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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새눈 Oct 01. 2024

나의 자궁에선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증상놀이의 덫 (인공수정 실패담)




마흔에 접어들면서 현실적으로 임박한 가임기간의 한계를 마주하고 아이를 낳는 선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가능한 최선의 선택을 내리기 위해 아이가 있는 삶과 없는 삶의 무게를 저울질하며, 나를 들여다보고 지금을 두드려보고 다음 발자국을 내딛게 될 시간들을 가늠해 보았다.


아직 확실히 아이를 원한다는 결론에 이른 건 아니다. 하지만 난임진단이 나를 조급하게 만들고 엄마나 시부모님의 독촉이 조금은 나를 떠민듯한 상황 속에서 일단 시도라도 해보자? 는 합의점에 도달해 몇 달 전 난임치료를 시작했다. 아이의 심장소리를 1000% 반겨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데 시도라도 해보자는 식의 진행이라니, 어불성설이 따로 없다는 걸 알고는 있다. 그러나 일단 어쨌든 시작했다.




아이를 낳더라도 엄마라는 이름에 내가 파묻히거나 지워지지 않도록,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때, 내가 나로서 바로 설 수 있을 때, 정말로 확신이 들 때 아이를 갖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상 백수에, 이렇다 할 비전도 뭣도 없는 이도저도 아닌 상태에서 어설픈 마음으로 아이를 가지는 시도를 하게 되다니!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완벽한 준비, 완벽한 타이밍이라는 건 없다는 걸 알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시도를 해보겠다는 결정은 시도의 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이겠다는 의지의 반영인 걸까.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이 결정이 조금은 무겁지만 조금은 후련하고 조금은 무섭지만 조금은 기대된다.


현재 나는 인공수정을 몇 번째 시도 중이다. (이 말은 이미 몇 번이나 실패했다는 말이다.) 인공수정이란 자궁 내 정자주입술이라고도 하며, 기계 및 약품처리를 거쳐 선별한 운동성이 좋은 정자를 자궁 안 나팔관 근처까지 넣어주는 시술을 통해 임신을 시도하는 방법이다. 여기에 과배란을 유도하여 배란되는 난자의 개수를 늘리면 임신 확률을 더 높일 수 있다. 일반적인 인공수정의 임신율은 8~15% 정도이고, 과배란 인공수정의 경우에는 최대 20% 정도의 임신율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다니는 병원의 팸플릿 참조)


※ 과배란: 원래는 한 번에 하나의 난자가 배란되는데, 인위적으로 배란되는 난자의 개수를 늘리는 것


시술을 시작하기로 한 날 우리는 병원에서 도시락이 들어있을 것처럼 생긴 손잡이 달린 가방을 받았다. 난임검사와 용종 제거를 위해 병원을 오가며 그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는데, 그때마다 저 안에는 뭐가 들었을까 참 궁금했더랬다. 드디어 알게 된 가방 안 물건의 정체는 바로 호르몬 주사제였다. 주사제는 냉장보관을 필요로하므로 아이스팩, 주사제, 알코올솜을 보냉기능이 있는 그 가방에 넣어주는 것이다. 맘카페에서는 실제로 그 가방을 도시락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주사 맞는 일이 아프고 고되지만 아기가 먹는 밥이라고 생각하며 참아낸다고도 했다. 가방을 안고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기분이 묘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과배란을 동반한 인공수정 방법으로 진행을 했으므로 배란을 유도하기 위해 때맞춰 알약을 먹고 배에 주사도 맞았다. 주사를 맞는 횟수는 총 4회 정도로,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집에서 주사를 맞아야 하는 일은 겁이 났다. 스스로 하기 보다는 남이 해주는 편이 훨씬 나았지만, 주사를 놓아주는 사람이 난생처음 주사를 놓아 보는 남편이라는 점은 또 다른 두려움을 일으켰다. 도시락 가방을 받을 때 간호사가 주사 놓는 법을 충분히 설명해 주었지만, 이론과 실습은 영역이 다르지 않은가. 


바늘이 짧은 주사기지만 뱃살이 많이 없는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객관적으로 주사를 맞기에 충분한 뱃살이 있다.) 혹여나 남편이 바늘을 잘 못 찔러서 장기를 찌르게 되지는 않을까, 그래서 피가 나진 않을까, 많이 아프면 어떡하나, 생각만 해도 손에 땀이 났다. 제일 처음 주사를 맞을 때는 준비를 다 갖추고 주사기를 손에 든 남편과 뱃살을 두툼하게 꼬집은 자세의 내가 잠깐만을 외치며 거의 10분 이상 대치를 했다.


