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릴 필요

안녕, 나의 제주.

by 신새눈






월정리 해변에 위치한 카페의 통창 너머로 연푸른 빛 바다가 하얗게 부서지고 있었다. 와- 바다다, 탄성을 지르고 채 몇 분이 지나지 않은 순간, 바다가 하얀 발톱을 세우고 맹렬히 달려드는 짐승의 무리같이 느껴져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야트막하게 일어선 하얗고 날카로운 짐승 같은 파도가 내 눈 속으로 끊임없이 밀려들어 마음을 어지럽혔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짐승들이 차례차례로 나에게 달려와 매달리고 또 매달리며 할퀴는 공상이 떠올라 진저리가 났다. 아 징그러워, 눈을 질끈 감았다. 시야를 차단하니 솟구치던 감정이 가라앉고, 물음표 하나가 떠올랐다. 바다가 그런 식으로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왜? 라고 스스로 묻자 빈 방을 응시하고 있는 것처럼 무언가가 있었음직 한 공간이 주는 헛헛함과 그리움이 차올랐다. 나는 감았던 눈을 뜨고 의식적으로 바다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바람이 너무 많이 불기 때문인지, 사방에서 들려오는 외국어 때문인지, 너무 많이 변해버린 주변 풍경이 낯설기 때문인지, 주문한 청귤차가 너무 밍밍했기 때문인지, 오후의 일정이 틀어진 데 대해 짜증이 났기 때문인지, 앉은자리가 영 불편하고 좀이 쑤셨다. 결국 청귤차를 후루룩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른 그곳을 떠나고 싶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한 때 제주에서 5년 간 살았다. 그 이후 제주, 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아련하고, 그립고, 부드럽고, 달콤하고, 청량하고, 상쾌하고, 상큼하고, 눈부시고, 따뜻하고, 포근해지는 등 수많은 감각이 그라데이션으로 펼쳐지며 마음이 부풀어 오르고 충만해져서 싱숭생숭해지곤 했다. 제주는 나에게 무수한 처음을 선물해 준 곳이자, 인생의 다음 페이지가 시작된 곳이다. 15년 전 여행사에 근무하던 시절, 팀 워크숍을 제주로 가면서 난생처음으로 비행기를 탔을 때, 눈과 입을 크게 벌리고 창 밖으로 구름을 구경하던 나는 곧 놀이기구를 타는 듯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증상으로 괴로워하다가 착륙과 동시에 화장실로 달려가 속을 게워낸 후 한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비행기에서 내렸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 섬과 내가 어떻게 엮이게 될는지.


몇 년 후 두 번째로 제주에 갔을 때, 학회 일정을 마치고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했다. 그때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났다. 해 질 녘 바다 근처에서 마주친 그 남자와 나는 어쩌다 저녁을 함께 먹고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몇 번 더 만났다. 내가 느끼기에 그 당시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쓸쓸하고 고독하다 못해 무언가를 초월한 듯한 상처받은 얼굴, 아마도 인생의 고된 지점을 지나고 있는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눈빛과 표정을 나는 단박에 알아보았다, 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 준 적이 없지만, 몇 주째 제주를 여행 중이라며 말을 아끼던 그의 그을린 얼굴에서 나는 침통을 읽어냈다. 나는 비슷한 시기에 벼랑 끝을 걷고 있는 그 사람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동시에 이성적으로 끌렸다. 그와 만났다가 헤어지고 나면, 멀리 있어도 곁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를 앓았다. 그를 그리워하다 보면 내가 맞닥뜨린 현실이 슬그머니 옅어졌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현실이 벅찰 때마다 그를, 그와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럴 때 기억의 배경이 되는 곳이 제주의 해변과 야자수가 늘어선 길, 숲 등지였다. 그는 당시의 나에게 누구도 줄 수 없었던, 동병상련이라 여겨지는 그만이 줄 수 있는 위로를 건네고 꿈처럼 사라졌다. 그때부터 제주는 나에게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그 사람의 기억이 곁들여진 제주는 나에게 이상향과도 같았다. 그곳에 가면 모든 것들이 다 괜찮아질 것 같이 여겨졌다. 굴곡진 인생의 막다른 길목에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졌을 때 어딘가로 떠나야만 했던 나에게 제주는 자연스럽게 그 어딘가가 되었다. 마침 옮길 만한 직장이 제주에 있었고, 마침 파트타임으로 대학원 석사과정을 밟을 수 있는 기회도 그곳에 있었다. 아무도 나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때의 나에게 제주행은 최선이었다. 나는 제주에 가지 않을 수 없어서 제주에 갔다.


