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인간의 역습

by 장유록

어느 날은 늘 바쁘셨던 엄마를 대신해 나를 자주 봐주셨던 큰 이모에게 여쭤보았다.




"이모, 이모. 나는 한 다서여섯살 때 어떤 애였어?"




이모는 갑자기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질문인가 하는 표정을 지으시다가 이내 대답하셨다.




"응~ 너는 혼자 그렇게 앉아서 뭔가를 꼼지락꼼지락 하는 애였어. 그냥 내버려 둬도 하루 종일 혼자서 잘 노는 애 있잖아~"




그렇다. 나는 모태 프로 '사부작러'(사부작사부작 혼자 뭘 하는 사람)였다. 인형 옷을 입혔다. 벗겼다를 반복하다 결국 내 옷을 잘라 인형 옷을 만들어 입히는 애였고, 스케치북에 칸을 나눠 이상한 만화를 그리며 히죽히죽 웃는 애였다.



그랬던 내가 무언가 만들기를, 그리기를 그만둔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8세 기념으로 학교에 들어가니 생판 모르는 아이들과 반나절을 함께 보내야 했다. 그런데 또 막상 이 아이들을 만나니 친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꽃씨처럼 아이들과 붙어 다니며 쿨한 김희선 곱창도 사고, 롯데리아에서 열린 생일파티에 가서 데리버거도 먹고, 콩콩(트램펄린)을 타러 가서 하늘 높이 뛰었다. 얏호! 집에 오면 이따금씩 그림을 그리다가 친구 전화가 와서 서랍에 넣어 버렸다.





그러다 교복을 입는 학교에 들어가니 공부할 것이 너무 많았다. 삼국시대 전성기 왕도 외워야 하고, 고려가요도 외워야 했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그 와중에 더 많아진 아이들과 또 친해져야 했다. 게다가 이 아이들은 또 모두 여자애들이었는데, 우리는 격변하는 호르몬 변화 때문인지 야간 자율학습 때문인지 성미가 고약해졌다가 웃었다가 울었다가 난리였다. 그러다 옆 학교 남학생과 좋아 지내기도 했다. 격동의 시절이었다.





나는 어릴 때 맑은 날을 참 좋아했는데, 고등학교 시절부터 비가 오면 사물함 위에 올라앉아 창밖을 바라보곤 했다. 외울 것이 너무 많아서인지 마음이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다. 시험이 끝나면 선생님께서 가끔씩 틀어주시던 TV동화를 보면서 엉엉 울기도 했다. 저렇게 슬픈데 다른 아이들은 안 울길래 약간 머쓱했다. 피도 눈물도 없는 것들.






시험을 아주 잘 봤고, 좋은 대학에 입학했다.






그렇게 나는 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 오래오래 행복했다.







아니, 마지막은 거짓말. 이런 해피엔딩이었으면 좋았겠지만, 대학생이 된 나는 지독히도 우울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저 대학입학이 목표였는데, 목표가 사라진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총명탕을 밤낮으로 마신건지 눈빛이 단단하게 빛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며 나는 더 작아졌다. 종종 작은 자취방으로 숨어 들어가 피자를 시켜먹으며 시간을 죽였다. 그때는 여느 다른 청춘들이 착각하듯 시간이 넘치는 줄 알았으니까.





이십 대 중반부터는 하도 답답하여 책을 읽기 시작했다. 부끄러운 내 속마음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 때, 서점에 들러 마음에 닿는 책을 골랐다. 책이 건네는 조언을 따라 하고, 노트에 끄적끄적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나의 이십 대는 음주와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눈물의 연애로 얼룩덜룩하다. 그래도 참 눈부신 시간이었다. 방에서 피자를 먹고 숨죽여 울던 그 시간까지도.





여기까지 읽었다면 눈치를 챘겠지만 나는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한 사람이다.





