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비망록
<귀여운 여인>과 <런어웨이 브라이드>로 90년대를 호령하던 줄리아 로버츠는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에서 좋아하던 남자의 결혼을 방해하는 안티히어로로 분한다. 그녀의 쓰라린 질투의 대상이자 결혼식의 신부는 이제 막 부상하기 시작한 캐머런 디아즈. 극 중 가라오케에서 줄리아의 책략으로 노래에 자신이 없는 캐머런이 마이크를 넘겨받는 장면이 있다. 신인배우였던 그녀는 서툴지만 순수한 퍼포먼스로 오히려 화면을 장악해 버리고 줄리아는 패배를 받아들이고 쓸쓸한 미소를 짓는다. 이후 대중이 가장 사랑하는 얼굴이자 만인의 신부였던 줄리아는 그렇게 웨딩드레스가 아닌 들러리드레스를 입고, 사랑을 잃은 자이자 주인공이 아닌 자가 되어 이야기에서 물러난다. 사랑받지 못했지만 쿨하게 털어버리는 서사는 이상하게 자주 여성배우에게 주어진다.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은 어쩐지 프레임을 삐져나와 내게 스타 산업의 씁쓸한 왕관계승식으로 남아있다. 비약이 너무 심했으려나. 실제로 영화가 개봉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로 캐머런은 줄리아 로버츠의 자리를 완벽히 대체했다. 그 시절 캐머런 디아즈는 위험해 보이지만 다룰 수 있는, 할리우드가 선호하는 통제 가능한 섹시함의 정점에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매력은 시스템이 원하는 페르소나 안에서만 작동될 수 있었고, 스타들은 자연히 그 프레임을 벗어나기를 원한다. 그러자 할리우드는 그녀의 매력을 빠르게 소모하고 휘발시켰다. 그녀는 쿨한 여자친구였지만 존경받는 여성상으로 전이되지는 못했으니까.
이쯤 돼서는 데미 무어의 이야길 해보고 싶다. 줄리아 로버츠는 명예로이 퇴장했고, 캐머런 디아즈는 섹시함의 의무를 벗어던지고 홀연히 사라졌다. 최근 <서브스턴스>의 데미 무어를 보니 그녀에게는 떠나거나 사라지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 같다.
90년대 초반 그녀는 <사랑과 영혼>으로 줄리아 로버츠에 못지않은 국민적인 배우였다. 당연하게도 할리우드는 늘 여성스타에게 더 강하고 더 적나라하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그녀는 거절하지 않고 응답하는 방식으로 산업에 잔존해 왔다. <스트립티즈>에서는 전라연기로 <지 아이제인>에서는 삭발까지 하면서. 세월은 그녀의 헌신적인 태도마저도 피로해했고 그녀는 추억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분명히.
<서브스턴스>는 교활하다. 여기서 데미 무어는 노화를 거부하고 대중의 관심에 집착한다는 본인에게 덧씌워진 가십까지 내던져 연기한다. 결과는 아주 성공적이었고 그녀는 처음으로 골든글로브를 수상하며 재조명됐다. 예순의 나이에도 완벽한 실루엣으로 시상식 레이스를 도는 그녀를 보면서 경외심이 들고 응원하고 싶으면서 한편으로 프레임 바깥의 고투와 힘겨운 헌신이 느껴져 어릿하다. 그녀는 시스템에 저항하고 품위 있게 떠나는 대신, 몸을 갈아 넣고 개인의 감정과 경력, 삶의 방식까지 팔 수 있는 단위로 정제해 기어이 버텼다. 극 중 ‘엘리자베스 스파클’의 주사구멍이 생존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여자의 몸에 새겨진 서늘한 자국으로 보인다면 거만한 시선일까. 그녀의 서사는 승리일까. 시스템에 대한 굴복일까. 승리라고 하기에는 대가가 너무 커보이고 굴복이라기엔 너무 화려하고 아름답다. 삶과 배역이 맞물릴 때 스타는 신화가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