제주에서 지내는 동안 개인적으로 매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아마 그제껏 살아온 중 가장 행복한. 처음에는 타국에서 신분을 바꾸고 새 출발을 하는 영화 속 스파이가 된 것 같은 기분으로 낯선 곳에서 물건들을 새로 사들이며 새로운 사람 흉내를 냈다. 과거 따위는 없는 듯이 세상을 처음 살아보는 사람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새로이 찾아가며 오롯이 나를 느끼고 내 안의 무언가를 비우고 채우는 작업을 했다. 그러자 정말로 새로 태어난 새로운 사람이 된 것 같이 여겨졌다. 주말이면 새 세상을 탐험하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겨울엔 1100 고지 설경을 감상하거나 집 앞 공원에 가득 심겨있는 매화꽃 향기를 즐겨 맡았고, 봄이면 유채꽃과 무꽃이 나풀거리는 올레길과 연둣빛으로 부풀어 오르는 숲길을 걷는 것을 좋아했으며, 여름엔 투명한 바닷물 속에 뛰어들어 색색의 물고기들을 보며 더위를 식혔고, 가을엔 짙어지는 바다를 더듬으며 황금빛으로 너울거리는 오름을 오르내렸다. 그러다 뜻밖의 장소에서 말이나 소를 만나 눈을 맞추기도 하고, 커다란 줄무늬 달팽이나 뿔이 달린 고라니와 조우하여 걸음을 멈추기도 하고, 바람이 나뭇잎을 춤추게 하는 소리나 딱따구리가 부리로 나무를 찧는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이기도 하고, 이름 모를 예쁜 꽃이나 향기로운 나무를 손끝으로 어루만져보기도 하면서 내밀한 추억을 쌓았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움을 경험할 때마다 새살이 돋아나듯 새로운 내가 한 겹씩 덧대어지는 것 같았다. 짓눌려 있던 마음에 바람이 드나들고, 파삭하게 말라버린 가슴에 물기가 오르고 보송한 감촉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나빠질 것이 없다, 나를 괴롭히던 현실로부터 다소 벗어났다,는 실재적인 감각이 나를 숨 쉬게 했다.


몇 년 후에는 비옥한 고독에 뿌리를 내렸다. 가끔 이 섬에 혼자, 라는 생각이 들면 쓸쓸해지기도 하고 돌아갈 곳이 없는 처지가 비관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어딜 가든 수평선으로 가로막힌 바다를 보면서, 한눈에 다 훑을 수 있는 좁은 방의 사면을 둘러보면서, 이 세상에 나의 공간은 외딴 이 섬에 이 방 하나가 전부구나, 생각이 들면 괜히 몸을 말고 무릎을 끌어안았다. 하지만 내가 세 들어 사는 이 방이야말로 나를 기꺼이 품어줄 수 있는 공간이자 모든 것을 풀어놓거나 떨쳐놓을 수 있는, 내가 돌아올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장소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그 공간이 소중하고 애틋해졌다. 가끔 육지에 나갔다 와서 내가 살던 동네 어귀에 발을 딛는 순간이면 습관적으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코 끝으로 바다냄새가 베인 신선하고 달콤한 공기가 훅-하고 스며들 때 나는 그제야 내가 돌아와야 할 곳,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온 것 같은 깊은 해방감과 안도감을 느꼈다. 피를 수혈하듯이 내 폐포 속의 공기를 이곳의 것으로 모두 바꿔놓겠다는 심정으로 숨을 거듭 크게 들이쉬었다. 그 충만함과 편안함이란! 내가 나고 자란 고향에서도 결코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 나의 공간이 애틋해지자 그 공간에서 늘 함께 했던 고독도 친근해졌다. 고독할 때야말로 잔잔하고 투명한 마음의 거울에 날 것의 나를 비출 수 있으며, 모든 감각이 예리하게 벼려진 상태로 나를 조감할 수 있었다. 고독은 가장 나 다운 나를 발견하도록 독려했고, 오롯이 홀로 충만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길러냈다. 비옥한 고독의 땅에서 비로소 온전히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내가 미움받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듯, 내가 사랑받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음을 그제야 납득할 수 있었다.





