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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새눈 Apr 19. 2024

딸은 엄마 팔자를 따라간다는 말에 대하여

그건 아마도 진화론적 얘기




새해 첫날부터 엄마와 싸웠다.

성인이 된 이후 처음이었다.

주변인들의 근황을 전해주며 시작된 대화는 친구들과 사촌들의 출산 및 육아 이야기로 흘러가며 아주 자연스럽게 나의 임신에 대한 주제로 옮겨갔다.


엄마는 내 나이가 많으니 임신이 어려울 테고, 낳아서 기르는 것도 체력이 달려 점점 더 힘들어질 테니 낳을 거면 더 늦기 전에 아이를 낳으라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엄마가 한 말 중에 '낳을 거면'이라는 말을 듣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한데, 그 말을 들을 당시에는 그 말의 요점이 '낳을 거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어서 낳아라'에 있다고 받아들였다.)  


내 나름대로는 아직 경제적인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며 주의를 돌리려고 했는데, 엄마는 낳기만 하면 어떻게든 될 것이며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아이를 키우는 데에 그렇게 많은 돈이 들지는 않는다고 말하며 내가 내세운 표면적인 이유를 반박했다. 나는 '휴거지, 개근거지' 등 요즘 말을 예로 들며 부모의 경제적 기반이 아이의 성장과 교우관계, 학교생활, 결국 아이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에 대해 설명하며 엄마의 반박을 반박하려 했다. 나는 점점 말이 빨라지고 목소리가 커졌으며 말투가 뾰족해졌다. 쯤에서 엄마가 이야기를 그만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만 엄마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기어코 나를 설득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엄마는 그런 경우는 극소수이며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런 말을 모르는 착한 아이들이고, 주위를 보면 그렇게 여유로운 집안이 아니어도 아이들을 잘만 낳아서 키운다고 말하며 세상물정 모르는 딸을 가르치 듯 말했다. 그러면서 엄마의 목소리도 커지고 날카롭게 변했다.


엄마와 싸우는 동안 엄마가 요전에 했던 말이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예전엔 안 그랬는데 요즘은 그렇게 아기들이 예뻐 보이더라. 네가 하나 낳으면 좋겠다야. 호호.'


그리고 방문할 때마다 나를 붙잡고 걱정인 듯 당부인 듯 강요인 듯 타이르던 시어머니의 말도 머릿속에 같이 맴돌았다.

'아이는 하나 있어야지. 너는 엄마 소리가 듣고 싶지 않니? 아이를 안아보고 싶지 않아? 나이 들어서 애 없으면 외로워서 어쩌려고 그러니. 네 나이도 있으니까... 아이 낳으라고 강요하는 게 아니고, 내가 손주를 원해서가 아니고, 너희가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야. 나는 손주 없어도 아무 상관없다.'


머릿속에서 울리는 엄마와 시어머니의 말, 그리고 내 앞에서 퍼부어대는 엄마의 말들에 감정이 격해진 나는 결국 엄마에게 차갑고 신경질적인 말투로 그런 집에서 태어난 아이는 불행할 거고 그저 그런 인생을 살게 될 게 뻔하다고, 나이 들어 임신하고 애 낳아 키우는 게 힘든 줄 누가 모르냐고,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만 말하라고 다그쳤다. 엄마는 '부모의 권리'라는 생소한 말을 집어던지듯 뱉으며, 말을 못되게 하는 나를 나무라고 방에서 나가버렸다.


부모의 권리라.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방에 남겨졌다.

내가 전혀 모르는 사실도 아닌 얘기를 굳이 해가면서 나를 설득하려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나이가 많으면 임신이 될 확률이 낮고, 나이가 많으면 아이를 키우는 것이 체력적으로 힘들며, 많은 돈이 없어도 아이가 자라는데(자라기만 하는데)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을 모르고서 아이 낳기를 망설이고 있다고 믿고 있는 걸까. 오로지 부모가 원해서 세상에 태어난 아기가 '잘, 좋은 인생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그 아이를 더 잘 책임지기 위한 준비가 덜 되었다는 생각을 그런 뻔한 이야기로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본인이 책임져주지도 못할 나의 아이에 대해 왜 이래라저래라 하는 걸까.





