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나에게 썸타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기상청에 다니진 않지만 이 나라에서 밥을 먹고 산 수십 년의 짬바로 느낌이 딱 온다.
'이런 가을 날씨는 일 년에 며칠 안 된다!'
파아란 하늘에 하아얀 구름이 떠 있고 얼굴을 간지럽히는 바람까지 불어온다. 창밖을 볼 때마다 '매진 임박'이라는 글자가 번쩍 거리는 홈쇼핑 채널을 보듯 엉덩이가 들썩 거린다. '어디든 가야 한다. 시베리아 칼바람이 불어오기 전에 어디든 가서 이 날씨를 즐겨야 한다!!!'
내적 아우성이 밤낮으로 시끌벅적하다.
가을이 온 것이다.
9월이 되자 지리했던 장마가 지나고 여전히 얼굴을 뒤덮은 마스크 사이로도 가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지리하다'는 1988년 부로 '지루하다'의 잘못된 말이 되었지만 나는 올해 장마가 정말 지리~했다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잘못되었다면 그건 저 말이 아니고 올해 장마가 잘못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야 올해는 가을바람만 불어온 것이 아니었다. '아윌 비 백'을 외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불구덩이 속으로 타들어가던 내 연애세포를 붙잡아 올리는 '썸' 도 같이 불어온 것이다. 끼약
시국이 시국인지라 거의 연락만 주고받고 비밀 연애를 시작한 연예인들처럼 조심스럽게 만난다. 소위 '썸'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썸을 타다'라는 표현은 something 타다에서 온 말로 '아직 연인 관계는 아니지만 서로 사귀듯 가까이 지내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네이버 국어사전) 아휴 부끄러.
썸남의 연락이 갯벌 조개처럼 빠꼼하고 내 핸드폰을 비집고 나오면, 진흙탕 같던 일상에 활력이 생겼다. 내 일상을 궁금해하는 질문에 광대가 씰룩거리며 올라가기도 했고, 어떤 쎈스 있는 답변을 '카톡' 하고 우는 비둘기에 실어 보내야 썸남의 광대를 한껏 밀어 올릴 수 있을지 고민한다. 비둘기에 내 마음을 매단 것도 아닌데 내 마음까지 가을바람을 타고 두둥실 떠올랐다.
썸남과 함께 있을 땐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싹 달라졌다. 모든 음이 한음씩 도로록 올라가고 목소리에 바람 소리가 잔뜩 섞였다. 원래 웃을 땐 단전에서 끌어올린 육성을 사자후처럼 내뿜으며 상체를 뒤로 젖혔다 앞으로 굽혔다를 반복하며 물개 박수를 치는데 썸남 앞에선 입을 살짝 가리고 좀비처럼 목을 옆으로 꺾으며 머리카락을 촤르르 늘어뜨리고 목선을 드러냈다.
목선은 드러내도 마음은 전부 드러낼 수 없는 시절. 마음속엔 물음표가 가득하지만 마음속에만 걸어두고 카톡 비둘기가 실어오는 답변을 퍼즐 조각처럼 맞추며 상대방을 알아가고 있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이 계절처럼 딱 적당하게 기분 좋은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래서 아직은 발을 스을쩍 빼기도 쉬운 온도. 가을 재킷을 꺼내볼까 하며 미적거리다 보면 금세 롱패딩의 계절이 오고 마는 것처럼 썸도 길어지면 차갑게 식어버리기 쉽다. 썸남이었던 사람이 추운 겨울날의 가을재킷처럼 기억 속 어딘가로 처박혀 나프탈렌 향이 나는 남남이 되는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코끝이 찡하고 머리가 띵하다. 가을이 오거나 썸이 생기면 자꾸만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나는 것은 이 아름다운 것들이 태생적으로 유효기간이 짧다는 것을 아는 탓이리라.
"고마웠어요. 좋은 분 만나길 바라요." 하며 마지막 인사를 건네게 된다고 할지라도 사전의 정의대로 아직 연인관계도 아니었던 지라 실연의 아픔을 느끼기에도 약간 머쓱한 관계. 애매한 감정이라 하더라도 지나간 자리에는 생채기가 남겠지만, 전어회 1kg 사다가 두둑이 올려 한 쌈 싸 먹고 털어낼 수 있는 짬바가 있으니 조바심 나는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기로 했다.
올 가을은 썸과 가을을 동시에 타느라 마음이 위아래로 일렁거린다. 가을의 끝은 분명 겨울일 텐데 이 썸의 끝은 무엇일까. 솔로천국 커플지옥을 외치는 고독하고 긴 겨울이 올까. 캐럴이 울려 퍼지는 거리를 함께 걸으며 비좁은 호주머니 한 짝에 두 손을 욱여넣고도 넉넉하게 웃는 따뜻한 겨울이 올까.
윈터 이즈 커밍
겨울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