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찾은 마음이 편안한 밤
올해 가을엔 상쾌한 파란 하늘이 자주 보인다. 창밖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새로운 계절은 우리에게 준비할 틈도 주지 않고 어느 날 성큼 우리에게 다가왔다. 오늘 밤, 가을 냄새가 나는 바람을 즐기며 만보를 걸었다. 지난 주말 동안 외부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실내에서 먹고 놀기만 해서인지 오랜만에 나와 걸으며 바람을 쐬니 마음이 개운해졌다.
오늘은 음악을 듣지 않고 풀벌레 소리, 차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아파트 단지를 지나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저녁 9시가 넘었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나와있었다.
요즘엔 꾸준히 운동을 하고 집밥을 잘 챙겨 먹는다. 매일 글을 쓰고, 자주 그림을 그린다. 평소 사치라고 느껴져 주저했던 취미활동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 원래부터 이렇게 살던 사람처럼 자연스럽지만, 사실 이런 나다운 삶을 찾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실 나는 '문제'에 집중하는 사람이었다. 뱃살이 나왔는데 어떻게 빼야 할까, 돈이 없는데 돈을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등 어떤 문제 상황을 찾아내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유전적 이유인지 환경적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고쳐야 할 점 혹은 극복해야 할 점을 찾고 그것을 해결해나가는 생각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만약 시험에서 19개를 맞고 1개를 틀리면 맞힌 19개에 기뻐하기보다는 틀린 1개 때문에
슬펐다.
이 생각이라는 녀석의 힘은 너무나 강하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셉션>에서 주인공들은 누군가의 꿈속으로 들어가 이 생각이란 녀석을 바꿔놓으려고 허공에서 쌈박질하고 난리였던 것이다.
생각이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뀌니까.
대체 내 머릿속에 '단점을 찾아 극복하라!'는 생각을 심어 놓은 것은 누구일까? 레오나르도? 조셉고든토끼?!
이 생각은 아주 뿌리 깊이 박혀 무언가를 표현하고 만들고 싶었던 마음의 소리를 듣지 않고, 살 빼기, 자격증 시험 준비하기 등 나의 부족한 점만 채우려고 노력했었다. 부족한 부분은 쉽게 채워지지 않았고, 설령 극복하더라도 나는 곧 또 다른 문제점을 찾아냈었다. 자존감은 줄이 끊어진 엘리베이터처럼 위험하게 곤두박질쳤다.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인 가바사와 시온의 베스트셀러 <아웃풋 트레이닝>에서 그는 나와 같이 '단점 극복형 사고 과정'을 가진 사람은 비약적인 성장을 이룰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단점을 극복하는 것은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지속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반면 자신의 강점을 개발하는 사람은 성장은 더딜 수 있지만, 지속하는 힘이 강하다고 한다.
오늘 만보를 걸으며 이제는 단점을 극복하려는 문제 해결식 사고방식대로 살지 않고 나의 장점을 개발하는 삶을 살고 있어서 삶이 편안하고 행복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습 퇴사러에 무언가를 꾸준히 하지 못하기로 유명했던 내가 한쪽 벽이 내가 그린 그림으로 가득 차도록 그림을 그리고 매일 블로그에 글을 쓰다 이제 브런치에까지 글을 쓴다. 세상에나.
해결되지 않는 문제점들을 붙잡고 끙끙 앓다가 이러다가는 문제 해결법을 찾다가 내 인생이 다 끝나겠다는 불안감에 뭐라도 그냥 하자고 결심하고 시작한 일들이다. 전략도 계획도 없이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이 일들이 생각보다 나에게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가령 브런치 작가가 된다던가 하는 일)
할 수 있는 만큼 그날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늘 배우고 싶었던 것을 과감하게 시작해버린다. (DSLR 카메라도 없는데 사진 수업을 신청했다.) 그렇게 해도 망하지 않더라. 이 용기란 것도 근육처럼 계속 써야 느는 것 같더라. 요즘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마음이 편안한 밤'이 자주 찾아온다.
오늘, 가을밤을 가로질러 타박타박 걸으며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삶이 과연 성장하는 삶인 것인지 생각해보았다. 마음속에서 계속 자신의 고쳐야 할 점을 찾아내는 사람에겐 자신은 언제나 부족한 사람일 텐데, 그렇게 생각하며 사는 삶은 성장하는 삶이 아니라 그저 불완전한 삶이 아닐까. 어딘가가 부족해서 채워야 한다는 생각은 계속해서 부족한 모습만 보게 하겠지. 나에게서든, 남에게서든.
부족한 점을 극복할 계획만 잔뜩 세우던 내 수첩이 할 일을 잃었다. 이제 정말 내 삶에 뛰어들어와 살고 있기 때문이다.
뱃살이 여전히 나와 있지만, 산책은 그저 좋으니까 하는 것이고 올 가을도 무탈하게 하루의 일을 하면서 사람들과 따뜻한 말을 주고받으며 살고 싶다. (은연중에 살이 빠지길 기대)
만약 누군가가 내 머릿속에 들어와 생각을 바꿔준 것이라면 정말 고맙다. 이 글이 당신의 머릿속에도 몰래 들어가 딸깍 딸깍 생각의 구조를 바꾸어 하나의 단점이 아닌 19개도 넘는 당신의 빛나는 장점을 보게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