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몸, 두 개의 심장

소중한 감각

by 신새눈





임신 5개월이 조금 지난 6월 초저녁, 남편과 집 앞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더니 때마침 음악 분수쇼가 막 시작한 참이었다. 우리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음악과 빛과 물줄기의 향연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물줄기는 시원한 소리를 내며 아주 높은 곳까지 치솟기도 하고 구불구불 물결무늬를 그리기도 하고 대형을 이루어 높낮이를 다르게 하기도 하면서 음악에 맞춰 색색의 빛줄기와 함께 어우러졌다. 그 주위로 많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자리를 잡고 앉거나 서 있었고 흥이 오른 몇몇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저들끼리 폴짝폴짝 뛰기도 하고 엉덩이를 흔들기도 하면서 춤을 추었다. 우리도 원래의 산책루트를 약간 변경해 분수를 한 바퀴 크게 돌며 분수쇼를 감상하기로 했다.


분수 쪽으로 다가서며 걸음을 옮기던 그때, 2m 남짓 떨어진 곳에서 발레복과 비슷한 하얀 원피스를 입고 아빠로 보이는 남자와 두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고 있는 자그마한 여자아이를 발견했다. 찰나, 아이의 어깨까지 오는 곱슬머리, 흩날리는 치맛자락, 까르르까르르 웃음소리, 얼굴에 만연한 미소, 신이 나서 어쩔 줄 모르는 몸짓, 그리고 아이의 손을 마주 잡기 위해 구부정해진 아빠의 어깨, 아이의 몸짓을 받아주느라 엉성해진 아빠의 발놀림, 그러나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랑이 가득한 아빠의 눈빛에 나는 온 정신을 빼앗기고 말았다. 순간, 시간이 느리게 흐르기 시작했고 어둠이 내려앉은 배경 속에서 그 부녀의 모습만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밝게 떠올랐다. 그 모습이 스냅사진처럼 한 장면 한 장면 세밀하게 눈에 담겼다.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못한 채로 걸으며 남편에게 물었다.


저기 좀 봐, 당신도 저런 아빠가 되어줄 수 있겠어?

그럼, 당연하지.


남편의 대답을 듣는 순간, 아주 잠시 그 남자의 모습에 남편의 모습이 겹쳐 보였고, 시간의 흐름이 제 속도를 되찾았다. 그때, 순간적으로 어떤 커다란 덩어리가 가슴께를 아프도록 무겁게 누르는 느낌이 들고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강하게 동요되어 눈물이 차올랐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스스로도 놀라고 당황스러워서 남편에게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입술을 떼려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목이 메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 나는 왼쪽 가슴 언저리를 꾹 누르며 분수쇼에 한 눈이 팔려 걸음이 느려진 남편의 팔짱을 끼고 천천히 걸었다. 음악소리, 물소리, 아이들의 환호성, 현란한 빛이 교차하는 화려한 퍼포먼스가 초점이 맞지 않는 흐릿한 풍경이 되어 내 몸의 감각과 분리되어 갔다. 마스크와 뺨 사이로 눈물이 흘러 마스크가 축축해졌다. 눈앞에 계속 그 부녀 모습이 아른거리고 심장이 쿵쿵거렸다. 혼란스러웠다.


분수를 한 바퀴 돌아 한적한 산책로로 들어선 다음 조금 더 걷고 나서야 눈물이 마르고 마음이 진정되었다. 그제야 눈물의 의미를 되짚어 볼 정신이 들었다.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춤을 추던 그 남자의 모습에 남편이 겹쳐 보이고 시간이 제 자리를 찾아 흐르기 시작한 짧은 순간에, 머릿속에서 여러 상념과 이미지가 빠르게 스쳐 지나간 듯했다. 순간적으로 돌아가신 (늘 미워하기만 했던) 아빠가 떠올랐던 것 같기도 하고, 나에게는 저런 예쁜 기억이 없다는 사실이 슬펐던 것 같기도 하고, 저렇게 다정한 아빠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는 그 아이가 부러웠던 것 같기도 하고, 먼 미래에 우리 아이도 남편과 손을 잡고 행복하게 춤을 추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졌던 것 같기도 했다. 가슴을 쿵 내려앉게 만들고 눈물을 차오르게 했던 그 감정의 정체가 뭐였는지, 그 감정이 촉발된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한 마디로 정의하거나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내가 떠올리지 못하는 오래된 기억 때문일 수도, 내가 가진 어떤 결핍 때문일 수도, 어떤 슬픈 혹은 기쁜 예감 때문일 수도, 그저 아름다운 모습에 감격했기 때문일 수도, 그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엉겨 붙은 나머지 커다란 감정적 소용돌이를 만들어 냈기 때문일 수도...