그렇게 주사를 맞고 약을 먹어서 과배란이 된 난자의 개수는 매달 달랐는데 처음엔 4개, 다음엔 3개, 그다음엔 2.5개였다. 그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네알이, 세알이, 이쩜오알이로 칭했다. 아랫배에 살포시 손을 올리고 눈을 감으면 동그랗고 귀여운 모양의 상상 속 난자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그러면 알을 품는 닭이 된 듯한 포근한 기분이 들었다.


시험관 시술에 비하면 덜 힘든 편이겠지만, 과배란 유도제를 먹으면 손가락 관절이 아프고 피로했으며 새벽에 몇 번씩 잠에서 깨어 깊은 잠에 들지 못했다. 호르몬에 인위적으로 몸과 감정이 휘둘려 무기력과 나른함에 짓눌린 나날을 보냈다.


시술 후에도 이런저런 증상들이 나타났다. 아랫배가 콕콕 쑤시는 증상, 배가 빵빵한 느낌, 피로감, 미열, 오한, 배고픔 등등.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임신극초기 증상을 검색해 보면 증상들이 맞아떨어지곤 해서 깜짝 놀라며 멍해지곤 했다. 내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긴 한 건지, 이대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괜찮은 건지 불안해하면서도 약간은 설레는 마음으로 임신을 확인할 수 있는 날짜를 손꼽아 기다렸다. (생리예정일이 지나야 정확한 결과를 알 수 있다.)


첫 번째에는 그런 증상들이 있긴 했지만 시큰둥했다. 로또와도 같다는 인공수정 1회 차 성공인 건가, 하는 우쭐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기대감보다는 불안이 앞섰다. 하지만 임신을 확인하는 날에 생리가 시작되어 아쉬워할 겨를도 없이 다시 과배란 유도제를 먹기 시작했다. 그래도 마음이 조금 헛헛하긴 했다. 생각보다 헛헛한 정도가 커서 좀 놀랐다.


두 번째에는 왠지 느낌이 좋았다. 시술을 끝내고 탈의실로 향하는 나를 배웅해 주던 간호사가 "수고하셨어요, 오늘 밤엔 좋은 꿈 꾸세요."라고 말하며 지어준 미소가 왠지 어떤 암시처럼 와닿았다. 일주일쯤 지났을 때, 주방에 커다란 콩 덩굴이 주렁주렁 열려있고, 그중에 한 개를 따서 깠더니 콩 두 개가 들어 있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에 화장실에서 착상혈로 추정되는 분홍색 냉을 확인했다. 꿈도 의미심장하고, 착상혈의 시기도 맞아떨어졌으며, 더군다나 첫 번째와는 다른 증상이 나타났으므로 확신의 기운이 차올랐다.


'콩이 두 개였으니까 쌍둥이일까..?'


며칠 새벽에는 심한 두통으로 잠을 못 자기도 했다. 혹시 몰라서 타이레놀도 먹지 않고 앉았다 누웠다 하며 끙끙거렸다. 인터넷 검색에서 두통도 임신 극초기 증상에 해당됨을 확인하고는 긴장감이 더더욱 고조되었다.


'정말 임신인가 봐! 태몽이 콩이었으니 태명은 콩콩이라고 해야 하나? 쌍둥이니까 태명도 두 개 여야 하나? 한쪽이, 두쪽이? '


생리 예정일에 아침 일찍 눈을 뜬 나는 남편이 깨지 않도록 조용히 화장실로 가서 임신테스트기를 했다. 그러나 결과는 한 줄. 이리보고 저리 봐도 명확한 한 줄이었다. 맘카페에서 매직아이처럼 보면 보인다고도 해서 실눈을 뜨기도 하고 노려보기도 했는데, 역시나 한 줄이었다. 시간이 지나 희미하게 떠오른 시약선이 임신을 의미하는 또 다른 한 줄일지도 모른다는 의심과 임신테스트기가 불량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병원을 방문하여 피검사를 했다. (제품마다 다르지만 내가 사용했던 임신테스트기의 결과는 5분 이내에만 유효하다고 설명서에 적혀있었다. 시약선이 드러난 시간은 5분 이후였으므로 나의 의심은 억지스러운 면이 있었다.)  몇 시간 후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안타깝지만 임신이 아니시네요."




두둥!