언젠가 MBTi성격유형 검사를 해봤더니, INFP 잔다르크 유형이 나왔다. 한국엔 3%. 나와 비슷한 유형의 유명인으론 '빨강 머리 앤'이라고. (심지어 가상의 인물)




이 유형에 대해서 써놓은 글을 읽어보니 '자본주의 사회에 가장 적응하기 힘든 유형'... 이란다.(어쩌라는 건지) 16가지 MBTi 성격 유형 중 연봉 최하위 유형으로 나왔다. 하하 (이걸 진작 알았더라면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을 텐데..)






사실 나는 조직생활이 힘들었다. 숫자 개념도 별로 (전혀) 없다. 용하다 MBTi..






그러나 스포일러를 하자면, 나는 지금 아주 행복하게 이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잘 지내고 있다. 나를 이해하고, 나를 둘러싼 이 세계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앞으로의 이야기는 정답을 외우던 내가 나만의 정답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사부작 사부작 나의 세계를 만들던 나를 다시 찾은 이야기이다. 그렇다. 다행히도 나는 다시 나를 찾았다. 다시 매일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무언가를 만든다. 오랜 삽질과 나름의 독서량과 직장은 그만둬도 글쓰기만은 그만두지 않은 덕분이다.





특히 책의 역할이 컸다. 얼마 전 독서에 대한 너무 공감 가는 글을 읽었다.





"나는 위대한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들에게 끌려 들어간다. 겁 많은 어린애처럼 조심스럽게 그들의 옷자락을 붙들고 그들의 걸음걸이를 따라 시간의 강을 천천히 걸어간다. 따스하면서 온갖 감정이 뒤섞이는 여정이다. 그들은 나를 이끌어준 뒤 돌아갈 때는 혼자 가라며 등을 떠민다. 돌아온 뒤에야 나는 그들이 영원히 나와 함께 있게 되었음을 깨닫는다."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중. 위화 지음, 푸른 숲





고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읽었던 허삼관 매혈기를 쓴 작가로 우리에게 알려진 중국인 작가 위화의 산문집 중 일부이다. 좋은 책을 읽고 나면 작가의 세계관이 독자에게 스며들어 전과 다른 사람이 된다는 저 부분이 정말 공감되었다.





그러나 나의 경우엔 위대하지 않은 작품도 큰 도움이 되었다. 위대하지 않은 책을 읽고 따라 하며 삽질을 해본 덕분에 배운 것이 정말 많다.





이제부터 나도 글이 되어 누군가와 만나 천천히 여행하려고 한다. 내가 삶에서 받아 흡수한 것들이 글이라는 열매가 되어 누군가에게 양분이 되어주면 좋겠다. 20대의 나처럼 누구에게 말도 못 하는 이들의 외롭고 힘든 시간을 위로해주고, 인생에 닥친 크고 작은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작은 실마리라도 주고 싶다. 너무 거창한 꿈이긴 하지만, 노력해보려고 한다. 그러면 지금껏 내가 책으로 만난 저자들에게서 받은 고마움을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있어 보이게 말했지만, 무엇보다 그냥 쓰고 싶어서 쓴다. 나를 이끌고 갔던 위대한 작품들과 위대하지 못한 작품들, 그리고 이어진 삽질들이 나를 부수고 다시 세우면서 내 안에도 하고 싶은 말들이 조금씩 고였기 때문이다.






이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폭포수처럼 흐른다. 이 여정을 누군가가 내 옷자락을 붙들고 함께 해주었으면 좋겠다. 이 이야기가 조금 후지더라도 도움은 될 것이다. 사실 위대하지 않은 책이 나를 키운 지분이 팔 할이 넘는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계속 쓸 것이다. 나는 계속 함께 할 테이니 함께 가주었으면 한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토론토에 사시는 Ashley Barron작가님의 고양이 Flo사진을 보고 그려보았어요! 사진을 올리는 것을 허락해주셨답니다.


고양이 Flo그리기, 이제 다시 그림을 그립니다.
프로사부작러의 귀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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