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새눈 Nov 28. 2023

우리는 이렇게 살아간다.

우리는 각자의 궤도를 조금씩 수정하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두 개의 별




내가 어렵사리 들어간 대학원을 한 학기 만에 때려치우고 늦은 나이에 진로를 고민한답시고 집에 들어앉은 이후로 남편은 좀 예민해졌다. 월급만으로는 노후대비를 충분히 할 수 없다고 판단한 남편이 자는 시간을 쪼개가며 부업(온라인 판매 및 유통 관련)을 하다가 그 수입이 월급을 넘어서면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부업을 본업으로 삼기로 마음먹었는데, 그 시기와 내가 자퇴를 한 시기가 엇비슷하게 겹치면서 우리 부부는 계획에 없던 불안정한 생활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의 월소득은 남편의 소득으로 한정되었는데, 상승세를 타고 있던 남편의 부업은 퇴사를 하고 난 후 오히려 상황이 나빠졌다. 그래도 한 사람 월급만큼의 수입은 되었지만 일정치 않았고, 주택담보대출과 생활비를 제하고 나면 저축할 여유는 없었다. 이러한 우리 집 경제 위기를 거의 남편 혼자 감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담감이 커진 탓이리라.


나는 미적분은 잘 하지만 돈계산엔 서툰 사람, 자연의 이치나 우주의 신비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지만 세상 물정에는 어두운 사람,  돈 쓰는 건 잘해도 모으는 건 어려운 사람, 월급을 받으면 저축이 최선인 사람이었다. 게다가 한창 돈을 벌어서 모아야 할 나이에 자아를 찾기 위해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원에 가더니 그마저도 얼마 못 가 그만두고 진로를 고민할 시간을 달라고 한, 철부지? 아내였다.(내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서 내린 결정이기 때문에 철부지라는 말을 인정하기 싫지만, 함께 가계를 꾸려가야 할 남편의 입장에서는 철부지로 여겨졌을 것임을 인정한다.)그러니까 본업을 하면서도 노후를 대비해 장기적인 재무계획을 세우고, 대출과 주식 등을 포함한 자산을 관리하고, 앱테크를 통해 모은 쿠폰으로 생활비 지출을 줄이고, 자산을 불릴 기회를 찾기 위해 경제를 공부하는 남편이 짊어진 가장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웠겠는가.


 내게서 예상되던 고정 수입이 없어졌기 때문에 남편이 세워둔 우리 집 재무 계획에 큰 차질이 생겼고, 남편은 변화를 반영하여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부족한 만큼의 수익을 다른 데서 충당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애를 썼다. 오로지 남편의 수입만으로 생활을 해야 했으므로 남편은 수익이 잘 나지 않거나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기면 때때로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그런 남편이 얄밉기도 하면서 그렇게 된 데에는 내 탓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고 미안했다. 원래도 걱정이 많고 불안도가 조금 높은 편이었던 남편의 기질에 나의 상황이 불에 기름처럼 더해져 남편을 괴롭게 하는 것 같아 나도 괴로웠다. 하지만 나는 이기적 이게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저 감정의 소용돌이 속을 거닐고 있는 남편을 묵묵히 지켜보거나 다독여주거나 필요한 것을 도와주거나 인내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나는 나의 길을 고민하는 동시에 남편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한 방법을 고민했다. 가계에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내가 다시 취업을 해서 돈을 벌어오는 것일 테지만, 나는 그러지 않기로 결정을 했으므로 글을 쓰는 동시에 남편의 일과 생활의 틈새에서 나의 역할을 스스로 만들어 내기로 했다. 이 집에서 불필요한 인간, 잉여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나의 쓸모를 찾아야 했다. 글을 써서 돈을 벌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것은 스펙을 쌓아 취업을 하는 것보다도 더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므로 당장의 해결책은 될 수 없었다. 나는 긴 안목으로 멀티 플레이어가 되기로 했다. 나에게 금전적 보상이 지급되는 일은 아니지만 그만큼의 화폐가치를 갖는 서비스를 남편과 집에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나의 역할은 다음과 같다.

(1~5번 역할은 주부들이라면 다들 하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어쨌든 주부들도 상당히 숙련된 기술과 노하우를 가정에 제공하고 있으므로 전문직으로 대접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1. 식단을 짜고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는 영양사, 요리사, 주방보조.

2. 빨래와 청소를 하는 가정부.

3. 정리정돈을 하는 정리정돈 전문가

4. 식재료와 생활용품의 재고를 관리하고 구매를 진행하는 구매관리자.

