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람들의 뇌에 있는 것

남해 한 달 살기 3일 차

by 장유록

남해에서 한 달 동안 지내고 돌아온 것을 아는 서울 친구들은 "남해에 가면 뭐 먹어야 해? 뭐가 맛있어?"하고 물어보곤 했다. 그러면 나는


"음.. 유자도 유명하고, 고사리도 유명하고 죽방멸치랑.. 근데 무엇보다 '쏙'을 잡아서 먹어봐야 해."


라고 대답했다.





돌아오는 답은 늘 같았다.




"쏙?"

"잡아???"




이제부터 내가 할 이야기는 이 '쏙'을 잡으며 건져 올린 이야기이다.






지내는 숙소에서 3분 정도만 걸어 나가면 남해바다를 볼 수 있었다. 이번에 안 사실인데 남해바다도 서해처럼 조수간만의 차가 컸다. 아침엔 가득 차 있던 바다가 오후엔 저만치 밀려나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길가에는 '갯벌체험'이라는 팻말이 자주 보였다.




10월 14일.

남해에서 지낸 지 3일째 되는 날 우리의 공식 일정은 이 '갯벌체험'이었다. 갯벌체험은 처음이었지만 티브이 예능프로그램에서 보던 것처럼 방수가 되는 멜빵바지를 입고 장화를 신은 채 발을 푹푹 빠져가며 바지락을 캐겠거니 생각했다.





체험 장소에 멜빵바지는 없었지만, 예상했던 대로 장화는 있었다. 장화로 갈아 신자 사장님께서는 가느다란 붓 한 필씩을 나누어 주셨다.




'잠깐만, 붓???'





정말 서예 할 때나 쓸 것 같은 붓을 하나씩 나눠주셨고, 거기다 된장을 한 그릇 퍼주셨다. 그리고 거뭇하게 그을린 아저씨와 함께 갯벌로 나갔다. 우리는 오늘 '쏙'을 잡을 것이라고 하셨다.










아저씨께서는 한 손엔 된장 한 대접, 다른 한 손엔 붓 한필을 들고 갯벌에 쭈그리고 앉으셨다. 우리는 그런 아저씨를 신기한 듯 쳐다보며 길거리 공연을 구경하듯 둥그렇게 둘러서 섰다. 쏙은 갯가재 같이 생긴 갑각류의 일종이다. 갯벌에 사는 작은 가재로 남해와 서해에서 서식하고 있다. 아저씨는 작은 구멍 속에 살고 있는 이 '쏙'을 된장 푼 물로 유인해 붓을 집어넣고 살살 달래 잡아 올리는 방법을 보여주셨다.





푸른 하늘, 갯벌, 검게 그을린 아저씨와 된장, 그리고 붓. 모든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이 처음 보는 광경이 이 분에게는 '삶'이었다. 아저씨가 마치 책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글만 읽던 주인공에게 삶을 보여주던 '조르바' 같았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훨씬 더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나는 학교가 거푸집처럼 같은 모양의 삶을 찍어내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모양의 삶을 보여주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삶의 모습'이 다양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이분법적 사고에 빠지지 않을 확률이 높으니까. 같은 시험을 치고 같은 것을 바라다보면 시야가 좁아지기 쉬우니까 우리는 자주 고개를 들어서 다른 곳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떠나야 한다.




우리들은 아저씨의 시범을 어설프게 흉내 내며 쏙을 잡기 시작했다. 초짜 어부들의 어색한 붓놀림을 눈치챈 건지 쏙은 쉽사리 나와주지 않았다. 몇 번을 실패하자 힘을 빼고 붓을 구멍 속으로 스르르 놓아보았다. 내 생각보다 더 깊이 붓이 빨려 들어갔다. 그저 붓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만 손을 대고 기다렸다. 붓이 톡톡하고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쏙이 붓을 밀어 올리는 힘을 느끼면서 붓을 살살 위로 당기기만 했다. 드디어 집게다리 하나가 구멍 밖으로 나왔고, 조금 과장하여 그때부터 나의 쏙 잡이 신화가 시작되었다. 연거푸 여덟 마리를 잡아 올렸다. 열다섯 명이서 잡은 전체 마리수의 절반 정도를 내가 잡았으니, 꽤 많이 잡은 편이었다. 힘을 빼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몸으로 배웠다.








한 명당 한 마리 정도 돌아갈 정도로 쏙을 잡고 돌아오니 체험장 아주머니께서 껍질까지 통째로 퇴김 반죽에 묻혀 기름에 튀겨주셨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회색이던 쏙이 열에 익어 발갛게 변해가는 과정을 넋을 놓고 지켜보았다. 튀기니 가재보다는 새우랑 비슷해 보였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잡은 나를 예우하며 먼저 먹어보라고 건넸다. 못 이기는 척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순간 고소한 기름내가 입안에 탁 퍼졌다. 새우 속살의 쫄깃한 식감이 매력인 새우튀김과는 달리 쏙 튀김은 쏙 껍질의 바삭한 식감이 좋았다. 새우깡 맛이랑 비슷했지만 훨씬 맛있었다.




이 쏙 튀김이 남해에서 먹은 어떤 음식보다 기억에 남는다. 맛있는 음식이야 많이 먹었지만, 쏙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사람들이 직접 잡아 그 자리에서 튀겨먹은 경험에는 어떤 맛있는 음식도 당할 수가 없다. 너무나 강력한 '스토리'가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뇌과학 박사 장동선 님은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십오 분) 강연에서 행복한 사람의 뇌에는 '행복한 스토리'가 있다고 했다. 행복한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이 행복할 수 있는 능력인 것이다. 마음을 내어 자주 떠나고, 다가오는 매일을 새롭게 바라보며 즐거운 에피소드를 만들면 행복은 자연스레 따라온다.




우리는 남해안 갯벌에서 '행복한 이야기'를 잡아 올렸다. 붓으로 살살 꾀어내어 그려낸 행복에는 달큼한 기름내가 섞여있다. 앞으로 가재 그 비슷한 것만 보아도 그때를 떠올리며 웃을 것이다.





내일은 새우깡에 시원한 맥주를 한 캔 마셔야겠다.




쏙튀김. 칠리소스에 찍어먹으면 얼마나 맛있게요





P.S. 쏙 잡는 법


뻘을 10센티 정도 깊이로 넓게 파면 작은 구멍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저씨 말씀에 따르면 쏙은 한 구멍에 한 마리씩만 살고 있다. (우리나라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30퍼센트라는데, 쏙도 1인 가구였다.) 구멍에 된장을 푼 물을 뿌리고 잠시 기다렸다가 붓을 사알짝 넣는다. 혼밥이 편해서 침입자가 들어오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쏙은 붓을 밀어내며 구멍 밖으로 점점 올라온다. 구멍 밖으로 쏙의 집게발이 보이면 붓으로 쏙의 눈을 가린 채로 다리를 한쪽씩 잡아 올린다. 눈을 가리지 않으면 집게발을 끊고 도망가니까 주의해야 한다. 역시 두눈 잘 뜨고 손절을 잘해야 하나 보다. 허가를 받지 않은 곳에서의 채집은 금지되어 있다.


늘 그렇듯 일단 삽질부터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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