제주를 떠나와서는 한참 향수병을 앓았다. 바람이 불어오면 이 바람은 혹시 바다에서부터 오는 걸까, 비가 내리면 혹시 바닷물이 비의 형태로 내리는 걸까, 생각하며 코를 벌름거렸다. 그러면 정말로 어렴풋이 바다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창 밖으로 나무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제주에서 들었던 숲의 소리가 서라운드로 귓가에 재생되는 듯도 했다. 꿈속에 떠오른 에메랄드 빛 바다는 제주의 바다 빛깔과 꼭 같아서 뛰어들지 않고서는 못 배겼다. 제주의 기억이 꿈으로 나타날 때면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채로 잠에서 깰 때가 많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깜빡 잠이 들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릴 곳을 한참 지나 버스 종점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버스에 다른 승객은 아무도 없고, 창문으로 저 멀리 바다의 수평선이 귤나무 숲을 껴안고 떠있는 것이 보였다. 맑은 날이었고 바다는 쨍한 빛깔의 코발트블루였다. 한 명 남은 승객을 신경 쓰듯 운전석 위쪽에 설치된 거울로 나를 흘끔거리던 기사 아저씨가 이제 곧 종점인데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어왔다. 아저씨의 물음에 대꾸도 하지 않고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몇 정거장만 가서 내리려고 했는데 서귀포에서 제주시까지 와버렸네. 어쩌지.'


당황하며 망설이는 사이에 버스가 모퉁이를 돌았다. 눈에 익은 항구의 풍경이 펼쳐졌다. 굽이쳐 돌아 뻗어나가는 익숙한 길 앞에 언젠가 파스타를 맛있게 먹었던 커다란 창문 위에 빨간색 슬레이트 지붕이 얹어진 가게가 보였고, 동글동글한 회색 자갈로 이루어진 낮은 제방이 길을 따라 이어져 있었다. 그 너머로 파스텔 블루의 바다가 잔잔하게 출렁였다. 넋을 놓고 풍경을 보는 사이에 당황스러웠던 감정은 잊고 반가움과 그리움에 마음이 들떠서 와! 하고 작게 소리를 질렀다.


‘여기서 내릴까.....’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버스가 고개를 넘어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사방이 수박색, 올리브색, 풀색, 청록색, 쑥색, 황록색 등 다채로운 초록으로 물든 높고 낮은 언덕(오름)들이 물결치듯 눈앞으로 밀려왔다. 뭉게구름 사이로 촘촘하게 뻗어 나온 옅은 레몬빛 햇살이 오름들의 완만한 곡선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조화롭게 어우러진 여러 초록 빛깔에 햇살의 광채가 더해진 풍경은 좀 전의 바다를 깡그리 잊게 만들 만큼 아름다웠다.


‘아, 오늘은 이대로 여기에 내려서 여기저기 걸어 다녀야겠다.’


마음을 정하고 버스의 내림 버튼을 누르려고 손을 뻗었다. 그 순간 꿈과 현실의 경계가 선명해지며, 이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버스에 앉아있던 공간이 점차 흐릿해지며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는 동안에, 그럼, 오늘은 씻고 준비해서 밖에 나가봐야지, 생각했다. 가슴이 벅차올라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린 채로 눈꺼풀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부옇던 방의 풍경이 또렷해지자 방 전체가 살포시 떠오르다 쿵하고 추락하는 감각이 느껴졌다. 여기 서울이었지 참, 깨닫자마자 몸이 침대로 쑥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다시 건너가지 못하는 시공간으로 떨어져 버린 시간여행자가 된 것처럼 슬펐다. 입꼬리와 팔다리를 늘어뜨린 채 한참을 그대로 누워있었다.





