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다가 병원에서 온 전화를 받았다. 이번에도 간호사는 친절한 말투에 아쉬움을 담아 임신이 아니라고 말했다. 남은 밥을 꼭꼭 오래 씹어서 삼켰다. 증상놀이*에 당한 이후 증상이 나타나도 기대하지 말자고 마음을 정했는데, 이번에도 그전에 없었던 새로운 증상이 나타나는 바람에 또 기대를 해버리고 말았다.
*증상놀이: 난임 시술(시험관, 인공수정) 후 결과를 기다리는 기간 동안 임신과 유사한 증상을 겪는 현상을 이르는 맘카페 용어. 과배란을 하느라 자극된 난소에 의한 증상이거나, 과도하게 투여된 호르몬으로 인해 생리 전 증후군이 세게 오거나, 또 임신에 대한 기대감으로 인해 나타나는 증상으로, 임신 증상과 매우 유사하여 임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든다.
설거지를 해놓고 주방을 정리한 다음, 거실로 가서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던 남편을 끌어안았다. 남편은 어이쿠 갑자기 왜이래, 라고 말했지만 가만히 내 등을 쓸어주었다. 남편을 끌어안는 순간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 하얀 벽이 주는 썰렁한 느낌이 우리 부부의 미래를 빗대는 어떤 은유처럼 느껴졌다. 기분이 이상했다. 마음이 비어버린 듯 허전한 느낌은 아니고, 벼랑 끝에 다다른 듯 절망적인 기분도 아니고, 서럽게 슬픈 것도 아니고, 요전처럼 화가 치미는 것도 아닌데, 뭐랄까... 말하자면 온 세상이 아주 약간 건조해지고 채도가 낮아진 감각이었다. 아주 약간 변한 것뿐인데 모든 것이 달라져 돌이킬 수 없게 된 것 같이 여겨져 잔잔하게 조바심이 일었다. 알 수 없는 예감에 눈물이 차올라 한 방울 두 방울 흘러내렸다.
남편의 제안에 따라 우리는 옷을 대충 걸치고 자동차에 올랐다. 10월 초, 가을 햇살이 유난히 눈부신 날이었다. 자그마한 저수지를 끼고 지어진 2층짜리 베이커리 카페에 도착한 남편과 나는 빵과 음료를 주문하여 저수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2층 통창 앞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평일 오후라 손님이 거의 없었다. 남편은 아이스초코라떼, 나는 뜨거운 녹차라떼를 홀짝이며 창 너머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나는 비염 때문에 냄새를 맡지 못해 밍밍한 단맛만 느껴지는 녹차라떼를 마시며 계속해서 저수지를 바라보았다. 집에 있었으면 임신에 대한 생각과 실패감에 사로잡혀 있었을 텐데 탁 트인 장소에서 새로운 시각적 자극을 받으니 기분이 환기되는 듯했다. 남편의 배려가 고마웠다.
저수지 오른편으로 노랗게 물든 벼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논이 펼쳐져 있었다. 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언뜻 그림처럼 창에 붙박여 있는 것 같았지만, 한 점을 좌표처럼 찍고 가만히 응시하면 미세한 변화들이 포착되고 뒤이어 그 변화를 유도하는 살아있는 생명체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수지와 논 사이에 놓인 좁다란 흙길은 카페 쪽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저수지와 논이 만나는 소실점 즈음에 하얀 거위 한 쌍이 목을 빼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더니 바닥에 몸을 말고 잠이 들었다. 곧 길가의 수풀이 흔들리더니 색색의 닭들이 뛰쳐나왔다. 모이를 쪼듯이 부리를 바닥에 내리찍으며 부산스럽게 움직이던 닭들은 몇 마리씩 무리 지어 논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일대를 누볐다. 현실감 없는 한가로운 풍경에 마음이 누그러졌다. 남편은 바닥에 잠든 새가 거위인지 오리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3층 루프탑 테라스에 가보자고 했다. 나는 자리를 비워두기도 애매하고 피곤하니 혼자 다녀오라고 했다. 남편은 3층에 뭐가 있는지 보고 와서 알려주겠다고 말하고는 가볍게 자리에서 일어나 홀홀 걸어가 버렸다.
때때로 나를 경쾌하게 만드는 남편의 이런 단순함이 좋다고 생각하며 혼자 닭들이 뛰노는 광경을 보고 있는데 비둘기와 까치가 연이어 창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날렵한 새의 동체가 마치 물 위를 떠가듯 천천히 내 눈앞을 지나갔다. 시간이 미묘하게 느려진 듯했다. 이상한 감각에 의자에 기댔던 몸을 일으켜 새가 지나간 자리 너머로 저수지를 바라보았다. 저수지의 수면 위에는 이따금씩 반짝, 하고 동심원이 생겨났다. 가만히 지켜보니 은빛 물고기가 물 위로 점프를 하듯 뛰어올랐다가 사라졌다. 물고기는 작고 멀리 있어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공중으로 떠오른 몸이 활처럼 휠 때 은빛 비늘이 햇빛과 만나 순간적으로 광채를 띠는 듯했다. 동심원들이 이지러지는 자리에 갈색털을 가진 오리 두 마리가 꼬리를 위로 쳐들고 물속에서 먹이를 잡고 있었다. 물속에 머리를 집어넣었다가 뺐다가 하면서 저수지를 누비는 오리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때 남편이 돌아왔다. 그제야 시간이 제 속도를 찾은 듯했다. 남편은 3층에 그네 벤치가 있는데, 햇살이 뜨거워 조금만 앉아있다가 금방 내려왔다고 말하며 초코라떼를 빨대로 쪽쪽 빨아 마셨다. 나는 방금 목격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남편은 고개를 끄덕이며 저수지를 바라보다가 저수지 구석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오리 가족인가 봐."
