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기에 관한 고찰
영화 보기는 게으르고 가난한 아이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멋진 취미이지. 걔한테 현실은 괴담처럼 무시무시한 거거든. 이를테면 방문 앞에 거대한 트롤이 버티고 있다고 상상해봐. 감히 맞서 싸울 용기가 있겠어. 간신히 자리에서 궁뎅이 떼고 방문만 잠그는 거지.
아이는 삶의 현장에 뛰어들기보다 달콤한 감상에 자신을 처박아 두기로 결정한 거야. 그래서 아이는 넘어질 필요가 없게 됐지. 넘어지면 아프다고 영화에서 배웠거든. 모니터에 멀찌감치 떨어져서 팔짱을 낀 채로 몇 번이나. 아이는 위태위태한 연애 산업에 뛰어들 필요도 없었어. 혼자 침대에 누워서 환상적이고 관능적인 사랑들을 경험했는 걸. 그게 얼마나 안전한 행복인지 어른들은 모를 거야. 아니 아이는 언제나 인간은 어른으로 성숙해질 수 없다고 이죽거렸어. 아이가 좋아하는 영화엔 덜 자란 성인들로 가득했거든. 이렇게 영화는 아이의 가정교사이면서 유능한 대리자로 아이가 응당히 감수해야 할 많은 일들을 대신 수행해줬지.
아이는 방 밖으로 나오면 괴수가 아니라 어른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나 봐. 그 사람들은 편집되지 않는 생활을 있는 그대로 용감하게 받아들였어. 모든 일상이 숭엄하지는 않았지만 운명에 굴복하여 자신을 방치하지도 않는 자들이었지. 영원히 아이로 남는 것은 동화 밖 세상에선 부끄럽고 슬픈 일이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