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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wovewove Dec 14. 2019

연기의 목적.

영화 감상평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작 중 파비안느 당주빌이라는 대배우의 자서전 제목입니다. 파비안느는 몇십 년간 영화계를 군림해온 원로배우죠. 자서전 출간을 목전에 두고 있는 주인공은 배우로서는 프로지만 인간관계에는 영 소질이 없습니다. 때문에 오래 함께 해온 비서가 갑자기 그만둬버리고 사이가 소원했던 딸 뤼미르가 그녀의 비서 노릇을 대신하게 돼요. 뤼미르는 엄마의 곁에 머물면서 자서전에 적힌 위선을 지적하고 엄마에게 상처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스타 엄마의 그늘에서 자란 탓에 생긴 결핍된 모정에 대한 보상심리죠. 반대로 그러는 동안 메말라있던 모녀관계에 물기가 돌기 시작합니다.

파비안느는 연기자로서의 삶에 집중하다 보니 오히려 본심을 표현하는 일에 서툴러요. 40년 지기 비서에게 용서를 구하는 상황에도 연극이 동원될 정도지요. 작가로 활동 중인 딸은 적절한 대사를 지어 엄마를 돕습니다. 그런데 연출된 감정이라고 전부 다 가짜일까요? 뤼미르는 엄마의 사적인 연기 속에서 진정성을 발견합니다. 그건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마찬가지죠.

파비안느는 극 중에서 ‘내 어머니의 추억’이라는 저예산 싸이 파이 영화를 찍고 있습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우주에서 지내며, 7년마다 지구에 오는 늙지 않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그리워 하며 쓸쓸히 나이 드는 딸에 관한 내용이죠. ‘내 어머니의 추억’은 파비안느와 뤼미르를 직관적으로 은유하고 있습니다. 연예계라는 우주에서 나이에 맞게 성숙하지 못한 엄마와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는 딸의 모습 말이에요. 프로 연기자인 파비안느는 딸 역할에 몰입하면서 뤼미르의 마음을 헤아리게 됩니다. 촬영이 끝난 파비안느는 배우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성장해있죠. 자연히 뤼미르를 포함한 주변 인물들과의 갈등도 해소됩니다.


감독은 여배우와 가족이라는 소재를 빌어 연기의 속성에 대해 탐구합니다. 영화에서 연기는 허구이면서 진실보다 본질에 더 가까이 닿기도 하고 진실이 연기를 가공하는 재료로 사용되기도 하죠. 이렇게 연기와 진실의 상호보완적 성격은 극 중 가족들을 화해시키는 열쇠가 됩니다. 이것은 영화 작업을 통해 실제 인간의 화합을 도모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가치관과도 상응하는 바이죠.

고레에다 감독이 <만비키 가족>으로 깐느 최고상의 영예를 차지한 직후에 찍은 영화입니다. 고레에다 최초로 타국에서 작업하고 까뜨린느 드뇌브, 줄리엣 비노쉬, 에단 호크 등의 서양 일급 배우들을 기용했다는 점에서 야심 찬 도전으로 보이는 작품이었죠. 그러나 화려한 치장을 걷어낸 영화의 뼈대는 텔레비전 단막극 정도로 소박합니다. 감독의 전작들 중에서도 작은 편에 속하는 디자인이에요.

호사스러운 캐스팅은 이치에 맞는 선택입니다. 특히 타이틀롤을 맡은 까뜨린느 드뇌브는 존재 자체가 연출 기법이 될 정도예요. 역에 필요한 연기가 심오하고 대단해서가 아니라 영화 역사의 리빙 레전드라는 배우 본체의 압도적인 명성과 파비안느 캐릭터의 합일감이 영화에 현실적인 긴장감을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효과는 연기와 현실의 경계를 흐리는 작품의 주제와도 부합하죠. 줄리엣 비노쉬는 차분히 에고를 접고 드뇌브를 보좌해요. 그녀 특유의 생활 연기는 고레에다 영화와 참 잘 어울리네요.

아기자기한 유머로 가득한 영화입니다. 고레에다의 낙천적인 시선은 히스테릭한 프랑스 여자들마저 따뜻하게 감싸는군요.

P.S. 이번 영화에서 유독 줄리엣 비노쉬의 외모가 줄리아 로버츠와 닮은 것 같지 않았나요? 심드렁한 표정까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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