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탄생

사랑의 시작

by 신새눈



+1 0924 (2.66kg)


수술실.

네가 첫 울음을 토해내었을 때

너의 촉촉한 온기가 내 볼에 처음으로 닿았을 때

잔뜩 찡그리며 울던 빨간 네가 내 목소리에 울음을 멈추고 평온한 표정을 지었을 때

낯설고 따뜻하고 뭉클해서 눈물이 흐르던 이상한 기분.


눈을 감은 자줏빛 얼굴이 찍힌 영상과 사진 속에서

너는 작고 낯선 타인에 지나지 않았는데

어느새 내 마음속에서 우주만큼 자라났다.




+3 0926


너를 처음으로 품에 안았을 때 너무 작고 예뻐서,

이렇게 작고 완벽한 인간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경이로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작고 여린 작디작은 인간,

비현실적으로 순수하고 아름다운 존재,

이런 존재가 내 안에서 생겨나고 자라나

지금 내 품 안에 안겨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보고 있으면 시간이 멈춰버리는 것도 같고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버리는 것도 같고,

마치 다른 시공간에 와 있는 것도 같고,

시간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4 0927


입원 3일 차 새벽.

악몽을 꾸었다.

너무 다급하고 무섭고 충격적이어서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깨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을 상실하는...

예전의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공포.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건 이런 공포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일이기도 하구나.




+5 0928


남편이 분유 처음 먹인 날

내가 응가 기저귀 처음 갈아준 날.


방안에 남편과 나란히 앉아 침대에서 곤히 자는 예쁜 너를 보고 있으니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싶더라.

너의 작고 예쁘고 평화로운 모습을 눈에 새기고 싶더라.

이 순간 너의 모습을 또렷하게, 지금 내 눈에 담긴 모습 그대로

죽는 순간까지 기억하고 싶더라.

어떻게 하면 이 순간 너의 모습을 하나도 훼손하지 않은 채로 보존하여 기억할 수 있을까

정말로 한참 고민했다.




+6 0929


눈을 처음 마주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두 눈을 모두 뜨고 나를 바라봤다.

웃어줬다.

내 품에서 편안해 보였다.

너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기억할게.

이 순간을.




+8 1001


오늘은 오후 모자동실 시간 동안 자면서 얼마나 많이 웃어주던지.

처음으로 소리 내서 웃는 모습도 보았다.

5~6번 정도 웃은 듯?


엄마 아빠 품에서 뒤척이지도 않고 푹 자다가 간 너.

며칠 사이에 솜털 머리카락도 짙고 풍성해진 거 같고,

볼살도 오동통 오른 거 같고,

목소리도 더 커진 거 같고,

이제 두 눈을 동시에 뜨기고 하고,

눈을 뜨고 주변을 살피거나 초점책도 잘 쳐다보고.


오늘도 작고 완벽한 너는 이렇게나 예쁠 수 있나 싶을 만큼 예뻤단다.




+11 1004


오늘 방귀 소리를 처음 들었다. 귀여워.

자면서 입술을 오물거리고 미소 짓기도 하고 귀여운 소리도 낸다. 귀여워.


나의 몸이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제 구실?을 한다는 게 여러모로 신기하고 감사함.


조금 우울하고 답답함.

그래도 너를 보면 충만함.


모두 너만 원하는 거 같아서 좀 쓸쓸했다.

나는 좀 더 사랑받고 싶은 걸까.

가지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지 말고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그냥 내가 너를 더 사랑할게 :)




+12 1005


오후에 한번 더 너를 방에 데려왔다.

오늘 처음으로 속싸개 밖으로 한 팔을 내놓고 있었는데

안아주면서 배냇저고리에 싸인 네 손을 잡으니 작은 손으로 내 손을 꼭 쥐더라.


의식적인 행동이라기보다

반사적인 행동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뭔가 감동적이었다.


평화롭고 충만한 이 순간,

네가 없었다면 나는 이 순간을 경험할 수 없었겠지.

네가 있어 참 좋다.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