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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를보다 May 21. 2023

2023.05.21.

소소한 행복에 대해서 배우고 있는 요즘이다. 점심에 맛있는 카레와 돈가스를 먹으며 가볍게 맥주 한잔을 들이켜는 일. 청량한 아이스커피 한 모금 마시며, 봄을 가득 싣고 불어닥치는 바람을 맞이하는 일. 눈 부신 햇살을 온 얼굴로 쬐는 일. 이런 것들은 사실 순간순간에 집중하지 않으면 결코 느껴볼 수 없는 것들이다.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을 살아갈 평범한 직장인인 나에게 일상이 주는 행복을 느끼고 그것에 감사하라는 말은  사실 좀 짜증 났다. 당장 내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보고서가 있고, 내 옆자리에는 나를 괴롭히는 상사가 있고 또 가끔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사람들인 것처럼 느껴지고, 왜 이 세상은 나를 가만히 못 둬서 안달이 났나 싶을 때도 있으니까. 우리들에게 일상이라 함은 그런 것들에 좀 더 가깝다. 게다가 평범한 일상이 주는 행복에 감사하라는 말은, 마치 네 인생은 이것이 전부일테니 어떻게든 그것에 적응해서 적당히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으라는 말처럼 들려오곤 해서, 괜한 반발심이 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 사무실 입구에는 출근길을 더 지옥처럼 느끼게 해주는 가파른 언덕이 있다. 지옥철에서 빠져나와 20분 정도를 더 걷다 보면 이미 지치고 피곤한데, 거기다 그 가파른 언덕을 오를 생각을 하면 당장이라도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런데 어느 날, 출근길에 만난 한 동료가, 언덕길에 피어있는 이름 모를 들꽃을 보며  “이거 봐요, 귀엽죠.” 하는 것이다. 뭐지? 하고 쳐다본 길바닥에는 어딘가에서 날아온 씨앗이 땅에 떨어진 건지 여린 잎사귀 두 개가 빼꼼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정말 귀여웠다.


 그날 이후로,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쳤을, 그저 길가에 피어난 풀떼기에 불과했던 고놈이 계속 눈에 밟혔다. 아스팔트 사이로 생명의 기운을 뿜어내는, 연약한 것 같으면서도 강단 있는 그 모습이 지긋지긋한 출근길 아침의 우울한 기분을 조금이나마 풀어주는 것 같았다.


행복이란 건 그런 것 같다. 내게도 언젠가 행복이 찾아오길 기다리고 있다면, 나는 언제까지나 그것을 기다리기만 하다가 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 행복은 결국 내가 찾아 나서야 한다. 그것은 언제나 내 곁에 있다. 내가 고개를 돌리기만 하면, 조금만 눈여겨 살펴보기만 하면 그것은 제 자리에서 귀엽게 피어나있을 것이다. 계절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풍경들, 바람의 냄새, 햇볕의 손길, 그런 것들을 악착같이 찾아 모아볼 작정이다. 어쩌면 내 삶에는 행복이 지천으로 널려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그것들을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버리는 것뿐이지.


물론 그런 소소한 행복들이 내 삶을 일순간에 바꿔주지는 않는다. 여전히 일상은 반복되고, 절대로 변하지 않고 영원할 것만 같은 이 무료한 인생이 가끔은 섬뜩할 때도 있다. 그런데, 분명한 건 그런 작은 행복을 발견 한 날은 퇴근길 발걸음이 조금은 가볍다는 것이다. 괜히 한 번씩 올려다본 하늘에 떠 있는 달도 유독 밝고 선명한 것이 예뻐 보이고,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을 때, 그래도 오늘 하루는 썩 괜찮은 하루였다고 다독일 여유도 생긴다. 그런 하루가 모여  한 달이 되고, 그게 일 년이 되고, 또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가다 보면 언젠가 뒤돌아보았을 때, 그것은 풍요로웠던 삶으로, 행복했던 인생으로 피어있을 거라 생각한다.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작은 행복의 순간들에 대해 나열을 해보며 글을 이만 마칠까 한다.


비가 오는 날, 카페에 앉아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창 밖을 바라보는 일.

추적추적 쏟아지는 빗물이, 바닥에 고인 물웅덩이에 불규칙적인 파동을 만드는 것을 지켜보는 일.


유난히 힘들고 지친 어느 날 저녁, 고개를 들어 바라본 짙푸른 하늘에 박힌, 달이 휘영청 씩씩할 때.


포근한 이불에 배인 엄마 냄새를 맡으며 잠드는 일.


게으른 일요일 오전, 늦은 아침을 먹고 아이스커피 한잔을 타 마시며 출발 비디오 여행을 보는 일.


갑작스레 코끝을 휘감는 익숙한 향기에 실려온 오래 전의 기억을 떠올리는 일.


창 밖으로 들어오는 선선한 바람에 휩싸여 기분 좋은 기지개를 켜는 일.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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