그때까지도 나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한 남편에게 나는 잠긴 목소리로 사실을 털어놓았다. 남편은 내 눈을 잠시 들여다보더니 빙글빙글 웃으며 시간여행을 소재로 하는 SF장르의 애니나 드라마처럼 우리 아기가 저렇게 크는 모습을 네가 못 보는 거 아니냐고 말하면서, 좀 전의 상황이 미래를 암시하는 어떤 복선 같은 상황일 수도 있을 가능성과 내가 미래에서 왔을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너무 엉뚱한 발상에 어이가 없어서 재수 없는 소리는 하지도 말라며 남편을 타박했지만, 그래도 남편의 말을 들으니 강렬하고 무거웠던 감정의 여운이 비현실의 영역으로 사라지는 기분이 들면서 웃음이 나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런데 그날 이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나 이외의 모든 여성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여성들이 내 딸의 미래 모습일지도, 혹은 미래 모습과 닮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외출을 할 때마다 시선이 분주해지고 머릿속이 복잡해지게 되어버렸다. 공주 드레스를 입은 유아를 봐도, 단발머리를 휘날리며 씩씩하게 킥보드를 타는 유치원생을 봐도, 자기 등보다 큰 가방을 메고 걸어가는 초등학생을 봐도, 교복 치마를 짧게 줄여 입고 가벼운 화장을 한 채로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걸어가는 중학생을 봐도, 단정하게 머리를 묶고 진지한 얼굴로 헤드셋을 쓰고 무언가를 읊조리며 지나가는 고등학생을 봐도, 벤치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상스러운 말로 누군가에 대한 험담을 하는 짙은 화장을 한 직장인을 봐도,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후줄근한 차림을 한 젊은 엄마의 뒷모습을 봐도, 나보다 훨씬 나이가 든 중년의 여성 혹은 할머니의 모습을 봐도, 내 딸아이와 연관 지어 생각했다. 내 딸이 자라면 혹시 저런 모습일까, 하고 상상을 하다 보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가 훌쩍 자라나 수많은 모습으로 내게 말을 걸거나 나와 함께 걷고 있었다.


내 딸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성격일까, 어떤 것을 좋아할까, 어떻게 자라나게 될까, 교복을 줄여 입고 상스러운 말도 배우게 될까. 어떤 아기, 어떤 어린이, 어떤 학생, 어떤 어른으로 성장하게 될까. 시간이 많이 흘러 내가 보지 못할 내 딸아이의 늙어갈 모습은 어떨까. 아이는 나를 닮았을까, 남편을 닮았을까, 아니면 나와 남편과는 전혀 닮지 않은 새로운 사람일까, 생각하며 지나가는 여자들을 눈으로 좇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또, (성별을 알게 된) 4월과 (음악 분수 사건이 있었던) 6월 사이에는 태동도 느껴지기 시작했는데, 음악 분수 사건이 발생한 후 심경의 변화가 생겨 어딜 가든 아이에 대한 상상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뱃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아이의 움직임도 특별하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아이와 나는 한 달에 한 번 병원에서 흑백의 화면상으로 조우하는 정도의 데면데면한 사이였는데, 그 후로는 아이의 움직임이 느껴질 때면 신비로운 느낌에 휩싸이면서 아이와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와 닿아있다는 실감과 서로를 느낄 수 있다는 연결감은 아이를 향한 감정이 애틋해지고 아이를 더 가깝고 친숙한 존재로 여겨지게 했다. 가끔 조용한 공간에 혼자 있을 때 오른쪽 귓가에서 심장박동 소리가 쿵쿵쿵 크게 들리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아이가 '나 여기 있어요' 하고 자기의 존재를 알리는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아서 가만히 배에 손을 올리고 기특하고 귀여운 기분으로 소리를 한참 듣고 있기도 했다.






음악 분수 사건 이후 나는 딸아이가 점점 더 사랑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딸아이를 사랑스럽게 느끼는 스스로에게도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 아이의 성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데 약간의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그러한 변화는 매우 극적이었다.


