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와 양배추, 그리고 행주
(지난 연말의 이야기지만 이제야 정리를 해 본다.)
요즘 새로운 것들이 좋아지는 중이다. 내가 싫어했던 것들, 싫어할 거라 여겨서 시도해보지 않은 것들을 하나씩 해보는 중인데 의외로 그중에서 좋아지는 것들이 있더라. 내가 나이가 들었기 때문인지, 아직도 발견하지 못한 나를 알아가는 중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오래 살고 볼 일, 이라는 옛말이 실감 나는 요즘이다.
젊은 시절?의 나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데서 약간의 흥분을 느끼는 편이었다. 그러나 약 7년 전 진로와 미래에 대한 고민이 늪처럼 나를 잠식해 와서 공허와 허무에 사무치게 된 이후로 나는 새로움을 꺼리게 되었다. 현실을 마주하자면 답답했고, 미래를 그려보자면 막막했다. 어느 곳에도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없는 것 같았다. 당시의 나는 현재에 속하지도 못하고 미래로 나아가지도 못한 채 어떤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는 목소리에 쫓기며 나날이 피폐해져 갔다. 별 일 없이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쳤다.
그로부터 2년 후, 회사의 사정으로 1년 간 백수 생활을 했다. 매우 무료하고 공허한 시간들이었다. 아무것도 써지지 않은 백지 같은 하루들이 후루룩 지나는 동안 이상하게도 어릴 적 꿈에 대한 열망이 조금씩 피어올랐다. 그 열망은 재취업에 성공하고 난 후에 점점 더 커졌고, 결국 1년이 채 되지 않아 앞으로의 인생을 모두 걸 큰 결심을 하고 퇴사를 했다. 그리고 두 번의 시도만에 합격한 대학원 박사과정을 한 학기 만에 때려치웠다.
마흔이 되어 맞닥뜨린 실패는 처참했다. 나는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고 내내 실패를 곱씹으며 겨울처럼 시린 시간을 보냈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매달렸던 마지막 희망이 산산조각 났다. 그 광경을 마주하고 나니,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며, 무엇을 원하고 원하지 않는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무엇이 될 수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무엇을 붙잡고 나아가면 좋을지,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잃어버린 나를 찾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글을 쓰며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실패에서 나름의 의미를 발견했지만, 낙오자의 기분이 말끔하게 사라지진 않았다. 나에게 유일하게 의미가 있는 행위, 글쓰기를 부지런히 해보겠다는 결심도 번번이 무너졌다.
그러던 중 생물학적 가임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자각에 떠밀리듯 찾아간 병원에서 우리 부부는 난임 판정을 받았다. 고심 끝에 몇 차례 인공수정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로 끝났다. 인생에 실패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것 같았다. 딱 그즈음이었다. 실패의 딱지를 가슴에 붙인 채 더 이상 잃을 것도, 내려놓을 것도 없어진 어느 겨울날, 저녁을 먹고 혼자 공원에 산책을 나갔다가 운동장 트랙을 달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눈길이 닿았을 때 '나도 한 번 뛰어 볼까.'라는 생각이 든 것은.
#달리기
그날 나는 자연스레 발걸음을 운동장으로 옮겼고, 곧 그들 사이에 섞여 들었다. 달리기로 이어진 일련의 생각과 행동의 흐름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매우 사소하고도 우발적이며 자연스러운 우연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나는 자발적으로 달려본 적이 거의 없다. 빨리 걸을지언정 달리는 건 싫었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달리기 싫어하는 분명한 이유가 몇 가지 있었다.
밖에 있을 때는 옷이 달리기에 불편하거나 짐이나 가방이 거추장스러우니 달리지 않았고, 집에 들어오면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았으므로 달리기를 할 일이 없었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땀이 잘 나지 않는 체질 때문에 어릴 때부터 격한 운동이나 달리기를 기피했다.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체온이 오른다, 땀이 나지 않으므로 몸과 얼굴이 빨개지고 달아오른다, 얼굴에 수분이 증발해서 건조해지고 열기가 식지 않아 답답해진다, 얼굴에 모공이 넓어지고 유분이 배출되어 얼굴이 번들거린다, 얼굴이 빨개지다 못해 시꺼메진다, 못생겨진다(화장이 무너진다)'로 이어지는 일련의 알고리즘에 의해 화장을 하고 다니는 어른이 되어서는 더더욱 뛰지 않게 되었다. 몇 년 전 집에서 혼자 요가를 하다가 왼쪽 무릎을 다친 이후로는 오래 걷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운동을 썩 좋아하지 않는 성향 탓에 굳이 힘을 들여 몸을 움직이는 일들이 귀찮기도 했다.
