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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새눈 Dec 13. 2023

3. 새로움에 대한 갈증


요전의 글에서 스스로를 약간은 거창하게 '멀티플레이어'라고 칭했지만, 요즘의 나는 사실 모든 것을 그냥 적당히 해내고 있는 상태다. 글을 쓰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으면서, 몇 번의 공모전 마감에 맞추기 위해 애를 쓴 이후로 글도 열심히 쓰고 있지 않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씻고 밥을 하고 설거지를 비롯한 집안일을 하고 나면, 남편 일을 돕거나, 책을 읽거나,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보거나 인터넷의 파도를 타고 다니는 식으로 나태하게 살고 있다.


지금이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막연하고 나른한 기분으로, 사실은 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다. 이러한 시간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는 핑계를 대면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고, 마음껏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모든 것이 권태로운 가운데, 최근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 앓기 시작했다. 나는 원래 새로움을 앞에 두면 두근거리고 짜릿해 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진로에 대한 고민과 현재에 대한 회의가 권태로 굳어져 새로움을 찾아 나서는 것귀찮아 하게 된지 오래 되었다. 다시 새로움의 감각에 몸을 내맡기고 싶은 마음이 되자 마치 봄에 눈이 내리는 것처럼 반갑지만 싱숭생숭하고 얼떨떨하고 이상한 기분이었다.



가보지 못한 곳에 가서 경치를 구경하면 얼마나 가슴이 탁 트일까.

그곳 바람과 햇살은 얼마나 부드러울까.

먹어보지 못한, 새로 개발된 레시피를 따라 만든 음식은 얼마나 새로운 맛일까.

아직 방문하지 못한 유명한 맛집의 시그니처 메뉴는 얼마나 맛있을까.

인기가 많아서 구하기 힘들다는 신상 과자의 맛은 어떨까.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다는 새로운 디저트는 내 혀를 얼마나 감미롭게 할까.

품종 개량이 되어 마켓에 갓 유통되기 시작한 과일은 얼마나 달콤할까.

곧 개봉할 영화는 얼마나 흥미로울까.

곧 시작할 드라마는 얼마나 재미있을까.

겨울시즌 한정으로 출시된 카페 음료는 얼마나 달달할까.

갯벌에서 조개를 캐는 건 어떤 기분일까.

질퍽하고 밀도높은 진흙에 발을 딛는 기분은 어떨까.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하루는 어떨까.

강아지와 함께 지내는 생활은 어떨까.

해 본 적 없는 헤어스타일이 나에게 어울릴까.

이제와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아이가 있는 삶은 어떨까.

해질무렵의 공원에 나가볼까.

평일 한낮에 아무 버스나 타볼까.

화장을 해볼까.

새로운 향수를 사볼까.



적고 보니 놀고먹는 것들이 대부분이라 조금 머쓱하지만,

사람은 언제나 갖지 못했던 것을 갈망하며 사는 존재들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인간의 욕망이라는 거대한 개념에 나의 베짱이 심보를 조심스럽게 얹어 보았다...






유튜브를 보면서 '나도 노량진 컵밥을 먹어보고 싶다'라고 중얼거리는 남편을 부추겨 노량진 컵밥 거리에 갔다. 노량진에서 컵밥을 먹어본 적이 없는 남편과 나는 새로움을 체험할 생각에 잔뜩 신이 나서 집을 나섰다. 그러나 내가 마주한 새로움의 실체는 형편이 없었다. 그냥 서울이었고, 겨울이었고, 길거리 음식이었다. 새로움이라곤 눈곱만큼도 체험하지 못했다.


풀이 죽은 채 집으로 돌아오면서 새로움에 대해서 생각했다.


새로운 것에도 종류가 있구나.

낯설지만 새롭지 않은 것, 낯설고 새로운 것, 낯설지 않지만 새로운 것!

오늘은 낯설지만 새롭지는 않았어.... :(


사실 새로운 것들이 넘쳐나는 새로움의 바다와 같은 시대에 살고 있다. 지금껏 살아왔던 어떤 날들 보다 많은 새로움에 둘러싸여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지겨워하지도 않고 새로운 것에 열광하며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는 걸까.


로운 것은 지겨워지지 않는 걸까?

새로운 것에 중독이 되었까?

새로운 것에 대한 환상을 이용해 물건을 판매하는 상업적 노림수에 익숙해진 탓일까?

아니면 실제로 더 맛있고 더 발전되고 더 참신한 무언가가 계속 나오고 있는 트렌드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아니면 내 내면이 진실로 추구하는 욕망 때문에?

아니면 그저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아서 이것 아닌 다른 것이 필요해져서?


꼬리를 물고 이어진 생각들의 끝에 내가 납득할 만한 대답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에, 더 좋은 혹은 내가 가져보지 못한 무언가에서 나를 만족시킬 새로운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것처럼 여겼기 때문에 새로움에 목이 말랐다.

더 강한 자극이 아니면 소용이 없게 되는 자극의 감각이 아니라, 어쩌면 아직 찾지 못했을 나의 조각을 찾고 싶은 마음의 감각이었다.


새로운 곳에서 느끼는 새로운 감각, 새로운 사람과 나 사이에 가로 놓인 낯선 공기, 새로움 속에서 새로이 발견될 수 있을 새로운 나의 모습, 그런 새로움들에서 파생될 가능성에 대한 기대.

또 다른 기회와 또 다른 계기와 또 다른 자극으로 인해 변화될 미래에 대한 기대.

내가 원하는 것은 새로운 미래, 내가 원하지만 어쩌면 그려보지 못한, 아직 갖지 못한 미래였다.



나를 이끄는 새로움에 대한 욕망이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는데 따지고 보니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인생의 갈피를 잡기 위해 필요한 것을 욕망하고 있는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상태였다.

내 마음은 역시 다 계획이 있었다..!

아직 부족하지만 나를 더 멋진 곳으로 데려다 줄 새로움을 기다리며 내 마음을 긍정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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