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로 예정되어 있던 대학동기들과의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통보를 했다.요즘 돈도 벌고 있지 않고 마음의 여유도 없다는 구질구질한 핑계를 댔다.거짓말은 아니지만.. 사실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에,
"요즘 그냥 집에 있어, 남편 일을 도와주면서 별일 없이 지내, 직장을 다시 다닐 생각은 없고, 앞으로 나의 진로를 어떻게 할지는 고민 중인데 잘 모르겠어, 어른들은 이참에 아기를 가지라고 하시는데 그것도 자신이 없어, 어디 크게 아픈 데는 없지만 이제 나이도 나이 인지라 몸이 여기저기 아프고 체력도 달려서 내 몸 하나 챙기기도 힘든데 이런 내가 아기를 키울 수 있을까 싶어."
이런 식의 대답을 아쉬운 얼굴로 하고 있을 내가 너무 뻔해서, 그다음엔 서로 푸념을 늘어놓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이해하는 척하면서 의미 없는 위로를 건네는 식으로 흘러갈 게 뻔한 대화가 강렬하게 하고 싶지 않아 져서 그랬다. 나의 못나고 옹졸한 마음이 초라해서 그랬다. 미안했지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진부하더라도 하루 몇 시간 낯선 곳에서 맛있는 것을 먹으며 친구들과 시답잖은 수다를 떨다가 오는 일도 기분전환이 될 거라는 남편의 이야기도 일리가 있었지만 이미 말을 해버린 후였다.
원래도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를 썩 반기지는 않는 편이다.근본적으로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크지 않은 편이다. 아마 티가 났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 아니, 거의 없다.
누군가 만나고 싶은 날이 있기는 했다.
누군가의 안부가 궁금한 날도 있기는 했다.
누군가의 애정 어린 연락이 그리운 날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누군가에 적합한 대상이 실제로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정말로 만나고 싶은 사람, 안부가 궁금하지만 정말로 소식을 물어볼 수 있는 사람, 나에게 애정 어린 연락을 해 주었을 때 의심 없이 기쁠 사람,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얼굴을 떠올리려고 했을 때, 수많은 얼굴들이 스쳤지만 스치고 말았다. 그건 실체 없는 그리움에 가까웠다.
한 때 학교, 직장처럼 같은 집단에 속해 있으면서 매일 얼굴을 보고 가까이 지내다가 그 울타리를 벗어난 후만나야 하는 당연함이 없어졌을 때, 그들과 나를 계속 이어지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르바이트를 포함해서 직장을 그만둘 때마다 나는 글에 마음을 담아 내 나름대로의 인사를 전하곤 했다. 이 사람들을 이제 다시 만날 일이 없을 거라는 직감이 찾아왔고, 시간이 지나 잊히기 전에 그 사람에게 내가 전할 수 있는 가장 짙은 감정을 전하고서 헤어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성스럽게 매듭을 짓는 마음으로 편지를 썼다.
나는 맺고 끊는 것에는 일가견이 있는 편이었다. 그건 쉬웠다. 나는 정을 많이 주고받는 스타일이 아니었고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데다가 따지자면 인정머리가 없는 편이었다.
그러나 관계를 이어가는 것에는 소질이 없었다. 딱히 원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이어갈 수 있는지 몰랐던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어져 있을 수 있을까.
우리는 끝없이 멀어지기만 하는 관계 속에서 무엇을 붙잡고 싶어지는 걸까.
언젠가 멀어지고 변해갈 게 뻔한 마음에 무엇을 남기고 싶어 하는 걸까.
최근에 나이 때문인지 변화된 환경 때문인지 훅 멀어져 버린 인연들이 많다고 느꼈다. 까맣게 잊은 것은 아니지만 함께 지냈던 시절과 그 시절 속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이 기억으로만 충분한 상태가 되었다.
내가 친구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임을 안다. 하지만 가끔은나와 얘기가 잘 통하고 나를 잘 알고 있으며 나에게 늘 다정하게 대해주는 데다가 신선한 자극으로 나를 올바르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줄 새로운 누군가의 존재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