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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학원 15곳에 다 떨어졌습니다 (올리젝 썰)

한국에서 프리랜서로 방송일을 하면서 먹고사는 것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어떤 분야에 보다 전문성을 갖춘다면 그게 연구건, 강의건, 방송이건 지금 보다 안정적으로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미국 대학원을 지원하게 됐다. 미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했지만 최종 학력은 학사뿐이었고, 내 돈을 내고 대학원을 갈 여력은 절대로 불가능해서 전액 장학금을 받고 석박사를 통합 과정으로 끝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골라 지원했다.


대학원 진학을 8월에 급하게 결정해서 12월까지 원서를 넣어야 했으니 GRE (대학원 및 전문학교 입학시험)를 준비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석사 학위를 요구하지 않으면서, GRE를 받지 않거나 옵션으로 받는 대학원들 중에 석박사 통합과정을 전액 장학금으로 학교들을 추려서 지원하기로 했다.


나의 전략은 쫄딱 망한 집 첫째 아들로서 나의 개인 이야기를 에세이로 녹여서 어필하고, 방송이라는 흔하지 않은 경력을 살리자는 것이었다. 눈물 나는 에세이 만으로도 명문 대학원에 많이 입학시켰다는 에세이스트에게 돈을 주고 컨설팅을 받아 에세이를 완성했고, 나를 어필할 수 있는 내용들을 담은 개인 웹사이트도 개설했다.


석사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논문도 없다 보니 나의 학술적인 능력을 증명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미국 대학원에 재학 중인 친구에게 자문을 얻어서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4개월 만에 논문을 썼고 심리학 분야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에 논문을 등록하는 것은 내가 가장 주력했던 과정이었다. 같은 주제로 국내의 학술재단에서 포스터 발표를 하여 짧은 시간 동안 나의 학술적인 열정과 능력을 보이기 위해 애를 썼다.


미국 대학원은 원서비가 정말 살인적인데 환율까지 적용하면 학교당 십수만 원이 드는 곳도 있었다. 재정상 15개의 학교를 지원하는 것이 최대치여서 그 이상은 지원하지 못했다. 사실 미국 대학원 진학에 있어서 교수들과 인터뷰를 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나는 15개의 지원 학교 중에 3곳에서만 인터뷰 제안을 받았다. 내가 지원한 학교 중 가장 랭킹이 높은 대학원의 교수, 나의 모교의 타 대학원 교수, 그리고 내가 인터뷰 제안을 해서 수락한 교수 이렇게 세 사람과 인터뷰를 했는데 그중 나의 모교 노동학 대학원 교수가 나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주변에 물으니 이 정도면 거의 합격이라고 할 정도로 인터뷰의 분위기나 교수와의 일치도가 높았다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난 내가 지원한 모든 곳에 다 떨어졌다.


15곳 중 한 곳은 붙으리라 생각했는데 막상 다 떨어지고는 정신이 나갈 것처럼 충격이 커서 한동안 애를 먹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애초에 너무 급한 결정이었고 준비도 충분치 못해 억울한 결과는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학문에 대한 열정보다는 그저 피상적으로 박사라는 타이틀에 대한 허영과 불안정한 현실을 도피하려던 게 아닌가 싶다. 대학원 준비를 하며 시간도 돈도 많이 버렸지만 그래서 후회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목적이 불확실한 상태에서 덜컥 합격해 석박사 과정을 다니다가 중도에 포기해 버리면 오히려 이도 저도 되지 않는 난감한 신세가 되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올해의 수많은 실패 중에 하나가 대학원 올리젝이었지만, 이 도전을 통해 나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였으니 너무 나를 자책하지는 않으련다. 먹고살기 위해서 이것저것 많이 도전해 보고 실패하면서 나와 나에게 주어진 길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부딪혀 배운 것이 내게 남은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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