그랬던 제주인데, 얼마 전 항공사 마일리지 소멸을 앞두고 남편과 부랴부랴 떠난 제주에서 예상치 못한 이상한 체험을 한 것이다. 마음이 들떠서 잠을 설쳐가며 도착한, 꿈에 그리던 그곳에서 나는 내가 알던 제주를 거의 만나지 못했다.


첫째 날, 해질 무렵이었다. 제주에 사는 동안 거의 매일 같이 지나다녔던 서귀포시의 한 국도에서 심한 차량 정체를 겪었다. 그 도로는 원래 통행량이 많지 않은 곳이어서 의아했다. 한참을 기다려 정체 구간을 통과하면서 보니 교통사고가 크게 나서 경찰관, 소방관, 의료진이 현장을 수습 중인 상황이었다. 그렇게 처참한 교통사고 현장을 실제로, 그것도 제주에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생명력이 가득한 제주에서 누군가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스스로의 순진함이 충격으로 와닿았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사고 당사자 분들이 무사하기를 간절히 빌었다.


둘째 날, 늦은 오후 용눈이 오름을 오르는 중이었다. 남편이 오름의 정상을 눈앞에 두고 더 이상 오르지 않겠다며 멈춰 섰다. 남편은 전 날 사업에 이슈가 생겨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데다, 아침부터 업무를 처리하느라 바빴고, 운전까지 맡아서 하다 보니 한껏 지치고 예민해진 상태였는데, 올라가 봤자 정상에서 보게 될 풍경이 뻔하니 오르막을 그만 오르고 싶다고 말했다. 내 딴에는 남편에게 정상에서 보는 탁 트인 전망을 꼭 보여주고 싶어서 여기에 온 건데 정상을 목전에 두고 변덕을 부리니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길가에서 남편과 실랑이를 하는 동안 시린 바람이 따귀를 때리듯 아프게 불어댔다. 나에게 언성을 높이는 남편의 화난 얼굴이, 나를 뒤에 세워두고 멀어지는 남편의 무심한 뒷모습이 마음을 후벼 파는 듯 아렸다. 낯선 곳에서 때때로 아주 낯설게 변해버리는 남편을 볼 때면 이 사람이 내가 알고 사랑했던 사람이 맞는가, 내가 이 사람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게 맞는가, 의문이 들곤 했다. 감정이 상한 채로 갈대가 일렁이는 오름 탐방로를 내려오며 바람이 되고 싶다, 이대로 바람처럼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용눈이 오름에서 평화로움 대신 비참함을 느끼게 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셋째 날, 정오가 조금 지난 무렵 월정리 해변의 카페를 떠나 방문한 비자림은 나에게 제주의 첫 숲이자, 운전면허를 따고 나서 처음으로 직접 운전을 해서 찾아갔던 추억의 장소였다. 내 기억 속에 그 숲은 빛이 바랜 듯 창백하고 두꺼운 나무줄기와 짙은 녹색의 가느다란 잎사귀들로 촘촘히 우거져 채도가 낮은 색을 띠었는데, 그 특유의 색감이 고요함과 어우러져 신성한 분위기를 자아냈으며, 바람이 나무를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사아아사아아 파도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날은 바닥에 깔린 화산송이를 요란하게 밟으며 사투리로 크게 대화를 하면서 숲을 누비던 관광객과 뒤섞여 숲을 걷게 되었고, 무리 중 누군가가 뀐 요란한 방귀소리까지 듣고 말았다. 좋은 곳에 놀러 와서 들뜬 마음도 이해하고, 생리현상의 불가피함도 이해하지만 그래도 시무룩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누군가 나에게 고향을 물어올 때 제주,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로 제주를 마음으로 아끼고 좋아했다. 하지만 이번에 제주를 여행하는 동안 내가 만난 제주는 모체(내가 알던 제주)에서 분열되어 떨어져 나와 자라난 별개의 생물 같은 인상을 주었다. 확실히 닮았지만 생경했다. 위에 언급한 사건들로 인해 여행이 온통 얼룩지고 망가진 듯 여겨졌기 때문에 그런 감정이 든 것은 아니었다. 교래 자연휴양림에서는 조심스러운 눈길로 나를 보던 고라니 모녀를 만나고, 용눈이 오름에서는 갈기를 바람에 휘날리며 풀을 뜯던 말 무리를 만나고, 숙소 앞에서는 자갈밭을 뛰어다니던 까만 털의 아기 토끼도 만났고, 짙은 어둠 속에서 거대한 소리를 내며 쏟아지던 천지연 폭포와 신선한 아침 공기 속 푸른 바다에 우뚝 솟아있는 외돌개를 마주하기도 했으며, 인적이 드문 예쁜 물빛의 해변을 질리도록 보다가 바닷바람에 실려오던 은은한 국화꽃 향기를 음미하기도 하면서, 지극히 제주스러운 순간들을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방문한 그곳들은 미묘하게 달라져 있었고, 나는 그 변화들을 빠짐없이 알아차렸으며, 그 모든 순간 속에서 7년의 시간을 켜켜이 체감했다. 내가 알던 제주는 내가 제주를 떠나왔던 7년 전에 머물러 있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자, 그 시절의 제주는 이제 어디에도 없으며, 그토록 아름답고 천진했던 제주를 이제 다시 느낄 수 없을 거라는 슬픈 예감이 들었다.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리워한 대상은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고 이채롭고 감동스럽던 그 시절, 내 두 발로 제주의 검은 땅을 자근자근 밟으며 활보하던 그 시절, 온몸으로 제주를 만끽했던 그 시절임을 깨달았다. 지금의 내가 그 시절의 내가 될 수 없듯이, 기억 속에 존재하는 나의 제주가 다시 내 눈앞에 재현되는 일은 불가능하리라, 더 이상 새 살을 덧대듯이 격한 흥분과 감동으로 제주를 기뻐할 수 없으리라, 는 사실이 가슴에 사무쳤다.