그러므로 한 번 달려볼까,라는 생각이 든 것은 나에게 매우 매우 희귀한 일이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내가 달리기를 싫어한 이유들이 다 제거된 상태 -편한 복장, 추워서 체온이 오르지 않는 계절적 환경, 이미 외출한 상황- 였으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스러운 흐름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런 매우 희박한 확률의 우연이 나에게 드리워진 실패의 그림자를 걷어내 줄 줄이야!
그날 나는 산뜻한 마음으로 트랙 위에서 땅을 가볍게 딛고 뛰어오르는 동작을 반복했다. 점차 호흡이 거칠어지고, 잡념이 사라지고, 지금 여기에 오로지 나만이 존재하는 듯한, 이 세상에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사라진 듯한 기분이 드는 동시에, 귓가에 울려 퍼지는 커져가는 나의 숨소리와 더불어 내가 점점 확장되어 이 공간이 나로 가득 채워지는 듯한 충만하고 벅찬 느낌이 들었다. 신체적으로 호흡이 가빠져 가슴이 벅차오르는 경험이 오랜만이라 그 자체에 감명을 받은 것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오로지 나에게 집중한 몰입의 순간이 얼마만이었는지 모르겠다. 거기에 더해 몸이 움직이는 가뿐한 느낌과 몸이 공중에 떠 있게 되는 아주 찰나의 순간에 온몸을 휘감는 자유롭고 홀가분한 느낌도 황홀했다. 겨울이라 공기가 차가운 탓에 체온이 지나치게 오르지 않고 오히려 산뜻하게 훈훈해지는 점도 좋았고, 만성 비염이라 춥고 건조한 겨울에는 늘 코가 막히고 냄새도 잘 맡지 못했는데 얼마간 코가 뻥 뚫려서 신선한 공기가 코 끝까지 전달되는 점도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실재적인 감각이 나를 도취시켰다.
그 매력에 빠져 매일 달리기를 한 지 몇 주가 지났다. 처음엔 400미터 트랙을 한 바퀴 뛰고 나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느린 속도긴 하지만 일정한 페이스로 호흡을 조절해 가며 네 바퀴를 거뜬히 달려낸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이 뭔가 든든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반 바퀴에서 한 바퀴가 편안해지기까지 한참 걸렸는데, 그제는 세 바퀴, 어제는 세 바퀴 반, 오늘은 네 바퀴를 뛴 것이다.
집에만 있을 땐 적게 먹고 적게 움직이느라 소화도 잘 되지 않았는데, 달리기를 하니 피가 빵빵 쭉쭉 몸 구석구석 돌기 때문인지 에너지를 더 쓰기 때문인지 소화도 잘 되고 밥도 많이 먹고 눈도 맑아진 듯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진 것 같았던 내가 내 의지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그 행위가 나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실감이, 내가 조금은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주었다. :)
#양배추
몇 달 전 받았던 남편의 건강검진 결과가 나왔다. 남편은 비만에다 중증 지방간 판정을 받았다. 알코올을 입에도 대지 않는 남편의 지방간은 탄산음료와 아이스크림, 초콜릿을 좋아하는 식습관과 운동부족이 원인으로 보였다. 남편에게 함께 달리자고 꼬드겼는데 처음엔 장비가 없다는 핑계를 대며 러닝화를 한 켤레 장만하더니 나중에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함께 달리기를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같이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일단 식습관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이어트를 위해 포만감이 높은 양배추를 남편에게 먹일 궁리를 했다. 그러다 SNS에서 양배추 당근 라페를 보게 되었고, 맛있다는 칭찬 일색인 댓글을 보고 이것을 남편에게 먹여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나는 생양배추를 특유의 쓴 맛을 싫어했다. 양배추 샐러드는 거의 1mm 수준으로 채 썰지 않으면 쓴맛 때문에 먹지 못했다. 양배추뿐만이 아니라 모든 야채는 특유의 향이나 맛이 나지 않는 부드러운 상태여야 기분 좋게 삼킬 수 있었다. 예를 들면 푹 익어서 흐물흐물해진 양파나 양배추, 애호박 같은 것들.
