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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달이 Feb 04. 2022

걸어서 400km를 가려면..

공부 잘하는 사람 되기(정신 3-1.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우선 서점에 가서 기본적인 교과서를 샀다.
그동안 내가 만져본 책 중에 이렇게 두꺼운 책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두꺼운 책이었다.
목차를 보고 전체적인 내용을 어렴풋이나마 머릿속에 그린 다음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읽는다고 읽긴 하지만 모르는 한자가 너무 많아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시가지화 조정 구역 내에서의 개발행위를 억제하는 견지에서.
'시가지화 조정 구역 내에서의 개발행위를? 제기랄! 이러다가 혀 깨물지!' 여기서 멈추고 말았다.

서둘러 사전을 찾아봤다.
그때까지 부수로 찾는 방법을 몰랐던 나는 모든 한자를 총획수로 찾고 있었다.
사전도 그렇게밖에는 쓸 줄 몰랐기 때문에
총획수가 나와 있는 색인 부분만이 손때가 묻어 까맣게 되어버렸다.

"전부 몇 획이지? 8획인가?"
8획이 나온 부분을 처음부터 끝까지 찾아보았지만 나오질 않았다.
'이런 한자 없잖아.. 없어... 그러면 8획이 아니란 말인가..?'
모래 위에 떨어뜨린 보석이라도 찾듯 그 주변을 한참 찾아보니,
결국은 7획에 그 글자가 있었다.

한심하게도 획수도 제대로 세지 못했다. ''억제'라고 읽는 거구나. 이제 찾았네.'
한자 옆에 읽는 방법을 적어 넣었다.
'그런데 '억'자는 왜 7획인 거지...?'

매사가 이랬기 때문에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의욕만큼 진도가 나가지 않아 조바심에 짜증까지 나 있던 나는,
나를 걱정해 전화를 해주신 아저씨에게 화풀이를 했다.

"여보세요, 어떻게 잘 되어가고 있냐?"
"어떻기는 뭐가 어때요?"
"공부는 잘 되어가고 있냐고?"
"..."
"왜 그래? 대답을 안 하고?"
"이런 거 더 이상 못하겠어요, 제 체질에 안 맞는다고요."
"무슨 말이야,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책 한 페이지 읽는데 시간이 얼마나 많이 걸리는지 아세요?"
"여태까지 공부는 손 놓고 있었으니 시간이 많이 걸리긴 하겠지."
"이러다간 완전히 미쳐버릴 것 같아요."
"그래도 첫술에 배부르겠냐? 천천히 읽어봐."

"애초에 중졸밖에 안 되는 내가 자격증을 딴다는 게 무리라고요.
 사실은 아저씨도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죠?"
"왜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겠니? 그렇지 않아..."
"거짓말쟁이..."
"그렇게 어린애처럼 떼쓰는 소리 그만하고 잘 들어.
 이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 모두가 우리와 같은 사람이지 뭐 특별한 사람이겠니?
 다른 사람이 해낸 일을 왜 너만 못하겠니?
 그런 나약한 생각은 버려.
 그리고 넌 중학교밖에 나오지 않았으니까
 고등학교, 대학교를 나온 사람보다 두세 배는 더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해야지.
 이제 막 시작했는데 조바심을 내며
 단번에 합격하겠다고 욕심까지 부려가며 그러고 있으면 되겠니?"

비뚤어진 성격이 남아서 금세 좌절해버리는
나를 오히라 아저씨는 끈질기게 격려해주셨다.
이렇게 타일러주시면 내던져 버리고 싶다가도 다시 해봐야겠다는 의욕이 생겨나곤 했다.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오히라 미쓰요. 북하우스. p.160-163.)

오히라 미쓰요 작가가 쓴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라는 책의 제6장 새 출발이라는 파트에 나오는 부분이다. 오히라 미쓰요 작가는 어린 시절 집단 따돌림 경험과 친구들의 배신을 경험하고 할복자살까지 시도했으며, 범법 행위까지 일삼는 비행청소년 시절과 야쿠자 두목의 아내로 살아가는 시절을 지나 변호사 시험까지 합격한 실존 인물이다.


이 책의 뒷부분을 보면 '공부'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 공감을 할 수 있는 내용들이 많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초, 중, 고등학교 요즘은 대학교까지 진학하고 졸업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본인들이 되게 오랜 시간 동안 공부를 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정말 진심으로 내가 나온 전공학과에 대해서 먹고 살 정도의 지식을 지니고 전문성을 지니고 있는가? 어느 한 부분이라도 내가 남에게 가르칠 수 있을 만큼 확실하게 알고 있는가?


짧게는 10년, 영어유치원(어학당) 등 조기교육을 하는 경우 길게는 15년을 영어공부를 하는데 20살이 되어서 토플 수준의 영어 독해나 외국인과의 유창한 대화가 가능한가? 그렇게 못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표면적으로) 많은 시간과 돈을 썼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결과가 나타난다면 이 얼마나 아까운가? 그럼 그런 영어공부는 왜 한 것인가? 어떤 공부를 해도 남이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닌, 제대로 해서 내 삶에 의미 있는 공부가 되게 해야 한다. (물론, 토익 등의 공증된 시험은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얼마나 성실한 지 보여줄 수 있는 지표가 되니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지금까지 공부를 해왔다고 착각하지만 정말로 그런가?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대학에 가기 위해, 졸업을 하기 위해, 취업을 하기 위해 그때그때 그것을 이루기 위한 선(정도)까지만 공부 흉내를 냈을 수도 있다. 중학교, 고등학교 총 6년의 시간을 같은 학교에서 같이 시간을 보낸 친구들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대학 진학에서부터 그 친구들의 결과가 모두 같지 않다. 같은 시간을 보내도 그 순간순간의 노력에 따라,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공부'를 해나갔냐에 따라 정말 하늘과 땅 차이의 결과를 만들어낸다. 실제로는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면서 자신이 '공부를 많이 해서' 질린 것 같은 착각에 빠져서는 안 된다.