옆에서 자신은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핸드폰을 하면서 눈치를 보는 남편의 등짝을 때리며 나는 괜히 남편 탓을 했다. 당신이 중간에 말려줬어야지, 당신이 가만히 있어서 이렇게 된 거잖아!


한동안 집에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남편이 어쩔 수 없이 중재에 나섰고 데면데면한 얼굴로 엄마가 먼저 사과를 해왔다.


"엄마가 말이 심했지. 미안하다. 낳을 거면 늦지 않게 낳으라는 말이었지, 낳으라고 강요한 건 아니었어. 낳든 안 낳든 그건 네가 결정할 일이지. 내가 니 성격 모르는 것도 아니고. 밥이나 먹자."


나는 엄마가 싸주는 음식의 무게만큼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그다음 주에 가임력 검사를 위해 산부인과 진료예약을 해놓은 상태였고, 아이를 낳는 일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중이었다. 엄마와의 말다툼은 따지고 보면 타이밍의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그즈음 시가의 가족 행사에 참석하면서 약간은 강요받는 형태로 원치 않는 일들을 해야 했는데 그것에 대한 불만과, 시가에 갈 때마다 듣는 아기 낳으라말에 대한 응어리가 엄마의 말에 폭발해 버린 것일지도.


 시어머니의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정신건강을 해치지 않은 채로 그런 압박들을 내부적으로 처리하고 있다고 여겼는데 그게 조금씩 쌓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고백하자면 그날 나는 본질을  피하면서 궤변을 늘어놓았다. 아이를 낳아 기르려면, 아이에게 행복한 삶을 주려면 얼마나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어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열성적으로 피력했던 것은 사실 본질을 감추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 물론 그 부분도 무시할 수 없지만, 내가 아이를 낳기로 선뜻 결정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아이와 함께 과연 행복할 수 있을지, 내가 좋은 부모가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확신이 서지 않는 이유가 불행했던 가정환경 때문이라고 솔직하게 말한다면 엄마가 속상해하고 미안해할 것 같았기 때문에 다른 그럴듯한 이유를 둘러댄 것인데, 나의 적당한 핑계에도 단념하지 못하는 엄마에게 결국 화를 내어 버리고 말았다.


부모의 권리라는 말을 몇 날 며칠, 몇 주일을 곱씹었다. 엄마에게서 그런 강압적인 단어를 들었던 것은 내가 기억하는 한 처음이었다. 그 말을 떠올릴 때마다 기분이 언짢았다. 왜 그 말에 그토록 언짢으며 저항하고 싶어 지는지에 대해 시간을 들여 생각했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엄마의 무심함. 엄마의 무심함에 화가 났던 것이다. 내가 만약 아이를 낳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를 엄마가 제일 잘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남들과 똑같이 뻔한 이유를 들며 나를 몰아세웠기 때문에 서운했던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가난한 데다 빚이 많았고, 폭력이 동반된 잦은 부부싸움에, 위압적이고 가부장적인 집안 분위기로 늘 숨이 막혔다. 나는 내가 태어나기 전으로, 엄마와 아빠가 만나서 결혼하기 전으로 시간을 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랐다. 엄마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불행한 사람이었고, 아빠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무섭고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었다. 내가 성인이 되 엄마는 가출을 했고, 큰 사건을 하나 겪고 난 이후에 이혼에 이르렀다. 그 후로 우리 가족의 삶은 서로 떨어져 사는 거리만큼 점점 개별화되어갔다. 서로 모르는 일상들을 살아내면서 몰라도 상관없어지는 일들이 늘어나는 만큼 정서적으로도 조금씩 멀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조금은 늦은 결혼을 하며 가족과의 교집합이 줄어든 개인의 삶을 착실히 꾸리는 동안 나는 엄마, 그리고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낯선 장소 낯선 상황에서 드러나는 엄마의 낯선 모습에 가끔 깜짝 놀라며, 내가 엄마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인지, 각자의 삶을 꾸리며 많은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도 엄마도 변해버린 것인지 고민하는 동시에, 서로를 잘 알 수 없게 되어버린 모녀의 비극적인 현실 씁쓸해하며 가끔 외로움을 느꼈다. 이제 내가 돌아갈 곳은 없구나.. 하면서.


