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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출신이지만 사주는 볼 줄 모릅니다만?

대학을 11년 동안 다니는 동안 전공을 세 번 바꿨다. 첫 번째 전공은 학교에서 장학금과 함께 제시한 커뮤니케이션 전공 (한국의 신문방송학과나 언론정보학과)이었는데 문과인 친구들이 취업을 하려면 경영학을 해야 한다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경영학과로 전과를 했다. 그러나 타고난 수포자인 나로서 경영학과에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수리능력을 따라가기에 역부족이었다. 보통 한국 유학생들이 미국에 가면 가장 쉽게 점수를 따는 것이 수학, 과학과 관련된 과목인데 나는 머리가 터지게 공부를 해도 교양 수학을 두 번 다 C+로 마감했고 과학 교양 중 한 과목은 F를 맞고 재수강을 해서도 C+를 받아 겨우 통과했다. 대신 일반적인 유학생들이 어려워하는 영어 관련 과목은 4년 내내 A를 받아서 학교에서 운영하는 글쓰기 센터 (Writing Center)에서 미국 학생들의 글쓰기를 도와주는 학생 튜터 (tutor)로 일하기도 했다.


집이 망한 이후 20대 내내 나는 노동자들의 인권을 변호하는 인권 변호사가 되고 싶었다. 가정 경제가 파탄이 난 이후 부모가 고용주에서 노동자가 되면서 겪게 된 설움과 아픔, 그리고 사회의 부조리함에 내 목소리를 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와 생각해 보면 '변호사'라는 타이틀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이미지, 망한 집에서 변호사를 냈다는 고전적인 '개천의 용' 스토리의 주인공이 되고픈 허영심도 깔려있던 것 같다. 


미국에는 학부에 법학과가 없다 보니 로스쿨 진학에 유리한 철학과로 전과한 것도 이 목표 때문이었다. 철학과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논리와 사고력, 그리고 글쓰기와 토론 능력이 로스쿨 입학과 진학 후에도 중요한 소양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당시만 해도 미국 로스쿨 입학시험 (LSAT)에서 가장 고득점을 하는 출신 전공 1위, 2위 안에 늘 철학과가 순위에 들었다. 노동자 인권에 특히 관심이 높았던 만큼 노동학을 부전공하기도 했다. 


철학과를 나왔다고 했을 때 여태껏 내가 사람들에게 받은 반응은 대표적으로 딱 두 가지이다.

1. "철학과요? 사주 같은 것도 잘 보세요?"

2. "아이고 어려운 공부 하셨네요" 


안타깝게도 철학과는 나왔지만 사주는 볼 줄은 모르고, 철학은 나에게는 어려운 공부였던 것은 정말 맞다. 매 학기마다 읽어야 하는 책의 개수만 해도 수십 권이 될 때도 있었고 이 모든 것들을 영어로 이해하고, 분석하고, 글을 쓰고 토론하는 과정까지 이르는 것은 나 스스로 참을 인(忍) 자를 스스로 오만번은 새겨야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머리를 싸매고 공부해도 늘 모멸감이 들 정도로 잘하지 못했고 같이 공부하는 철학 천재들을 보며 자괴감에 늘 힘들었다. 현인이라고 불리는 고대 철학자들의 이론에서 한계를 찾고 증명을 해야 하는 과정은 나 같은 미물이 해내기엔 토악질이 나올 정도로 힘든 과정이었다. 나 혼자 전전긍긍하는 과정도 힘든데, 미국에서 철학 전공은 토론이 빠질 수가 없으니 나의 이 무지한 지성을 어쭙잖은 영어로 미국 아이들에게 드러내는 것 자체가 수치심의 연속이었다. 


철학과에 다니는 동안에 나는 매일 우울증 약을 퍼먹으면서 정말 아무도 만나지 않고 공부만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늦은 나이에 복학을 해서 결론적으로 졸업까지 11년이 걸리긴 했지만 복학 후에 조기졸업을 해서 그나마 학비와 생활비를 줄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철학이란, 오만정이 떨어졌지만 애들 때문에 참고 사는 배우자 같은 느낌이었다. 난 어찌 되었건 이걸로 졸업을 해야 했으니. 우리 학교의 철학과는 또 어렵기로 유명해서 아무리 공부를 하고 교수를 찾아가서 따로 설명을 들어도 B+이상을 받지를 못해 더 분개했다. 어찌 되었건 우격다짐으로 공부해 지금은 졸업장을 받았으니 진심 아무런 후회도 없다.


졸업 후, 가끔 철학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나에게 좋아하는 철학자가 누구냐? 같은 질문을 한다. 

"정말 모르고요, 사실 더 알고 싶지도 않아요"라고 얘기하고 싶은 것을 꾹 참는다. 학교 때는 이혼 못하고 애들 때문에 참고 사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황혼 이혼을 하고 나서 관 속에 들어갈 때까지 다신 보고 싶지 않은 배우자의 느낌이랄까. 참으로 애증의 관계이다. 


그래도 나는 내가 철학과 출신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비록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취업과 직결되는 학과도 아니고, 공부하기 쉬운 학문도 아니지만 철학과에서 고군분투하며 논리적 사고와 세상을 보는 안목, 그리고 생각하는 근육을 키웠다고 생각한다. 특히 나의 생각을 글로 쓰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는 것에 있어서 자신감이 생긴 것도 이러한 철학적 바탕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작가로서 그리고 지금처럼 대중 앞에서 말을 하는 직업을 꿈꾸고 있는 나에게는 가장 핵심적인 능력을 배운 것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다양한 철학 이론을 배우며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더 넓어진 것도 분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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