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것이 일생 어려웠다. 사회가 정한 기준과 비교해서 나를 견주고 부족한 부분을 혹독하게 비난하며 결핍을 채우기 위해 채찍질만 하며 살아왔다. 머리로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것이 자존감의 바탕이자 타인을 사랑하기 전에 반드시 갖추어야 할 부분이라고 알고 있지만, 체감상 원수를 용서해야 하는 것처럼 본연의 나를 사랑하는 게 어려웠다.
나에게 편지를 썼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내게 제안한 방법이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들에게 기념일마다 편지를 빼놓지 않고 써주면서도 나에게 보내는 편지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렇게 오랜 세월을 살면서 나 스스로 나의 이름을 불러준 적이 한 번도 없었구나 새삼 놀랐다. 나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나 자신을 제삼자의 눈으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동시에 나를 가장 밀착해서 만나는 과정이었다. 나 자신을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보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 마음속에 자리한 콤플렉스와 두려움, 동시에 잊고 살았던 나의 가치를 다시 한번 발견하고 칭찬해 주게 되었다. 편지를 쓰는 도중에 혼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하고,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하게 되는 새로운 경험은 켜켜이 쌓인 감정의 무게를 털고 뭔가 산뜻하게 거듭난 자신을 만나는 것과 같았다. 세상 그 누구보다 나 스스로가 나를 매 순간 가장 혹독하게 비난하고 살아왔음을 깨달았을 때는 잠시 멍해질 정도의 충격이었다. 나는 나 자신의 주인인데 왜 스스로를 그렇게 주눅이 들게 비난만 하고 살았을까. 순간 지난날의 나 자신이 불쌍해졌다.
그래서 요즘 나는 스스로에 대한 비난을 멈추는 연습을 하고 있다. 매 순간마다 조금이라도 나태해지거나, 잘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면 득달같이 비난의 화살을 던지려 할 때 나의 중심 자아가 그 화살을 내려놓게 하는 과정이다. 자기반성은 자아 성숙에 도움이 되겠지만 나는 반성의 차원을 넘어 스스로를 비난만 하고 있었으니 우울하고 죽고 싶은 것은 새삼 놀라운 결과도 아니었던 것 같다.
다독이려 한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에 만날 나를 좀 더 건강하고 따뜻하게 맞이하기 위해서. 나는 나를 다독이려 한다. 그 누구의 위로도 나 스스로 나에게 건네는 위로만큼 중요하지는 않을 것이란 걸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