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6일 금요일
살면서 꾸준하게 원하는 것 중 하나는 오롯이 나로 사는 것이다. 오롯이는 ‘모자람이 없이 온전하게’라는 뜻을 가진 부사이다. 그 의미가 좋아서 자주 쓰다가 몇 년 전부터는 필명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온전히 나로 살고 싶은 마음은 현재 그렇게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언젠가 나 아닌 사람으로, 그러니까 실제의 나보다 괜찮은 누군가로 살기를 완전히 그만둘 수 있을까. 정말로 나아진 게 아니라면 조금도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다고 바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때때로 나는 나를 보고 싶다고 느낀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괜찮은지 나의 시선을 거두고 나라는 의식 없이 나를 보고 싶다. 어제 갔던 북토크에서 작가가 그런 말을 했다. 힘든 일을 할 때, 조금 더 해내라고 나를 닦달하기 전에 그 사람이 내가 아니라 나보다 어린 누군가라고 상상해 보라고. 그럼 그렇게 그를 몰아세우지 않게 될 거라고. 정말 그랬다. 내가 아닌 타인에게는, 더구나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는 괜찮다고, 충분하다고, 이제 좀 쉬라고 말할 것 같았다. 그 마음으로 나도 좀 봐주며 살아야겠다. 더 나아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믿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