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하나
무너지는 마음과 무뎌지는 마음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버릇처럼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은 아주 깊숙한 곳에 묻어두었다. 불현듯 그 기억이 머릿속에서 번뜩 떠오르면 두 눈을 감고 고개부터 저었다. 아주 단순한 방법으로, 몸의 저항으로 기억들을 밀어냈다. 좋든 싫든 잊고 싶든, 내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기억은 결국 언젠가의 나였고, 돌아가도 그 비슷한 모습을 한 나였을 것이다.
습관이란 건 무서웠고, 그 습관 위로 새롭게 쌓여가는 하루는 그저 낯설고 껄끄러웠다. 오랜 시간 동안 정을 나누고 곁을 내주었던 사람들과 멀어지고 거의 처음으로 혼자 있는 시간이 잦아졌다. 내 곁을 이루고 있던 이 모든 익숙함이 불편하고 낯설어졌다. 나는 불편하고 낯선 것들은 회피부터 하는 성향이 있어 처음엔 이 모든 것들을 두고 떠나고 싶었다. 그저 외면이었다. 묻어두어도 언젠가 파헤치면 그만이었고, 피어오르면 다시 마주해할 기억이었고 감정이었다.
한동안 자주 무너진 채로 삶을 이어갔다. 혼자로서 단단하지 못하니 누군가의 곁에라도 기대야만 했다. 결국 내가 나를 이해하지 못한 채 상대에게 위로를, 답을 얻고 싶어 했다. 휘청이면 누군가 잡아주길, 눈물을 흘리면 누군가 곁에서 닦아주길, 도망치고 싶으면 내 손목을 잡고 나와 함께 있자는 말을 건네주는 이가 있기를 바라면서도 나는 나조차에게도 그러질 못했다. 나는 떠나고 싶으면 떠나게 두고 싶었고, 눈물을 흘리면 눈물이 목구멍에 콱 막혀 잠시라도 기절해 있길 바랐고, 휘청일 땐 그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길 바랐다. 바닥에서 더 바닥으로, 그때 나를 지탱한 건 약과, 잠뿐이었다.
일상에서 곁을 내주었던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나서도 자주, 자주 마음이 괴로웠다. 밤에는 툭하면 눈물을 쏟았고, 아침이 되면 잊으려 노력했다. 가끔 글을 쓰며 그들을 떠올렸고, 그러면 쓰던 글을 멈추고 다시 앞에서부터 천천히 읽었다. 누군가를 염두한 글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 말의 의미를 너는 알기에 조금 더 조심했다. 글은 기억이고, 나의 시선이기에 그저 편협할 수밖에 없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던 그 계절에 나는 자주 동네를 걸었다. 골목과 골목 사이를 걸으며 이제 막 잎사귀를 틔우는 나뭇잎을 올려다보았다.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흘러들어오는 바람과, 햇빛이 손등 위로 가느다랗게 그림자 졌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매달려 있는 기억, 그 위로 안부를 걸어두었다. 언젠가는 읽을 수 있는, 답이 필요 없는 그 안부를.
무뎌지는 마음은 조용히 내려앉았다. 여름이 가고, 가을을 마주했을 땐 불안했던 마음은 조금씩 깎이고 깎여 동그란 모양새를 갖추었다. 혼자를 잘 누리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욕심이었고, 갈망이었다. 결국 혼자일 때 혼자가 되는 게 두려워, 나는 누군가와 함께이길 택했고 그 시간은 나를 갉아먹고 그저 배설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오로지 나를 나로서 마주하는 순간은 꽤나 괴로웠다. 오랫동안 웅크리고 있던 몸을 하나씩 펴내는 것 같았다. 뼈와 뼈 사이에 깊게 눌리고 있던 숨구멍이 펴질 땐 아파도, 펴진 순간에는 그제야 숨이 숨답게 쉬어지는 듯했다.
누군가를 오래 미워하는 일도, 그리워하는 일도 그 마음을 오래 끌어안고 있지 않으려 노력했다. 각자의 사정과 각자의 마음을 모두 헤아려 이해하는 일은 어려워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떠나간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오래 붙잡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려보냈다. 지난 가을밤 불쑥 찾아온 안부에도 마음을 오래 붙이지 않았다. 지나간 것들엔 유통기한이 분명히 존재했고, 그 기한을 넘어서 다시 서로를 마주하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란 걸 이제는 안다.
나로서 시간을 틈틈이 보냈다. 늘어지고 싶은 순간엔 마음껏 늘어졌고, 심심할 땐 엄마와 여동생에게 찾아가 밥을 함께 먹었고, 다롱이와 미문이의 순간순간을 더 오래 들여다보았다. 새로운 업무 환경에도 적응하는 건 어려워도 적응을 해내는 내 모습을 마주했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걱정부터 하던 습관도 점차 줄어들었다. 대신 그 순간을 조금 더 심드렁하게 보내려고 노력했다. 내 뜻대로 되는 건 없어도, 내 마음 하나는 내 뜻대로 유지하고 싶었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 묵묵히 곁을 내어주던 이들이 있다. 그 잔잔한 위로 속에서 나 또한 누군가가 내가 힘들었던 순간만큼 힘들어하고 있다면 그런 위로를 건네야겠다고 배웠다. 결국 나를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과 함께 우울 속에서 조금씩 헤어 나올 수 있었다. 지난한 순간이었다. 또 언젠간 마주할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그날이 온다면 무심코 열어본 어느 날의 일기장에서 우연히 얻었던 위로처럼, 올해를 기억하고, 나의 서른 하나를 떠올리며 이 글을 찾아 다시 위로를 얻을 것이다.
적당한 우울과, 후련한 슬픔, 짧고 잦은 행복과, 기다란 웃음을 마음에 오래 품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그렇게 다짐해 보는 올 한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