내가 생야채를 좋아하지 않는 데에도 따지고 보면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다른 감각보다 후각이 예민한 편이다. 지금은 만성비염이라 냄새를 예전만큼 잘 맡진 못하지만, 한 때 나를 가장 기분 좋게 하는 것은 좋은 향기를 맡는 것이었다. (좋아하는 향수를 손목에 뿌리고 틈만 나면 킁킁대거나, 향기가 좋은 바디워시로 샤워하는 시간을 즐기는 등) 그런데 파, 마늘, 양파 등 향이 강한 야채를 주재료로 하거나 주양념으로 하는 한식의 야채 반찬들은 먹고 나면 입에 그 향이 진하고 오래 남아서 다른 사람에게 냄새를 풍기지 않는가.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는 파, 마늘, 양파 냄새도 싫고, 내 입에서 그런 냄새가 나는 것도 싫었다. 내가 느끼기에 그런 냄새는 양치질을 해도 잘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파, 마늘, 양파는 물론이고 한식에 자주 쓰이는 빨간색 양념이 묻은 반찬들을 잘 먹지 않았다. 매운 것도 잘 먹지 못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그런 류의 한식 반찬들에 질려서 야채를 싸잡아 좋아하지 않게 된 것이다.
암튼 나는 남편을 위해 양배추 당근 라페를 잔뜩 만들었다. 냉장고에서 몇 시간 숙성시킨 다음, 양배추 당근 라페의 맛이 궁금해 한 젓가락 조금 집어 먹어보았다.
...!
내 혀를 감싸는 신선한 느낌과 아삭한 식감, 그리고 새콤하고 상큼한 맛! 야채의 조직이 으스러지면서 뱉어내는 수분의 청량함과, 섬유질이 가볍게 분절되는 산뜻한 식감! 양배추가 이렇게 맛있는 야채였다는 사실에 놀라고, 그 사실을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아침에는 식빵을 구워 올려먹고, 점심과 저녁엔 반찬으로 곁들여 먹으며 한동안 부지런히 양배추를 소비했다. 남편이 이제 질리니 그만 먹자고 말할 때까지.
그리고 양배추 라페를 시작으로 잘 먹지 않았던 여러 야채 요리에 도전하게 되었다. 물론 아직도 파, 마늘, 양파를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건 아니지만, 야채와 조리법의 범주를 넓혀서 다양한 야채요리를 시도하게 되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같은 배추라도 김치는 잘 먹지 않지만 백김치나 배추전, 알배추쌈, 샤브샤브 국물에 데친 배추는 먹는 식으로 말이다. 양배추 라페를 즐겨 먹는 건강한 식습관을 가지게 되었다는 자각이 나를 좀 더 건전하고 성실한 사람이 되도록 부추기는 것 같다. 내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실감이, 달리기와 더불어 내가 조금은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주었다. :)
#행주
자취 15년에 주부 5년 차, 나름대로 주방 일을 해온 지 20년 가까이 되었지만 나는 아직 음식물이나 더러운 것을 손에 묻히기 싫어하며 깔끔을 떠는 애송이 초보 살림꾼이다. 그래서 주방의 물기나 오염을 여태 휴지나 물티슈로 해결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불찰로 물티슈가 똑 떨어졌다. 휴지를 물에 적셔서 닦아봤지만 휴지가 지나간 자리에 얼룩은 지워졌지만 휴지의 섬유질과 먼지가 남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언젠가 시어머니가 사은품으로 받았다며 나눠주신 행주를 꺼냈다.
내가 행주를 쓰지 않은 데에도 생각해 보면 몇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먼저 손에 닿는 행주의 축축한 느낌이 별로였다. 단지 물기일 뿐이지만 그 축축한 느낌은 손을 씻어야만 사라졌다. 다음으로 비틀어 물기를 짜는 것이 싫었다. 손이 아프기도 하고 그걸 반복하다 보면 손에 굳은살이 생기고 손가락이 굵어질 것 같았기 때문에 웬만하면 하고 싶지 않았다. 또 흘린 음식물을 닦고 나면 행주에 묻어있는 그것들을 다시 확인하며 씻어내야 하는 것도 기분이 별로였다. 그릇에서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은 좋으면서 그릇 밖에 떨어진 음식의 흔적들은 왜 그렇게 비위가 상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행주는 관리를 잘하지 않으면 금세 불쾌한 냄새가 나는데,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했을뿐더러 삶거나 소독해야 하는 행위가 어렵고 번거롭게 느껴졌다.
그에 반해서 물티슈는 축축하다기보다는 촉촉한 느낌이고, 비틀어 물기를 짜지 않아도 되며, 쓰고 버리면 그만이므로 닦아낸 음식물을 다시 보지 않아도 되고, 따로 관리해 줄 필요도 없다. 그야말로 행주의 단점을 완벽하게 보완한 대체품이라 할 수 있다. 물티슈를 사용하는 스스로를 약간은 더 나은 아이템으로 주방을 관리하는 진보한 주부처럼 느끼고 있기도 했다.
