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틀리에에 놀러 오실래요?
영국 출신 소설가 겸 비평가인 버지니아 울프는 강연을 위해 '여성과 픽션'이란 주제로 쓴 글을 발전시켜 집필한 명저 <자기만의 방>에서 "픽션을 쓰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울프는 이 책에서 천재는 일정 부분, 아니 상당 부분 만들어지는 것이고 이 과정을 위해서는 일단 경제적으로 안정되어야 하고, 창작할 수 있는 물리적, 심리적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지금까지 50여 편이 넘는 소설을 출간하고 대부분의 작품을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안착시킨 미국 최고의 이야기꾼 소설가 스티븐 킹도 그의 창작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만의 장소에서 가장 잘 쓴다"며 (p.189) 이 자기만의 공간과 세상을 분리시킬 하나의 문과 그것을 닫을 마음이 창작을 위해서는 가장 필요하다고 말한다.
"여러분은 이 문을 닫을 용의가 있어야 한다. 문을 닫는다는 것은 여러분의 결심이 진심이라는 것을 온 세상과 자신에게 공언하는 일이다." <유혹하는 글쓰기> p. 189, 스티븐 킹 지음, 김영사
자신만의 방으로 문을 닫고 들어간다는 것은 창작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다른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자기만의 방으로 들어가서 창작하는 순간, 한 인간은 창작하는 예술가로 거듭나는 것이다.
예술가들의 작업 공간인 아틀리에를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 돌아보면, 재작년에 프랑스에서 두 달가량 머무르며 빅토르 위고의 집, 모네의 집, 예술가들의 작업 공간을 그대로 간직한 크고 작은 미술관들을 둘러보는 것이 참 행복했었다.
유럽 그림책 작가들을 인터뷰한 책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최혜진 저, 은행나무)를 읽을 때도 인터뷰 내용보다도 그들의 작업실 공간 사진이 더 눈에 들어왔었다.
일상이 한 편의 예술작품 같은 그들의 삶을 한편으로는 시샘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동경해왔다. 질투와 선망이라는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하지만 이런 '오롯이 창작만을 위한 작업 공간'은 예술적 재능을 타고난 사람, 그러니까 어릴 때부터 유별나게 그림을 그린다던가 독창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특권이라고 생각했다. 아, 저 사람은 천상 예술가구나 싶은 사람들만의 특권.
어릴 때는 백일장이나 사생대회에서 크고 작은 상을 받은 적은 있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무언가를 만들기보다는 누군가 만든 작품을 소비하고 즐기는 쪽에 가까웠다. 마음속에 작은 '부러움'이라는 씨앗을 품고 말이다.
이제야 다시 용기를 내어 그림을 그리고, 손끝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재미를 느껴가면서 마음속에 있던 부러움이라는 작은 씨앗이 점점 '나도 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으로 커갔다.
그리고 올해 여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식탁에 앉아 계속 그림을 그리는 나에게 나만의 작업 공간, 아틀리에를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난 예술가만 그림 그리라는 법도 없고, 전업작가가 아니라고 해서 작업 공간을 가지지 말란 법도 없으니까.
일단 사진을 모아 놓은 사이트인 핀터레스트(Pinterest)에서 'Atelier'라고 검색해 나오는 이미지를 살펴보며,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찾아보았다.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에 길게 작업대를 두고 물감 등 도구를 정리해 놓은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일단 식탁으로 쓰던 테이블을 책상에 이어 놓고, 그 위에 가지고 있는 그림 도구들을 모두 진열했다. 꾸깃하게 짜낸 흔적이 있는 물감들이 신나 보였다.
집안에서 내 취향인 물건들을 모아 작업대에 신중하게 올려두는 과정이, 그려뒀던 그림을 하나하나 벽에 붙여 놓는 일들이 너무 벅찼다. 마지막에 작은 거울 위에 립스틱으로 'My Atelier'라고 쓰면서 내가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한 것인지 나 자신이 너무 좋아 꼭 껴안아주고 싶었다. (자기애 대폭발!)
이미 가지고 있던 물건으로도 충분히 가능했는데, 왜 지금까지 이렇게 내 취향을 들여다보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삶을 꾸미는 데 소홀했는지 그동안 나 자신에게 참 야박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과서를 달달 외우며 내신관리를 잘했다. 누구보다 객관식 정답을 찾는 것에 능했다. 그러나 열심히 누군가의 답을 맞히다 어른이 되고 나니, 내 인생을 어떤 답으로 써 나가야 할지 모르겠더라.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보면 설레는 지도 잘 몰랐다. 그래서 '삶의 정답은 이미 자신 안에 있다'라고 말하는 책을 읽으면 답답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답이 내 안에 있는데도 못 찾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면서부터 정답이 자신 안에 있다는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림에는 정답이 없고, 오로지 자신이 보기에 좋은 색과 모양으로 흰 종이를 채워나가면 되기 때문이다.
온라인으로 듣고 있는 오일 파스텔 강의에서 강사님이신 크레용토끼 작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뭐라도 칠해놓고 보면은 어울릴 것 같은 색깔들이 조금씩 보일 거예요. 그러면 그때 천천히 채워주시면 됩니다. 물론, 그대로 비워두셔도 괜찮고요"
'사치'라고만 생각했던 그림 그리기를 다시 시작하며 나는 내 인생에 한 가지 색을 일단 칠해버렸다. 그리고 이제 나의 공간을 만들며 겨우 다음 색을 칠했다. 이제 나만의 귀여운 아틀리에에서 다음 색을 칠할 것이다. 천천히 마음이 이끄는 방향으로 채우다 보면, 내 그림이 완성될 것이다.
그것이 흰 종이든 내 인생이든
마지막엔 정말 멋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