위의 인용 부분은 작가(주인공)가 공인중개사 시험을 치르기 위해 처음으로 제대로 공부를 시작했을 때 느낀 점과 도움을 주셨던 분이 나눈 대화이다. 공부를 안 하다가 하면 정말 글자 읽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한국인의 '21년 독서량을 보면 성인중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이 절반 이상이다.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 읽기 영역에서 2006년 세계 1위를 차지했던 한국 학생의 문해력은 2018년 6위로 떨어졌고 2015년 독서량은 UN 192개국 중 166위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글을 잘 읽지 않고, 글을 읽고 그 글이 무엇을 말하는지 아는 능력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인 문해력 관련 자료는 검색하면 많이 나온다.) 우리나라가 인터넷이 다른 나라보다 발전하고 스마트폰이나 게임산업 발전이 빠른 것이 과연 자랑스럽기만 한 일인가 되짚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한글이라는 우수한 표음문자를 가지고도 이런 성적표를 받은 것은 정말 심각한 일이다.


공부를 안 하던 사람이 공부를 처음 시작했을 때, 관련 교재(글, 책)를 보고 혼자 이해가 잘 안 되고 진도가 안 나간다고 느낀다면 그것이 정상적인 일이다.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위의 통계를 봤을 때 우리나라에서 '공부'를 시작하는 모든 사람이 느끼는 일이다. 필자가 운전면허를 딸 때 비슷한 느낌을 느꼈는데, 운전면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따는 면허라 엄청 쉽게 생각했었는데 막상 장내시험이나 도로주행 시험을 치를 때 한 번 만에 합격하긴 했지만 정말 꽤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 새삼 운전면허 따는 다른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또, 훈련소 생활 중에도 병영캠프니 체험학습이니 뭐니 해서 쉽게 생각하고 갔었는데, 생각보다 힘들어서 현역 군필분들을 정말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여성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다른 어려움을 쉽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부분은 필자가 느껴본 적이 없는 경험이라 적지 못했습니다ㅠ)


한편, 중졸인 주인공이 하는 푸념에 대해서 이 오히라 아저씨가 해준 말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중졸 밖에 되지 않아서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에게 오히려 중졸이기 때문에 고등학교, 대학교에 나온 사람들과 경쟁하려면 더 열심히 해야 한다, 또 그 사람들도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즉,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하는 사람들도 지금 공부하는 주인공과 같은 시간, 같은 고통을 겪었지만 이겨내서 그 시험에 합격하게 된다는 것이다.


누구누구가 7급 공무원 시험을 몇 개월 만에 합격했다. 누구누구가 6개월 만에 지방직 9급을 합격했다. (필자는 5개월 반 준비해서 광역시 지방직 7급 시험에 합격한 적이 있다.) 이런 이야기를 본 적이 있을 것인데, 정말 특별한 경우 말고는 사실 이 이야기는 맞기도 하고 틀린 이야기이기도 할 것 같다. 그 사람이 공무원 시험 준비한 기간이 6개월이었다는 것이지, 실제 대학을 다니면서 관련 학과에 다녀서 미리 공부를 했을 수도 있고, 입시 준비를 열심히 했거나 대학교에서 엄청나게 공부를 힘들게 해 본 사람이라면 '공부'라는 것(글을 읽고 학습하는 능력, 시험을 합격하기 위한 공부방법을 찾아내는 능력, 자기 관리하는 방법을 벌써 터득한 경우 등)을 하는 능력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뛰어난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공부를 안 하다가 새로(다시) 시작하는 사람보다 훨씬 빨리 합격할 수 있었다고 본다. (출발지점이 다른 경우니, 굳이 이 사람들과 비교해서 주눅 들 필요 없다. 나는 나의 페이스로 나만의 길을 가면 된다.)


그러니 수험(공부) 기간이 길어지는 것 자체만으로 절망할 필요가 없다. 원래 내가 지금 미적분이 필요한데, 그 전 단계 때 했어야 할 연산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단순히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니라, 터득하는 것을 말한다.), 그때 하지 않았던 것 때문에 지금 연산 공부를 하기 때문에 늦어지는 것이고 내가 글을 많이 읽을 수 있는 시기에 글을 읽지 않고 딴 일을 해서 다른 글을 많이 읽었던 사람보다 진도가 느리다면 그것이 당연한 것이다. 나는 글을 읽는 능력부터 키워야 한다. 내가 어떤 어떤 원인 때문에 지금 상황이 이렇게 돼서 못한다, 못할 것이다가 아니라 그런 난관들 때문에, 부족한 것들 때문에 더 열심해해야 한다고 마음먹어야 한다.


내가 지금까지 내가 하지 못 했던,

그것을 이뤘을 때 다른 사람들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공식 적고 공증적인 목표를 위해 도전하고 있다면,


그 과정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면,

지금 같은 목표를 향해 뛰고 있는 사람들은 다들 나와 같은 고통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천리라는 먼길을 걸어가는 과정은 너무나 어렵고 긴 여정이 될 수 있다.

출발점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하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걸음을 걷기 시작한 것 자체가 너무나 멋지고 칭찬받을 일이다.

이제 그 길을 끝에 목표지점까지 한 걸음 한 걸음 뚜벅뚜벅 걸어가면 언젠가 반드시 다다라 있을 것이다.


어려운 길일 수록, 그 경주를 완주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 이룬 것을 알고 인정해줄 것이며,


나도 나를 사랑하고 인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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