어쨌든 그랬던 내가 어쩔 수 없이 행주를 사용하게 된 날, 행주의 장점에 눈을 뜨게 되었다. 물티슈보다 두툼하고 부피감 있는 행주로 주방을 닦다 보니 더 힘주어 박박 닦을 수 있게 되고, 그러다 보니 훨씬 깨끗한 상태로 주방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솔직히 물티슈는 돈 주고 구매를 해야 하므로 나름대로 아껴 썼는데, 한 두장으로는 주방의 모든 얼룩을 완벽하게 깨끗한 상태로 만들지는 못했다. 물티슈를 아끼기 위해 물티슈를 한 번 빨았다가 다시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았지만, 그러면 행주랑 다를 게 뭐란 말인가. 나는 눈에 띄는 얼룩만 그때그때 대충 없애는 식으로, 얼핏 봐서 지저분하지 않은 정도의 청결상태를 유지하는 것에 만족했다. 그런데 행주를 사용하니 주방이 반짝반짝해지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반짝반짝함에 반해 그날 이후 나만의 방법으로 행주를 사용하고 있다.
일단 행주는 보통크기의 1/4만큼 자른다. 크기가 작아지면 작은 힘으로도 행주의 물기를 짜낼 수가 있다. 행주는 두 번 접어 사용하는데, 행주를 적실 때는 전체를 다 적시지 않고 아랫면만 적셔서 손이 닿는 부분은 축축하지 않게 하거나, 아예 고무장갑을 끼고 행주를 적신다. 그리고 물을 잘 뱉어내어 잘 마르는 재질의 행주를 자주 빨아 말리는 식으로 세균이 번식하지 않게 관리한다.
행주를 사용하고 나서 '조금 더 깨끗하게 닦아볼까, 조금 더 깔끔하게 정리해 볼까, 조금 더 효율적으로 수납해 볼까' 하는 식으로 조금 더 조금 더 주방일에 욕심을 내게 되었다. 하나의 변화로부터 주방이 더 깨끗해지고 주방 일에 의욕과 탄력이 붙어가기 시작했다. 또 1회용 물티슈와 휴지를 덜 쓰는 나 자신이 환경 보호에도 일조하는 것 같아 뿌듯하게 느껴졌다. 주부로서 내공을 쌓아가고 있다는 자각이 스스로를 기특하게 여기도록 만들었고, 조금이지만 예전보다 나아졌다는 생각이 내가 좀 더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
물론 날이 따뜻해지고, 양배추가 지겨워지고, 또 다른 귀차니즘이 도져서 지금의 루틴이 깨질 수도 있을 것이다. 더워지는 계절이면 나는 달리지 않을 확률이 높고, 칼질이 귀찮아 양배추 라페 만들기를 미루다가 양배추를 썩혀 버릴지도 모르고, 어쩌다 물티슈가 생기면 행주 대신 다시 물티슈를 집어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의 막다른 지점에서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새로운 즐거움과 변화, 그리고 느리지만 나아가고 있다는 자각, 내 쓸모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하게 한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 혹은 내가 좋아할지도 모를 무언가가 아니라, 내가 싫어한다고 여겼던 것과 내가 하지 않기로 습관을 굳힌 것들, 그러니까 오히려 '나의 반대편에 있는 나'라는 사실은 마치 밀실을 빠져나갈 열쇠를 내 발 밑에서 찾은 것과 같은 희열과 안도감을 느끼게 했다.
좋아하는 것들로도 나를 정의할 수 있지만 싫어하는 것들로도 나를 정의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내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그것을 왜 싫어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들을 적다 보니 그것들은 생각보다 본능적이고 순수했으며, 또한 표면적이고 피상적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소한 핑계들로 무언가에게서 얻을 수 있는 진정한 기쁨이나 의미를 놓쳐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무언가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태도를 조금은 달리하게 되었다. 본능적인 것을 거스를 순 없지만 대안은 늘 존재한다. 덮어놓고 싫어하거나 거부하지 않는 열린 마음으로 경험을 확장해 보려는 시도만으로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느릴지라도 나를 아끼며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으로 살고 싶다.
※ 사실 달리기와 양배추는 아기 때문에 시작된 변화라고도 할 수 있다. 아가야, 아직 너는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네 덕분에 엄마는 더 건강하고 건전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