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에서 직업과 나이를 빼면 무엇이 남을까

남해 한 달 살기 첫날

by 장유록


2020년 10월 12일 월요일 남해로 떠나는 날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남해로 가는 오후 한 시 출발 버스에 올랐다. 남부터미널에 온 것도 오랜만인데 태어나서 '남해'라는 곳은 내 기억이 맞다면 이번이 처음이다. 동해, 서해처럼 남해도 남쪽 바다인 줄로만 알았는데 '남해군'이라는 행정구역이 경상남도 남서부에 있더라. 인구는 2020년 10월 기준 4만 2,893명. (하긴 '동해시'도 있지 참.)




고속버스의 혼자 앉는 열, 중간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짐을 풀며 속으로 '여기에 탄 사람들 중 누군가는 나처럼 남해에 한 달 살기를 하러 가는 사람이지 않을까?' 하고 앞쪽 사람들의 뒤통수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뒤통수만 봐서는 앞으로 나와 한 달간 동고동락할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다 알게 되겠지.' 하며 의자를 뒤로 젖혀 창밖을 바라보았다. 고속도로에 진입하기 전까지라도 인구 천만 도시, 서울이 펼쳐놓는 익숙한 풍경을 바라보기로 했다. 도로마다 가득 찬 자동차들, 횡단보도를 이리저리 건너는 사람들. 그리고 찬장에 그릇을 쌓아 올려놓는 것도 힘든 내가 보았을 때는 같은 인간이 지었다고는 도저히 믿기 힘든 고층 건물들이 아직도 생경스러웠다.





그래, 이제 몇 시간만 지나면 바다를 보겠구나. 가까운 서해바다만 가도 어느 순간부터 차창밖으로 바다가 보이면 '바다다! 바다!" 하면서 터져 나오는 함성은 숨길 수가 없는데, 남해바다라니. 전생에 바다 생명체였던 것이 틀림없다. 바다가 이렇게 좋은 걸 보면.






내가 아름다운 남해바다를 보러 떠날 수 있었던 이유는 '한 달 살러'라는 남해군 기반의 한 단체에서 한 달 동안 남해를 '경험할' 도시 청년들을 모집했기 때문이다. 남해군에서 시도하고 있는 인구유입정책의 일환인 것 같다. 남해군은 나날이 줄어드는 인구수와 도시의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청년 유입 정책을 펼치고 있는 지방 소도시 중 하나이다.




사실 서울을 떠나 연고가 없는 다른 지역에서 살고 싶어도 일자리가 그곳에 있지 않는 한 선뜻 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이들에게 '아, 남해에는 그래도 내가 한 달 살아봤고, 아는 사람도 있어.' 하는 마음이 들도록 하는 것이 이 '한 달 살러'라는 단체의 목표라고 한다.




인스타그램으로 '남해 한 달 살기'를 할 사람을 모집하는 광고를 봤고, 서류도 화상면접도 운 좋게 통과했다.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여행도 제대로 못했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온라인으로도 할 수 있었으므로 여행 겸 휴식 겸 다녀오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나야말로 계속 서울에 살 생각은 아니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도 한번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리고 남해바다라니, 바다는 가야 하잖아.







고속버스에서 4시간 30분. 영화 두 편 정도 볼 시간이 지나니, 세상은 완전 딴판이었다.





고속버스가 남해대교를 건너 남해군으로 들어서는 순간. 눈 앞에 무슨 필터를 씌워놓은 것이 아닌가 싶은 풍경이 일순간 펼쳐졌다.






무슨 이렇게 로맨틱한 시골이
다 있지?




이것이 남해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한시에 출발했으니, 여섯 시가 다되어 가는 시간이었고,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남해에는 지는 해가 늘어놓는 붉은빛을 가로막는 높은 건물이 없어 바다는 물론 거리도 온통 수줍게 물들어 있었다.




'잘 왔어. 남해는 처음이지?'




눈부신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떠나오길 잘했다 싶었다.





남해터미널에 내리니 나처럼 얼굴이 들뜬 사람들이 몇 보였다. 어색하게 인사를 건네며 혹시 한 달 살기를 하러 왔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마스크 너머 얼굴이 안도하며 웃고 있었다. 우리는 '한 달 살러' 측에서 준 찾아오는 길에 대한 정보를 외울 듯이 되뇌며 숙소 쪽으로 가는 둔촌행 버스에 올랐다.



남해터미널에서도 한참을 달려 숙소가 있는 화천마을로 향했다. 밤이 내려 노을 필터는 이미 다 거쳤고, 아무것도 없는 컴컴한 시골이 펼쳐졌다. 거리엔 가로등도 없고 사람도 없고 끝없는 논두렁뿐이었다. 진짜 시골이구나. 얼마 만에 조용한 거리인가 싶기도 했다. 잠깐 멍을 때리다 보니 "여기서 내려요!" 하는 기사님의 호령 소리가 들려왔다. 탈 때 내릴 곳을 미리 기사님께 말씀드린 덕분에 이 낯선 시골에서 길을 잃지 않았다. 우리들은 도시 사람 특유의 민첩함을 자랑하며 후다닥 내렸다. 참고로 남해에선 버스에서 내릴 때 탔던 문으로 다시 내린다. 내리는 문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내릴 때 하차태그도 필요 없다. 환승이 안 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가 가는 곳은 환승은 하지 않아도 되는 곳. 버스에서 캐리어를 꺼내자 버스는 떠나갔다. 우리는 캐리어와 덩그러니 남아 논두렁에 웬 수련원 같은 건물이 우뚝 솟아 있는 것을 보았다.



"저기.. 겠죠?"

"..."

"그렇겠.. 죠?"



우리는 눈길을 주고받으며 캐리어를 끌고 논두렁 길을 지나 건물로 들어갔다. 남해 살러 대표님께서 우리를 맞아주셨다. 간단한 건물 안내를 도와주시며 한 가지 규칙이 있으니 꼭 지켜달라고 하셨다. 그 규칙은 바로 이곳에서는 앞으로 한 달 동안 나이와 직업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밖으로 나가보니 첫날부터 바비큐 파티가 준비되어 있었다. 건물 앞에서 바비큐를 해 먹을 수 있다니 정말 오길 잘했다 싶었다. 조용했던 마을이 우리 건물이 내뿜는 불빛과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생기가 돌았다.




‘형’, ‘오빠’, ‘언니’, 누나’, ‘동생’ 이 아닌
‘누구누구 씨’로 서로를 부르자, '무슨 일을 했고 무슨 일을 해요'라는 설명이 사라지자, 다양한 역할 기대로부터 자유로워져서인지 모두가 대번에 친구로 느껴졌다.




건물 앞에서 바비큐를 구워 먹으며 우리는 서로의 직업도 나이도 모르지만, 무얼 좋아하고 요즘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 이야기하며 웃었다.








나를 포함해 열네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서울에서 온 사람도 다른 도시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 나이도 직업도 모르는 사람들과 앞으로 한 달. 무슨 관찰 예능 프로그램 속 출연자가 된 것만 같았다. 나는 어떤 캐릭터가 되어 이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나갈까? 이런저런 생각에 뒤척이다 이내 뜨뜻한 바닥에 녹아 잠들어버렸다.






-남해 한 달 살기 시리즈는 매주 토요일 업로드됩니다 :) -







서울에서 남해로 오는 버스 안, 남해대교를 건너며
이런 로맨틱 필터를 씌운 동네 같으니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