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8일 일요일
가만히 허공을 응시하다 문득 어떤 이들의 얼굴이 떠오를 때가 있다. 나의 일부가 된 사람들. 그들과 함께 보낸 시간과 장면들이 나를 구성하고 있다고 느낀다. 한때는 전부였던 사람들. 헤어지는 일을 생각만 해도 애가 닳아서, 가슴이 아파서 목이 멨던 사람들. 이제는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알지도 못하는 채로도 잘만 살아간다. 헤어지면 죽고 못 살 것 같았던 이도 이제는 몇 년에 한 번 떠오를까 말까 한다. 그 사람을 사랑했던 감정이 어떤 느낌이었더라. 그게 나를 아주 행복하게도 평안하게도, 삶을 지옥 같게도 했었는데. 사는 동안 그런 감정을 다시 느껴볼 수 있을까. 사랑이 시작될 것 같아서 설레고 하루 종일 나들이 나와 있는 것처럼 기분이 들떠 있는 상태일 수 있을까. 내가 결혼하면서 한 약속은 그런 걸 다시는 느끼지 않겠다는 맹세 같은 걸까. 나는 아무래도 연애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 좋아하는 연애 감정을 십 년 넘도록 억제하면서 살고 있다. 이 정도 애는 써야 하는 거구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넘어가지 말아야 할 마음 같은 게 있는 거구나. 새삼 생각한다. 결혼 전에는 어디 새로운 장소에 가면 여기 내가 좋아할 만한, 나를 좋아할 만한, 그래서 나와 뭔가 재미있는 일을 꾸려볼 만한 이가 있는지 살피곤 했었다. 그런 재미가 있었다. 나를 채울 타인을 찾는 재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