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사진의 효과
나는 가끔 남편이 알지 못하는 밤을 보내곤 한다. 나는 과연 행복한가 자문하곤 한다. 나는 이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가 자문하곤 한다. 그런 밤이면 내가 과연 누군가를 제대로 사랑한 적이 있는지, 제대로 사랑받은 적은 있는지, 사랑이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알고 행할 수 있는 사람인건지 알 수 없어지곤 한다.
그런 밤이면 내가 행복하기 위해 내린 선택들이 모두 악수가 되어 되돌아온 것 같고, 그 모든 결정들이 나를 무력하게 만들어 그저 짐스러운 존재로 남편이라는 한 사람을 힘들게만 하는 것 같고, 내 인생은 되돌릴 수 없이 처음부터 잘못 끼워진 단춧구멍과 같다고 여기게 되며, 지금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게 다 원망스러워지곤 했다. 아빠 같은 사람을 기어코 찾아내어 불행한 상황을 자초한 것 같은 내가, 이럴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나버린 내가 징그러워지곤 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견고한 현재에 닿으면 실체 없는 허상처럼 의미를 잃곤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과거가 지금 이외의 미래로 흘러갔을 가능성은 없었고, 나는 행복에 겨운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딱히 불행하다고 할 정도의 상태는 아니며, 남편이 없는 삶을 생각하면 슬픔이 차오르고, 때때로 남편의 애정을 느끼고도 있다. 제대로 된 건강하고 따뜻한 사랑, 이라는 게 있고 그것을 내가 알지 못한 채로 자라왔고 살아왔다면, 그걸 모르는 채로 그것의 부재를 알아차릴 수는 없을 테다. 그러므로 그런 질문들은 사실 의미가 없다. 또한 이미 완성된 과거와 스스로를 혐오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고, 그저 스스로를 좀먹을 뿐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다 알면서도 외롭고 허무하고 마음이 약해지는 어떤 날에는 어쩔 수 없는 것들을 붙들고 곱씹게 된다.
7월 말에 만삭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 나는 하얀 오간자 실크 드레스를 입고 남편은 감색 수트를 입고 있는데, 서로를 약간 마주 보는 상태로 서서 둥글게 부푼 내 배 위에 남편과 내가 손을 얹은 상태로 앞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다.
간혹 그런 밤이 찾아올 때에 이제 이 사진을 들여다본다. 사진을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설정해 놓고 그런 밤이 찾아오지 않을 때에도 이 사진을 자주 들여다본다. 보고 있으면 사진 속 나를 따라 미소를 짓게 된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놓이고 편안해진다. 우리 괜찮은 얼굴로 잘 살고 있구나, 행복해 보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한결 좋아진다. 뱃속의 아가 덕분에 결혼식 이후 처음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그 사진이 나에게 이런 위로를 줄 줄은 몰랐다. 불투명한 미래가 불안하기만 했는데, 사진이 이정표처럼 길을 안내하는 느낌이랄까. 이 길로 가면 반드시 행복해질 거라고.
졸업. 입학. 취업. 결혼. 임신. 출산.
인생의 과업이랄까, 어떤 급격한 변화나 성장을 동반하는 변곡점에서는 늘 기존의 것들이 무너지거나 재정립되고 새로운 것들이 생겨난다. 그 과정에서 원하든 원치않든 좀 더 유연해지고 성숙해지는 듯하다. 무언가 얻었다 싶으면 다른 무언가를 잃게 되고, 조금 행복해졌다 싶으면 또 조금 불행한 순간들도 찾아오게 되며, 조금 성장했다 싶으면 그만큼의 성장통을 겪게 되는 식으로, 무언가가 무언가로 교환되거나 대체되면서 내 영혼의 밀도가 높아진다.
우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세계로부터 왔고, 알 수 없는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그 알 수 없는 세계에는 좀 더 밀도 높은 행복으로 채워진 내가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