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의 사랑법: 나를 찾아줘(2014)

영화감상문

by jngho

“무슨 생각해?

네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알고 싶어.

너의 예쁜 머리통을 깨 뇌를 꺼내서라도...”


예쁜 머리통을 가진 에이미는 망가져있다. 그녀는 동화작가인 통제광 부모님 밑에서 통제와 굴종을 관계의 이상적 형태로 내면화했다. 어린 시절 그녀를 모델로 한 동화책 <어메이징 에이미>는 혁혁한 성공을 거뒀고, 그녀는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누렸으며 미디어를 다루는 법도 학습했다. 그러나 동시에 외부의 높은 기대와 나이브하고 어메이징한 동화 속 자아상은 그녀에게 늘 위화감과 열패감을 안겨줬다. 그녀는 실제의 삶보다 정제된 활자와 조작된 이미지로 존재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녀에게는 애정보다 또 인간으로서의 도리보다 상황을 통제하는 주도권을 잡고 승기를 얻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녀는 그런 식으로 낙오감과 불안을 해소한다. 건강한 관계에 대해서도 일찌감치 포기해 버렸다. 에이미는 똑똑한 만큼 취약하다. 중간고사를 망치면 학교를 그만둬버리는 타입으로 남편의 부정 따위에 잔인한 복수와 자살 계획까지 진도를 빼버린다.


반면에 닉은 그녀에 비해 납작한 캐릭터다. 그는 알파메일로 실패와 열등의식에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하며 방임적이다. 그의 영화적 매력은 하나, 그는 아내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그는 기어코 에이미의 병든 리듬에 발맞추는 법을 터득한다. 그녀의 연출에 살해 용의자로 몰린 닉은 궁지에서 게임의 규칙을 깨닫고 그녀를 유인한다. 그는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둘만의 러브랭귀지로 그녀에게 백기를 흔든다.



에이미는 남편이 자신의 광기와 승부욕을 읽어내고 그녀가 만든 불리한 상황을 반전시켰다는 점에서 계속해서 자신의 게임에 응할 수 있는 상대로 인정한다. 그 순간 그녀는 미싱퍼즐을 찾았다는 운명적 사랑을 느낀다. 자신의 인생에 지저분하게 연루되어 이제는 분리되기 힘든 동족이 나타났다는 건 인생의 불가피한 유기공포를 해결해 주며, 자기만큼이나 취약한 환자로서의 유대로도 이어진다. 닉도 마찬가지다. 그는 에이미가 돌아왔을 때 탈출보다 합의를 선택한다. 그는 그녀의 방식이 얼마나 복잡하고 강력한지 알고 있으며 그들이 함께 구축한 서사의 공범으로서 다른 어떤 관계보다 그녀와의 공모가 본인의 생존에 있어서도 최선임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윽고 에이미는 공포스러운 죽음의 의무에서 벗어나 닉과의 파트너십을 지속하기로 결정한다. 많은 사람들이 ‘평범한 남자가 신경증적 여자를 만나 인생이 조져지는‘ 식으로 이야기를 단순화한다. 사실 남자가 경제적으로 비겁해지고 외도를 저지르기 전까지 그녀는 (대외적으로) 완벽한 아내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도 헷갈리는 진심일지 모른다. 에이미의 모든 행동들은 그녀만의 사랑방식이다. 그녀는 무자비한 복수의 화신이면서 상대방에게 인정과 관용을 베풀기도 하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열사이기도 하다. 엽렵한 그녀는 어리석게도 가장 멀리 돌아가는 방식으로 사랑을 붙잡는다.



이로써 <나를 찾아줘>는 기묘한 균형감의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여자는 잃어버렸던 연출자로서의 지위를 되찾았으며, 자신의 허락 없이 이탈한 배우에게 공정한 응징을 마무리해낸다. 생활력이 없는 남자는 아내와의 극적인 사랑이야기로 부와 명예를 얻는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징벌이자 구원이며 서로를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키고 비로소 완성된다. 이들의 이야기가 섬뜩하지만 매혹적으로 느껴지는 건 치밀한 심리스릴러의 기저에서 서늘한 로맨스를 길어 올릴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들의 뒤틀린 연대와 병적 공존이 많은 관계들의 단면을 과장해놓은 정밀한 거울로 보이지 않는가.


우리는 때때로 애정을 가장한 소유욕, 치유와 교정이라 믿는 통제, 헌신으로 위장된 도피 안에서 스스로를 위안하며 살아간다. 로맨스는 결손이 있는 인간들의 잘못 조율된 공감으로, 벼랑 끝에 선 두 사람이 함께 망하지 않기 위해 선택한 은밀한 협약으로 계속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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