'임신이 아니라고? 너무 극초기면 피검사에서 검출이 안될 수도 있다고 맘카페에서 읽었는데, 그런 경우인가? 그럼 며칠 더 기다렸다가 다시 임신테스트기를 해 볼까? 그래도 피검사가 정확하다고 했는데, 피검사에서 아닌 거면 진짜 확실히 아닌가? 분홍색 냉은 뭐야 그럼? 두통은? 그 꿈은? 배가 쿡쿡 쑤시고, 열감이 있고, 피로하고, 춥고, 배고프고, 머리도 아팠던 그동안의 증상들은 뭐였던 거지? 이번엔 확실히 뭔가 달랐는데...'


생각을 할수록 무언가에 농락당한 기분이 들어 심술이 나고 짜증이 나고 화가 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간절하지는 않다고 생각했고, 임신을 하면 변화할 몸과 생활을 두려워하기만 했는데, 꿈을 꾸고 임신을 의미하는 듯한 증상이 나타났을 때, 나는 의외로 아주 자연스럽게 현실을 인정하고 앞으로의 변화들도 기꺼이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다. 스스로도 신기했다. 이런 게 엄마의 마음인 건가, 생각하며 엄마의 마음으로 좀 더 부지런한 생활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더랬다. 그런데 아니라니...!


내가 체험한 임신의 징후가 아무 의미 없는 것이었다는 걸 쉬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비임신이라고 확인을 받고 나니 증상들도 사라진 듯했다. 허망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속은 듯 홀린 듯 끝나고 나니, 아이 없이 살아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역시 나한테 아이가 있는 삶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자조 섞인 생각이 들기도 하고, 여기까지 흘러온 것은 내 의지가 아니라 은연중에 시부모님이나 엄마의 바람이 나의 바람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면서 아이가 있는 삶을 비관하게 되었다. 상심한 채로 맘카페를 기웃거리다가 그 단어를 발견했다.

증. 상. 놀. 이.


시험관이나 인공수정 시술을 받는 사람들 중에 많은 수가 나처럼 임신처럼 여겨지는 증상들을 겪지만 임신이 아닌 결과를 통보받게 된다고 했다. 과배란을 하느라 자극된 난소에 의한 증상이거나, 과도하게 투여된 호르몬으로 인해 생리 전 증후군이 세게 오거나, 또 임신에 대한 기대감으로 인해 그런 증상들이 나타난다고 했다. 사람마다 증상이 다르지만 어떤 사람은 입덧 증상까지 겪다고 했다. 증상을 겪으며 이런저런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되어서 그런지, 놀아나는 기분이 들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그러한 현상에 증상놀이라는 귀여운 이름을 붙였다.


나도 증상놀이를 했던 것이다. 실망하기가 싫어서 처음부터 (조금 더 확률이 높지만 힘든) 시험관 시술을 한다는 난임부부의 인터뷰 영상을 유튜브에서 보았을 때,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증상놀이를 심하게 겪고 나니 그 마음이 백번 이해가 되었다. 많이 간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도 이 정도라면, 간절했다면 얼마나 낙담했을까. 또 임신이 되었다가 유산하게 된다면 얼마나 슬플까. 역시 경험하기 전에는 감히 짐작할 수 없는 감정들이 있는 것 같다.




임신의 가능성을 감지했을 때 설레던 마음을 기억한다. 성공을 예감했을 때 나는 몇 초도 안 되는 사이에 배가 부른 나의 모습, 아이를 안고 있는 나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했다. 그 느낌이 좀 낯설었지만 싫지 않았다. 마음이 반반이라는 건 아이를 바라는 마음과 그렇지 않은 마음이 같은 양이라고, 같은 크기의 플러스와 마이너스이므로 결론적으로는 제로에 수렴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마음들은 숫자처럼 상쇄되는 개념이 아니라 하늘의 해와 달처럼 뚜렷하게 각자의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반에 해당하는 '아이를 원하는 마음'은 생각보다 큰 부피를 차지하고 있었다.




병원을 다니고 있지만, 발달된 의료기술 덕분에 인위적으로 생명이 잉태될 수 있음이 여전히 신기하다. 우리 부부가 받는 의료 행위들이 정말로 아이가 생기는 실재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도 아직은 피부로 잘 와닿지 않는다. 나는 얼떨떨한 채로 최첨단의 시대를 살고 있다. 시작을 했으니, 어떤 미래로든 나아가게 될 것이다. 확신에 찬 결정은 아니었지만 시도를 한 덕분에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어쩌면 그조차 호르몬에 의한 감정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실체 없는 증상과 상심을 경험한 덕분에 아이를 원하는 내 마음의 부피를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의 자궁에선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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