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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다영 Sep 07. 2024

나는

2024년 9월 7일 토요일


함께 있는 시간이 길다고 해서 그만큼 상대를 더 잘 알게 될까. 가까운 사이라고 해서 그 사람에 대해 내가 많이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결국 내가 알고 싶은 만큼만 상상할 수 있을 텐데.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것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나. 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다고, 그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우리는 어떻게 확신할 수 있나. 사랑이란 감정은 자주 막연하고 지나치게 방대하고 쓸데없이 어렵고 무겁다. 사랑은 귀하고 또한 흔하다. 사랑은 무엇이든 될 수 있으면서 우리로 하여금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사랑 앞에서 나는 대체로 무력하다. 그것이 가는 방향으로, 그것이 이끄는 대로 끌려간다. 사랑과 나는 반대의 선택을 할 수 없다. 나는 언제나 그것에 지기 때문이다. 한 번도 이길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중에 사랑이 있다. 다른 하나는 술이다. 술과 사랑이 나는 좋고 어렵고, 두렵다. 그들 앞에서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구분하는 능력을 상실한다. 나는 그저 따른다. 별다른 저항 없이. 누군가를 아주 많이 사랑하고 싶다가도 문득 그런 엄청난 감정 같은 건 느끼지 말고 싶다. 나로 하여금 나를 잊게 하는 사랑 같은 건 다시 하고 싶지 않다. 무언가 나를 넘어선다면 그것이 나이기를 바란다. ‘나는’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수없이 쓰면서 내가 나라는 사실을, 살면서 내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이 나라는 사실을 새삼 자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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