남편이 가리키는 곳에는 수풀이 짙게 우거지고 물결이 치고 있어서 오리의 형체가 주변 사물과 잘 구분되지 않았다. 나는 자세히 보기 위해 안경을 꺼내어 썼다. (시력이 나쁜 편이지만 안경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필요할 때만 안경을 쓴다.) 그곳에는 내가 본 오리와 같은 색깔의 털을 가진 자그마한 오리 몇 마리가 물결에 흔들리는 채로 동동 떠있었다.
아... 아기 오리...
머릿속이 하얘졌다. 애써 지우려 했던 생각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오리 위로 '자손 번식'이라는 단어가, 노랗게 익은 벼 위로 '결실'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모든 생물들에게 숨 쉬듯 당연한 일이 나에겐 왜 당연하지도 않고 쉽지도 않을까. 임신에 실패하고 마주한 장면이 수분과 채도가 줄어든 세상이라니, 아이가 나에게 어떤 의미였길래….
(물론 그들 나름대로 생과 사투를 벌이며 치열하게 살고 있겠지만) 동식물들의 단순 명료한 삶이 부럽다고 생각했다.
저 오리는 새끼를 낳을지 말지 고민하지 않겠지,
새끼 오리가 자기에게 어떤 의미인지 고뇌하지 않겠지,
새끼가 생기지 않는다고 풀이 죽어있진 않겠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떤 오리로 살아가고 싶은지 따위의 복잡한 생각은 할 필요가 없겠지...
남편에게 이 생각을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내 문제에 답을 찾아주기를 좋아하는 남편에게 답 없는 문제를 들이밀고 싶지는 않았다. 오리의 삶이 부럽다고 한들 내가 오리가 될 순 없으니.
며칠이 지났다. 우리는 의사의 제안대로 한 달 정도 쉬면서 다음 단계를 고민해 보기로 했다. 의사는 세 번 정도 인공수정을 시도했는데도 성과가 없었으니 시험관 시술로 넘어가는 것을 권한다고, 시험관 시술이 주사도 더 많이 맞아야 되고 병원도 더 자주 와야 하고 난자를 채취할 때 수면마취도 해야 하니 힘들 수도 있지만 인공수정보다 확률이 더 높다고, 환자분 나이가 적지 않으니 되도록 빨리 시작하는 게 유리하다고, 그러니 다음 단계를 잘 고민해 보시라고 말했다.
생리가 시작되자 내내 가라앉아 있던 기분이 평온한 상태로 돌아왔고 비로소 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나는 이성적으로 나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되짚어보았다. 객관적으로 표현하자면, 내가 약을 먹고, 주사를 맞고, 시술을 시도한 일은 일종의 목표가 뚜렷한 '실험'이었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결과를 성공과 실패에 대입해서 생각을 했다. 성공(=임신)하면 좋고 기쁜 거, 실패(=비임신)하면 나쁘고 슬픈 거라고.
애초에 성공확률이 낮은 실험이었으니 어쩌면 실패가 더 당연했을 텐데, 일단 실험을 시작하고 나니 욕심이 났나 보다. 아이가 있는 삶과 없는 삶은 그저 형태가 다를 뿐이니, 횟수를 정해서 딱 그만큼만 시도를 해보고 결과를 받아들이자고 남편과 얘기를 끝냈는데, 실험이 막상 시작되니 성공에 대한 압박감을 느꼈던가보다. 그도 그럴 것이 실험의 당사자인 나는 증상놀이로 밝혀진 실질적인 신체 증상을 겪으며 임신의 현실이 손에 잡힐 듯 여겨졌으니, 욕심이 나고 기대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혼자 들떴다가 실망한 스스로를 탓하지 않고, 증상놀이의 피해자였음을 담담히 받아들이자고 위무했다.
마음이 진정되니 오히려 더 잘 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음이 반반인 나에게 아이가 너무 쉽게 찾아왔다면, 만약 그랬다면 찾아와 준 아이가 덜 반갑고 덜 소중했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간절히 원해서 아이를 정말로 감사히 여길 수 있을 때 아이와 정말로 기쁜 마음으로 만나기 위해서 이런 과정을 겪는 거라고, 또 아이의 입장에서 본인을 품어도 엄마 몸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내가 좀 더 건강할 때 찾아오려고, 내가 행복한 엄마가 될 마음의 준비를 마치면 그때 찾아오려고 이런 과정을 겪는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홀가분하고 편안해졌으며, 단단히 다져지는 듯했다.
이 실패와 고민의 시간이 아이가 나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마련해 준 선물 같은 시간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자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존재할지조차 알 수 없는 아이의 다정함에 새삼 감격스러웠다.
운명론자도 아니고 종교도 없지만 일어날 일이 일어나고,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을 믿는다. 머무르지 않고 어떻게든 나아가는 인생이라면,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이 사람과 함께라면 아이가 있는 삶도 괜찮을 것 같다.
우리 부부는 이로써 손을 꼭 잡고 인공수정의 터널을 지나 험난한 시험관 시술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