 틔울 수 있었던 것이다! 콘크리트 바닥이나 쓰레기통에 버려졌다면 토마토는 그저 소멸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하자 그 영상이 너무나 잔인하고 섬뜩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주변에 양분을 주거나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존재, 그러니까 토마토의 입장에서는 '흙' 같은 존재가 없다면 토마토에게 새로운 시작이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 아닌가. 인간에게 그런 존재란 가족(과의 감정적 유대나 금전적 여유 같은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뿌리가 빈약한 사람으로서 나는 다시 한번 절망하고 말았다. 보드랍고 짙은 색 흙 속에 심겨진 토마토가 부러웠다. 저 토마토는 생을 몇 번이나 다시 시작할 수 있겠지, 몇 번이고 다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겠지, 나와는 다르게. 나는 슬프고 먹먹한 마음으로 영상을 여러 번 돌려 보았다.
결혼을 하고, 임신까지 하고 보니 나의 원가족에 대한 기억들과 평가, 의미가 (부정적인 방향으로) 새로워지곤 한다. 내가 자라난 환경, 나의 가족이 처했던 현실은 비유를 하자면 콘크리트 바닥 같은 것이었다. 내가 나고 자란 세상을 벗어나 다른 세상을 경험해 보니 내가 있던 곳은 내 생각보다 더 비참한 곳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가끔 잊고 지내지만, 남편과 다투고 난 뒤 최악의 상황들을 상상할 때면 그 사실이 서늘하게 떠오른다. 나는 어떻게든 나 혼자서 내 삶을 꾸려가야 하는, 가진 것도 돌아갈 곳도 기댈 곳도 없는 채로, 두 번의 기회 따윈 없이 콘크리트 위에 버려진 토마토 같은 존재라는 혹독한 현실. 결혼을 하고 새로운 가족을 만들었어도, 그 현실은 그림자처럼 나와 맞닿아 있으며 내게서 떼어낼 수 없는 또 하나의 세계이자 나를 이루고 있는 근간이라는 냉혹한 사실.
어쨌거나 앞으로 태어날 아이에게 남편과 내가 보드랍고 양분이 풍부한 따뜻한 흙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 아이는 토마토 영상에서 희망만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기를, 나처럼 축하의 근원 따위를 따지며 서운해하고 외로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쁨을 그저 기쁨으로 나눌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