그 시절 제주가 나를 돌보아 주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제주는 상처 입고 지쳐있던 어린 나를 풍만한 바다의 가슴으로 품어주고, 자애로운 숲의 손길로 보듬어 주었다. 덕분에 나의 영혼은 토실토실 살이 올랐고, 기력을 회복하여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여분의 에너지를 비축할 수 있었다. 나는 성장하여 둥지를 떠나가는 새처럼 주저하면서도 기꺼이 제주를 떠날 마음을 먹었다. 나의 미래와 희망이 제주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고 여겨졌으므로, 제주에 왔던 것처럼 너무도 당연하게 제주를 떠났다. 제주는 내게 신비롭고 평화로운 천연의 장소이자 영혼의 안식처였고, 한 때 이국이었던 그곳은 동경이 되었다가 구원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인연이 다한 옛 연인 같다. 한 때 열렬히 사랑한 대상이자,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과거의 중요한 파편 같은. 다시 맞이한 결별의 순간은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지만, 덕분에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7년의 시간만큼 나도 제주도 조금씩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안전하고 포근한 집으로 돌아와 일상의 소중함에 몸서리를 치며 남편과 다정하게 손을 맞잡고 침대에 눕는다. 전에 없이 지금 이 공간이 응당 내가 돌아와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돌아올 곳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 시절의 나를 거쳐오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 남편과 함께가 아니면 이룰 수 없었던 지금의 모든 것들이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눈부시고 아름다웠던 나의 제주가 눈앞에 선연하다. 나에게 제주는 아직도 하나의 상징이다. 가장 좋은 것, 가장 그리운 것들에 대해 애정을 담아 제주도 같다,는 말로 표현하곤 한다.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상실을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제주를 잃어버렸다. 그렇지만 상심하지 않고 앞으로도 무언가를 잃어가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로 한다. 잃어버린다는 건 간직한다는 거니까. 언제나 제주를 그리워하겠지만, 언제 다시 제주에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언젠가는 분명 다시 제주를 찾을 것이다.


안녕, 나의 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