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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다영 Apr 02. 2022

아빠의 죽음

  설날에 떡국을 먹고 체한 게 사달이었다. 아빠는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못하더니 점점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아빠가 알코올 중독 치료원에서 나온 지 반년만의 일이었다.

  치료원에서 나온 아빠는 술을 입에 대지 않았었다. 그 반년 동안 아빠는 거의 집에서만 지냈다. 집을 청소 하고 빨래를 하고 마트에 가서 장을 봐오고 아침저녁으로 식구들의 밥을 챙겼다. 내 분홍색 자전거를 끌고 불광천 변을 따라 한강에 다녀오는 게 아빠의 가장 긴 외출이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아빠는 조용히 말하고 작게 웃었다. 아빠가 너무 조심스러워 보여서 나도 아빠가 서먹하게 느껴지곤 했었다.


  아빠는 구급차에 실려 강북삼성병원으로 이송됐다. 급성 간경화라고 했다. 아빠는 임종 전까지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었다. 가래가 많이 끓어서 숨을 쉴 때마다 큰 소리가 났다. 시간마다 간호사가 와서 석션으로 가래를 빼주었다. 아빠의 입에서 나오지 못한 말들이 누렇고 눅진한 가래가 되어 나오는 것 같았다.

  낮에는 나와 동생이, 저녁에는 엄마가 아빠의 병상을 지켰다. 며칠 새 아빠의 몸은 급속도로 말라갔고 살갗은 점점 까맣게 변해갔다. 그런 아빠의 몸 어디에 힘이 남아있던 걸까. 기저귀를 갈기 위해 아빠의 몸을 들려고 할 때마다 아빠가 너무 힘을 주는 바람에 나는 팔이 부러질 것만 같았다. 힘 좀 빼라고 아무리 말해도 아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가 아빠의 바지를 벗기고 기저귀를 갈고 물티슈로 엉덩이를 닦은 후에 다시 바지를 입히는 동안 아빠는 몸을 움직이지 않기 위해 몸에 남아있던 힘을 모조리 쥐어 짜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빠는 입원한 지 닷새 만에 돌아가셨다. 병원에서 임종을 위해 따로 빈 병실을 내어 주었다. 엄마와 나와 동생, 그리고 소식을 듣고 온 고모가 아빠의 임종을 함께 지켜보았다. 우리는 아빠의 남은 숨소리를 들으며, 표정이 사라진 아빠의 얼굴을 가만히 보았다. 가까이 다가가자 아빠의 몸 구석구석을 닦았던 물티슈 냄새가 났다. 나는 차갑고 마른 아빠의 손을 잡고 너무 많이 미워해서 미안하다고 작게 말했다.


  죽은 아빠는 다시 구급차에 실려 고향으로 옮겨졌다. 아빠의 형제들 덕분에 장례는 순조롭고 간략하게 치러졌다. 나는 그저 앉았다 일어났다 다시 앉았다 했다. 많은 이들이 눈앞에 머물렀다가 사라졌다. 간간이 밥을 먹었고 옆에 앉은 동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웃기도 했다. 내 안과 밖에서 슬픔이 차올랐다 가라앉았다 했다.

  분골 전 아빠의 뼈를 보았다. 유리창 너머 스테인리스 위에 놓여 있던 하얗고 검고 볼품없는 뼈 몇 개가 아빠라고 했다. 그 뼈들을 아빠라고 할 수 있는 걸까. 그곳에는 내가 아빠라고 기억하는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주 앉아 밥을 먹고, 말하고 걷던 사람이었는데, 내가 보고 만지고 미워할 수 있었던 몸이 있었는데, 아빠에게는 이제 사람이라고 할 만한 육체가 없었다. 아빠가 정말 죽었구나, 죽어서 영영 사라지고 없구나. 나는 그제야 아빠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게 어떤 감정인지 모르는 채로 자꾸만 헛구역질이 났다.


  죽음을 쉽게 생각한 적이 있다. 죽음이 뭔지도 모르면서 삶이 힘들다는 이유로, 사는 게 어렵다는 이유로 이보다는 죽는 편이 쉽지 않을까 생각했다. 산다는 건 뭘까, 매일을 살면서도 그게 뭔지 몰라서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어느 쪽이 내게 좋은지, 어디로 가야 잘 살 수 있는 건지, 그리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너무 많은 선택과 장애 앞에서 나를 시험해야만 했을 때, 죽음은 너무도 쉬운 해답 같았다. 그 뒤편에는 지금보다 나은 삶이 있을 것만 같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죽음도 삶으로 받아들였다.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빠의 뼈는 내게 죽음이 어떤 모습인지 알려 주었다. 죽는다는 건 육체를 잃어버리는 일이었다. 무엇을 해 볼 마음도, 몸도 잃어버리고 남은 뼈마저도 전부 부서져 아무것도 아닌 상태가 되는 일이었다. 그건 너무도 분명한 삶의 끝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죽음이 두려워졌다. 너무 무서워서 삶으로, 삶 쪽으로 자꾸만 도망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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