4월 초, 'NIPT검사 결과 염색체에 이상소견이 없으며 아이의 성별은 여아입니다'라는 문자를 받고, 망연자실한 채로 멍하니 앉아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겁이 나고 막막했다. 딸아이의 애교스러운 말투, 예뻐지고 싶다는 혹은 예쁜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욕망, 자신을 귀여워하고 예뻐해 달라는 투정, 머리도 옷도 예쁘게 해 달라는 요구를 받아줄 자신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린 여자 아이들이 공주 옷을 입고 예쁜 척 귀여운 척 애교를 부리며 강한 자기애가 투영된 욕망을 무방비 상태로 드러내는 그 모습에 나는 이상하게도 강한 거부감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내 아이여도 그런 모습은 받아주기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다. 기질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딸의 경우에 감정적으로 예민할 확률이 높다는 부분도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런 욕망이나 예민함 따위는 없는 아들이 좋다고 생각했다. 또한 내가 이미 잘 해내지 못한 모녀관계보다는 해보지 못했지만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편견 없는 상태로 시도할 수 있는 모자관계를 새롭게 구축해보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초음파상 소견도 아니고 염색체 검사 결과니 번복될 리 없었다. 나에게 아들이 아니라 딸이 생겼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아이에게 미안하지 않으려면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보다 좋은 이유를 어떻게든 찾아내서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아쉬운 마음을 걷어내야 했다. 그래서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로 여자아기들의 사진과 영상을 몇 날 며칠에 걸쳐 찾아보았다. 예상대로 내가 탐탁지 않게 여기는 여자아이다운, 혹은 여성스러움이 묻어나도록 꾸며놓은 여자 아기들의 사진이나 영상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성별을 떠나 그저 천진한 모습의 사진이나 영상도 많았다. 웃는 모습이 예쁜 아가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근심을 잊고 덩달아 얼굴에 미소가 번지곤 했다. 그러다 어떤 모녀가 함께 찍은 사진을 보았는데 꼭 닮은 건 아니었지만 모녀 특유의 사랑스럽고 부드러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 사진을 보자 아들에 대한 아쉬움이 다소 누그러졌다. 그제야 딸아이와 함께 맞이할 많은 순간들이 머릿속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 상상은 평화롭고 즐거운 편에 속하는 썩 괜찮은 느낌이었다. 사진들과 영상들을 지겹도록 보고 나서야 성별보다는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아이와 어떤 시간들을 보내느냐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의도한 대로 마음을 가다듬고 걱정을 내려놓고, 현실과 다가올 미래, 그리고 어쩌면 딸이라서 더 좋을지도 모른다는 긍정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래도 머리와 마음이 어긋나는 순간이 가끔씩 있었는데, 음악 분수 사건이 그러한 어긋남을 깨끗이 없애주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어쩌면 음악 분수에서 마주한 그 부녀의 모습은 내가 아이의 성별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내가 맞이할 미래가 형체를 갖고 현실에 나타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딸아이와 맞이할 행복한 미래,에 대한 상징적 이미지로써 그 부녀가 남긴 강한 인상은 그날 이후 나와 아이의 관계를 내가 전과 완전히 다르게 느끼도록 만들어버렸으니까 말이다. 한 순간에 나를 사로잡은 그 부녀의 모습이, 내 눈에 풍덩 뛰어들듯 담긴 그 아이가, 그 순간 머릿속을 스쳤던 수많은 상념들이, 내 과거로부터 현재를 관통하여 미래를 순식간에 연결해 버린 느낌이랄까.


임신을 하면 호르몬 변화 때문에 감정기복이 심해지는 것이 당연하고,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는 동안 아이를 향한 애정이 증가하는 것도 어쩌면 마땅하다. 계기가 된 그 순간이 묘하고 이상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다행스럽다. 그 이후로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내가 아이로 인해 다시 태어나 다시 살아가게 될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으니까.


가끔 아이가 나에게 처음 손을 내밀었던, 말을 걸어왔던 그 순간을 곱씹어본다. 자려고 누워있던 어느 밤에 간지러움과 비슷한 낯선 감각이 배 안쪽의 배꼽 언저리를 짧게 스쳤다. 조금씩 잠에 빠져들고 있던 순간에 잠을 모조리 달아나게 했던 그 감각, 자려고 감았던 눈을 번쩍 뜨게 만들었던 그 감각, 착각이었나 싶어 다시 한번 느껴지기를 숨죽여 기다리다 결국 다시 느끼지 못하고 잠이 들었던 그 밤의 기억이 유난히 또렷하다. 그리고 소중하다.


아가,

와 줘서 고마워.

건강하게 만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