5. 이야기를 들어주고 감정 솔루션을 제공하는 상담사.

6. 경영과 관련한 안건에 대해 토의하고 의사 결정을 도와주는 컨설턴트.

7. (최근 컴퓨터 그래픽 자격증을 갖춘) 온라인 쇼핑몰 상세페이지 디자이너.

8. 그리고 그 외 여러 가지 일(조사, 정리, 포장, 분류 등)을 하는 남편 사업체(1인 사업) 무급 직원.


남편은 수다쟁이여서 이야기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하고, 또 아이디어를 얻거나 스스로 통찰을 얻는 스타일이어서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내가 필요했다. 또 의외로 꼼꼼하고 예리한 나의 지적질 예상될 뻔했던 위기를 피해가게 하기도 했다. 나는 컴퓨터 그래픽 자격증 공부를 하며 사진을 편집하고 꾸미는 것에서 의외의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남편은 아직도 하루하루의 매출에 일희일비하며 불안해하지만 사업은 그럭저럭 잘 굴러간다. 한 달을 무사히 넘기고 나면 다음 달을 걱정해야 하는 건 변함이 없지만 그러한 불안을 조절하고 현재에 만족하며 미래를 대비하는 여유를 배워가고 있다.





우리는 하루 종일 집에서 같이 생활하며 더욱 끈끈한 관계가 되었다. 처음엔 갑자기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난 데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했다. 남편은 자아를 찾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나에게 일단 져주었지만, 내가 일하지 않고 집에 있는 것을 한편으로는 계속 못마땅해했는데, 그런 불만이 스치는 말투에 담겨 나를 상처 입혔다. 나 또한 남편의 허물을 물고 늘어지며 비난함으로써 거기에 앙갚음을 했다. 하지만 나는 소파에서 웅크려 잠든 남편에게 투덜거리며 담요를 덮어주고, 남편은 볼일을 보러 밖에 나갔다가 가끔 내가 좋아하는 과자를 사들고 들어다. 때때로 도끼눈을 뜨거나 눈을 흘기며 날 선 말들을 내뱉을 때가 있지만 그래도 밤이 되면 침대에 나란히 누워 서로의 여린 알맹이를 가늠하며 손을 맞잡고 잠이 든다.


모든 것이 늘 준비된 상태여야 하고 계획 대로 일이 흘러가야만 직성이 풀리던 나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일처리를 하고 일정을 유연하게 관리하는 남편을 닮아 가끔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게 되었다. 남편 또한 나를 닮아 조금씩 계획하고 준비하는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우리는 한 덩어리가 되어 그 중심으로 각자의 궤도를 조금씩 수정하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두 개의 별이다.


우리는 서로의 영혼과 삶에 알맞은 조각이 되어가고, 서로의 일상을 굴러가게 하는 톱니바퀴가 되어간다.




어느 주말 오후, 배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다며 약을 먹고 소파에서 잠이 든 남편의 발치에 살포시 앉았다. 남편은 평온한 얼굴로 규칙적이고 가지런한 숨소리를 내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남편의 가슴께를 바라보며 배 위에 가지런히 놓인 남편의 손 밑에 내 손을 가져가 잡았다. 남편의 손은 늘 그랬듯이 부드럽고 따뜻했다. 남편과 몸이 닿아있으면 늘 안심이 되었다. 손가락으로 남편의 손바닥과 손가락을 가만히 가만히 쓰다듬었다. 손가락에 닿는 익숙한 촉감에  마음이 가만히 가만히 안정을 되찾았다. 거실에는 블라인드 사이로 비쳐 들어 나무 바닥에 기다랗게 늘어진 늦은 오후 햇살과 뽀얀 숨을 내뿜는 가습기의 소음과 남편의 숨소리 잔잔하게 흘렀다. 남편의 천진한 얼굴이 사랑스럽고도 안쓰러워서 마음이 저렸다.

남편 덕분에 내 고민의 무게가 가끔 가벼워질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남편은 반대일지도 모르겠지만....)


남편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우리의 인생은 어떻게 흘러가게 까.

부부가 우리는 어떻게 늙어가게 될까.

먼 훗날 누군가 먼저 죽으면 그땐 어떻게 될까.

내가 너 없이 살 수 있을까.

아득히 먼 미래에 대한 아득한 걱정이 남편의 잠든 눈꺼풀 위로 드리워졌다.


먼 훗날을 기약 없이 걱정하면서 어쨌든 지금은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변함없이 너와 함께이고 틀림없이 너와 함께인 지금의 굳건함이 감사하다고 여기면서.




이전 01화 못난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