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을 무렵, 미국에 사시는 목사 삼촌의 초대를 받고 약 한 달가량을 내 또래의 사촌들과 미국에서 지낸 적이 있다. 그때가 내 인생 최초의 해외여행이자 홀로 가족을 떠난 경험이었는데, 열두 살이나 먹고도 엄마와 떨어진 것이 너무 힘들어 혼자 화장실에서 눈물을 찔찔 짜던 기억이 난다. 초반에는 엄마와 떨어진 것이 힘들어서 애를 먹었지만, 이내 미국의 여유로운 분위기와 자연 친화적인 환경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서머스쿨이라고 해서 단기로 영어를 배우러 가긴 했지만 사실 한 달 동안 영어가 일취월장하기에는 무리였고, 그저 사촌들과 노는 게 재밌고 한국의 학원 지옥에서 벗어난 해방감에 자유로웠다.
한 달여간의 서머스쿨이 끝나고, 남은 일주일 간은 외삼촌 가족과 사촌들 전부가 미국 동부를 여행하며 아이비리그 대학들을 탐방을 하게 되었다. 말로만 듣던 하버드, 예일과 같은 세계 최고의 명문대학들의 캠퍼스를 직접 발로 걷고 눈으로 보는 경험은 나의 유년기를 통틀어 가장 '유레카!'적인 순간이었다. 수백 년의 전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캠퍼스와, 그 캠퍼스를 누비는 학생들의 역동적인 분위기를 눈에 담는 매 순간이 심장이 쿵쾅대듯 설레고 마치 신세계를 본 것처럼 새로웠다.
열두 살의 내가 본 예일대학교 캠퍼스는 참으로 고풍스러우면서도 웅장했다. 화려한 캠퍼스를 홀린 듯 구경하면서 정처 없이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당시 MBC에서 우리나라의 성공한 인물을 소개하는 '성공 시대'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었는데 그 프로그램에서 본 전혜성 박사님 같았다.
전혜성 박사님은 본인과 남편 모두가 학자이면서 미국 사회에서 6남매를 전부 엘리트로 키워낸 인물로 당시 화제가 되던 분이었다.
분명 TV에서 본 얼굴이 맞지만 나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어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친척들과 있던 무리에서 빠져나와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전혜성 교수님 아니세요?"
"어머, 어린아이가 나를 어떻게 아니?"
"TV에서 봤어요!"
전혜성 박사님은 열두 살짜리 꼬마가 미국 예일대 한복판에서 자신을 알아봐 준 것에 너무나 반가워해주셨다. 그제야 같이 온 친척들에게 전혜성 박사님을 소개하면서 우리는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기 전 함께 사진 촬영을 하기도 했다.
전혜성 박사님과 헤어질 때 교수님이 내게 이런 말을 남기셨다.
"똘똘한 아이구나, 나중에 꼭 미국에서 다시 보자"
이때였다. 언젠가 반드시 미국에 가서 예일대학교처럼 좋은 학교에서 공부도 하고 전혜성 박사님과 그 자녀들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꿈꾸게 된 순간이. 전혜성 박사님의 한마디는 어린 내 마음 한가운데에서 자라는 꿈의 씨앗이 되었고, 어린 나는 그 꿈의 씨앗을 틔워 부모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고등학교 때 홀로 유학을 떠났다. 비록 집안이 쫄딱 망해 그 꿈이 좌초될 위기가 너무나 많았지만, 어찌 되었건 11년의 세월을 돌고 돌아 끝내 대학을 졸업했으니 그때의 꿈을 일부는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내 생애 다시 한번 전혜성 박사님을 뵙게 될 날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혹시라도 내가 교수님을 다시 뵐 수 있는 기적적인 기회가 생기거나, 이 글이 교수님의 언저리 어디라도 닿는다면 꼭 이 말씀을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