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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Jun Oct 26. 2022

너무 당연해서 중요한, 글을 쓰는 필연적 이유

가장 불가능한 완전을 이루기 위한 가장 가능한 불완전한 방법

나에게 진실로 의미 있는 것은 무엇일까? 오롯이 나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다른 사람이 아닌 '나'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빠르게 움직이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지킬 수 있고 지켜야 하는 '나'의 것은 무엇일까?


나의 집, 물건, 돈, 사람들 심지어는 육체까지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다. 내 의지가 아닌 타인에 의해, 상황에 의해 나타나고 없어질 수 있는 존재이다. 오롯이 나의 힘으로는 지킬 수 없는 것이기에 나의 것이라고 말할 수 없고 나를 구성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물론 나의 집, 사람, 물건들로 인해 추억이 만들어지고 같이 지내면서 생각을 공유하고 공감하여 나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일부였던 사람들, 물건들이 다치거나 사라지면 나의 일부가 무너져 슬픔을 느낀다. 하지만 내 주변 모두와 모든 것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라질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만약 내가 만든 '나', 어떤 상황에서든 흔들리지 않는 '나'를 만들지 않은 채로 나의 주변의 물건과 사람에게  나의 일부가 아닌 너무나도 큰 부분을 나눈다면 나라는 존재는 크게 흔들리고 심하면 무너진다. 그래서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좀 더 극단적으로 '나'의 것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 


나의 것은 무엇인가?

타인이 가져갈 수도 없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나만의 것은 무엇일까?


컴퓨터 앞에서 키보드를 두들기며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온전히 내가 갖고 있는 것, 오로지 나만이 느끼고 있는 것은 단 하나였다. 그것은 바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생각하고 있는 지금의 '나'였다. 과거를 생각하면서 내가 했던 생각과 결정에 대해 정의 내리고자 했고, 지금 내가 처한 현실에서 느끼거나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했고, 미래에 대해 나는 어떻게 생각하면서 살아갈 것인지 결정하려 했다. 여기서 과거, 현재, 미래는 곧 시간을 의미하므로 지금 내가 내리는 '나의 삶이 가진 시간'에 대한 정의는 '나'의 삶을 근본적으로 정의하는 것으로서 내가 죽지 않는 이상 사라질 수 없는 것이 된다. 즉, 진정한 나의 것으로서 '나'를 정의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럼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나의 생각을 통해 나는 누구인지 정의해보자

...

...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나의 생각들이 몇 가지 떠오르지만 무언가 명확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희미하게 떠오른다. 마치 넓은 바다 위에 뿌려진 알갱이처럼 모여있지 않고 넓게 퍼져 이게 무엇인지, 존재하긴 하는지 잘 모르는 느낌이다.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떠오르는 생각들이 분명히 있었지만 나의 생각이 무엇인지, 이것이 맞는 생각인지에 대해 단 하나도 확실하게 정의 내릴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상태로 시간이 흐르면 나를 구성하는 알갱이(생각)들은 더욱 깊고 어두운 곳으로 가라앉을 것이고 '나'는 점점 더 스스로를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나는 '나'하나 지킬 수 없게 되어 나에게 소중한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지키지 못할 것이다. 절대 그렇게 되기 싫다. '나'라는 존재 없이, 의미와 가치 없이 살기에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너무 아름답다. 내가 앞으로 마주하고 싶고 마주할 수 있는 멋지고 새로운 세상, 그리고 그곳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들, 상상만 해도 즐거운 새로운 경험들을 누리고 싶다.


이를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단 하나, 강해지는 것이다. 진정으로 '나'라는 존재가 강해져서 어떤 고난과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원동력 삼아 더 힘차게 내가 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 이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강함은 곧 스스로 처한 상황을 더욱 빠르고 명확하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하는 첫 번째 단계는 바로 '나'를 아는 것이다. '나'를 먼저 알아야 내가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의 비유를 다시 가져오면 '나'를 안다는 건 바다 위에 흩뿌려져 있는 알갱이들을 모아 '나'라는 섬을 만들고 나아가 대륙을 만드는 것이 된다. '나'라는 기반을 크고 튼튼하게 만든 다음 그 위에 성장을 이루는 것이다. 외부의 영향에 강력하게 저항할 수 있는 자연과 찬란한 문명을 틔우는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나'의 섬 즉, 삶을 만들면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나에게 이럴 수 있는 강함이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실제로 있는 것은 맞는지 조차 가늠할 수 없는 알갱이들을 모아서 그런 크기의 섬을 만들 수 있을까? 항상 예상치 못한 파도와 폭풍 같은 변수들이 산재해 있는 현실에서 내 알갱이들을 찾고, 모으고, 잃지 않으면서 섬을 만들 수 있을까? 불완전한 내가 앞을 가늠할 수 없는 미래에서 그런 완전한 일을 할 수 있을까?


수많은 방법을 고민해 봤다. 그리고 실행도 해봤다. 책을 읽어 보기도 하고, 공부를 더 열심히 해보기도 하고, 여행도 다녀왔지만 무언가 와닿지 않았다. 내가 누구라는 확실한 증거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를 정의할 데이터가 항상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무엇인가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내가 볼 수 있고 확인할 수 있음으로써 확신할 수 있는 '나'에 대한 데이터가 필요하며, 이 데이터는 삶을 통해 축적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당연할 수도 있지만 다른 존재를 정의 내리는 유일한 방법이다. 나무를 정의한다고 했을 때 나무가 가질 수 있는 모든 형태와 움직임을 알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즉, '나'를 알기 위해서 나는 삶을 살면서 나의 형태와 움직임에 대한 정보를 남겨야 하는 것이다. 그 방법은 생각보다 훨씬 나에게 친숙한 것이자 유일한 것으로서, 바로 글을 쓰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계속 글을 쓰기로 결정했다. 여러 방법을 이용해서 내가 걸어온 증거를 기록하여 나의 알갱이들을 모아볼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섬 위에서 움직이지 않는 땅을 밟고 '나'를 볼 것이다. 그리고 그 섬 위에서 성장을 향한 분명한 목표를 세울 것이며, 분명히 변해가는 섬을 보면서 나의 존재와 강함을 확신할 것이다. 이렇게 나는 내가 정의한 삶(섬)에서 내가 믿고 따르는 목표를 세워 확신과 믿음으로 성장할 것이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내가 원하는 길이 맞는지,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 방향인지, 더 가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내 주변에는 누가/무엇이 있는지를 명확하게 잡아서 확실한 증거를 뒷받침하고 있는 나의 목표를 향해 일말의 고민 없이 달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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