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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살하지 않은 이유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까지만 해도 나는 우리 집이 망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엄마와 주 1회 정도 통화를 했지만 엄마는 집안 상황에 대한 내용을 일언반구 한 적이 없었기에 눈치조차 챌 수 없었다. 졸업을 몇 달도 남기지 않았을 무렵에야 엄마는 집안이 어려워졌다는 말을 넌지시 건넸다. 이때만 해도 나는 표현 그대로 집안이 '어려워졌다'의 정도인 줄 알았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집이 쫄딱 망했네'가 우리 가족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집안 상황이 심상치 않구나, 불안하네 정도의 감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가 목을 맸어"


옛날 어른들 말씀에 사람 명줄은 타고나니 살 사람은 무슨 수를 써도 산다던 이야기처럼, 아빠는 수 없이 목을 맬 때마다 엄마에게 발견이 되어 살았다. 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 죽으려 했으나 불을 붙일 줄을 몰라 또 안 죽고 살아 나왔다는 웃픈 이야기도 전해졌다. 아빠가 살아서 다행이지만 '자살'이라는 개념이 충동이 되어 온 가족에게 전염병처럼 퍼지기 시작한 때가 이때부터였다.


이로부터 약 10년 후 다음 자살 시도자는 여동생이었다. 이 아이도 나와 같이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정신과에서 주는 약을 차곡차곡 모아 음독자살을 시도했다. 여동생과 연락이 닿지 않는 것이 이상했던 여동생의 남자 친구가 반차를 내고 동생의 집으로 달려갔고, 죽어가는 애를 구조해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쫄딱 망한 집의 장남인 나의 인생 첫 자살 충동은 중학교 때였다. 온 나라가 한일 월드컵으로 들썩이던 때에도 나는 방에 틀어 박혀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시작된 시험 성적에 대한 부모의 압박이 턱 끝까지 숨을 조여오던 시기였다.

거실에서 들려오는 가족들의 응원 소리를 애써 무시하고 시선을 옮긴 창문을 보며 문득 투신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댓 살 먹은 아이가 평생 처음 느꼈던 자살 충동은 아직도 선명하게 느껴질 정도로 꽤나 강렬한 기억이었다.


그러나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한 스물두 살 때 이후로 십 수년이 흐른 지금까지, 자살 사고는 이제 나의 일상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우울하고 힘들 때는 당연히 죽고 싶고,

지나가는 차를 보면 내가 뛰어들 수는 없으니 나를 치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별 일도 생각도 없는 평범한 하루를 살다가도 '아, 이런 날 죽으면 딱이겠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냥 쉴 새 없이 호흡하듯, 쉴 새 없이 자살에 대한 생각이 쫓아다닌다. 가끔 퍽 살만한 시기가 오면 잠잠해지긴 하지만, 자살 사고는 어디 사라지는 것이 아니더라. 그저 내 안에 조용히 잠재되어 있다가 병에 미쳐 날뛰는 시기가 오거나 물리적으로 힘든 상황이 올 때 개거품을 물고 발작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왜 목을 매지 않았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매일 숨을 쉬듯 자살 사고와 함께 살아왔는데 왜 나는 사실 자살을 생각만 하고 시도 조차 하지 않았을까? 아직은 생각보다 인생이 살만 해서일까?


내가 목을 매지 않은 이유에는 엄마의 존재가 컸다.

목을 매고 숨이 넘어가는 남편을 구조하고, 약을 털어 넣고 사경을 헤매던 딸내미를 냉골 같은 응급실에서 뜬 눈으로 지켜본 것이 엄마였다. 엄마에게, 나 마저 그런 트라우마를 줄 수 없었고 그럴 자격도 없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남편이 두들겨 패고 도박을 하는 것 빼고는 온갖 환난과 인간 군상에 시달린 엄마가 자식을 앞세우는 일까지는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보다 믿고 사는 장남.

이 프레임은 일생 나를 옥죄기도 했지만 어찌 보면 엄마의 집착 같은 사랑이 결국 나를 지켜주었다는 생각도 든다. 삼십 대 후반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까지 엄마는 나에게 단 한 번도 우리 아들 사랑한다 같은 말을 해준 적이 없지만, 나는 너무 잘 안다. 엄마에게 있어 나는 세상의 전부라는 것을. 그리고 아직 유일하게 배신한 적이 없는, 유일하게 남은 '믿는 구석'이라는 것을.


누군가의 믿는 구석이 된다는 것은 이처럼 목이 죌 듯 무겁기도 하지만, 그만큼의 지지와 사랑으로 삶을 지킬 수도 있구나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죽고 싶었던 만큼 늘 살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렇게 숱도 없이 실패를 하면서도 시도하고, 무너지고, 시도하고, 무너지면서 아직까지 살아오지 않았을까.  


문득 내가 죽고 나서 묘비를 남긴다면 무슨 말을 남길까 라는 궁금해졌다.

'아 드디어 끝났다'

막상 이생과 이별을 하면 집착이 남아 죽기 싫어질지도 모르는 게 사람이지만 내게 주어진 목숨을 다하고 죽으면, 참 홀가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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