이번에도 그랬다. 내가 아는 엄마라면 그렇게 화를 내지 않았을 텐데 엄마는 낯선 모습으로 나에게 화를 냈다. 어릴 때부터 늘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라는 식이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왜 부모의 권리,라는 말까지 나오게 된 건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엄마라면, 함께 비극 속을 헤쳐온 엄마라면, 나의 상처와 나의 불안을 헤아려줄 줄 알았는데, 엄마는 자신의 상황도 나의 상황도 내 아이의 상황까지도 좋은 것만 추려서 긍정회로를 돌리는 순진함으로 나를 슬프게 했다. 





나는 아이와 함께 행복할 자신이 없다.

나 좋자고 가벼운 마음으로 아이를 낳았다가

내 아이가 나처럼 괜히 태어났다고 느낀다면, 가족과 있는 게 불행하다고 느낀다, 나처럼 세상을 비관하고 부모를 원망한다면 어떻게 하지. 그건 내가 그 아이에게 죄를 짓는 것이 아닐까.

내가 좋은 양육자가 되지 못하면 어쩌지.

내가 건강한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고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결핍을 내 아이에게 물려주게 되면 어떡하지.

생각처럼 아이가 사랑스럽지 않으면 어쩌지.

아이를 낳아서 더 힘들기만 하다고 느끼면 어쩌지.


배우자를 사랑하긴 하지만 배우자가 아이를 같이 키우기에 적합한 사람인지에 대한 검증도 끝나지 않았다. 임신 출산으로 인해 내가 신체적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졌을 때 나의 배우자는 나를 얼마큼 품어줄 수 있을까. 서로 한계에 도달하게 되어서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면 가족이 해체되는 위기를 겪게 되는 건 아닐까.


아직도 끝없이 스스로에 대해 의심하고 부모자격에 대해 의문을 갖는 내가, 내 몸 하나 챙겨 살아가기에도 벅찬 내가, 한 생명을 온전히 책임지고 감당할 수 있을까.


엄마라면 나의 이런 걱정들을 말하지 않아도 헤아려 줄 거라고 생각했었다. 노산라이팅도 달갑지 않은데, 뻔한 이유를 들 아이를 낳으라고 강요며 화를 내는 엄마라니..! 이렇게 또 한 뼘 더 멀어져 버리다니......





나는 엄마나 아빠 둘 중 누구도 닮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빠의 고집스러움을 닮았고, 엄마의 순진함을 닮았다. 그러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는데 기어코 아빠와 닮은 사람을 사랑하여 결혼한 것은 아닌지 불안해하는 밤들을 가끔 보낸다.


불행의 역사를 살아온 나는 불행을 마무리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은 아닐까. 불행하게 살아온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행한 상태에 놓이는 것을 편안하게 느껴서 행복할 수 있는 선택 대신 기어이 불행하고야 말 선택을 한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하지 못하는 인은

학습된 불행을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하는 의지일까,

아니면 내심 편안하게 느끼고 있을 불행한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의지일까.


나는 결국 아빠와 닮은 점이 있는 남자를 골랐고

결국 엄마와 닮은 인생을 살게 되어버리는 까.


 엄마 팔자를 따라간다는 말은

어떤 저주 같은 것, 또운명론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환경에 영향을 받고 환경에 적응해서 살아가 진화론적 이야기가 아닐까.

어쩌면 불행을 양분 삼아 성장한 사람은 불행을 꽃피우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엄마가 이 글을 읽으면 슬퍼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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