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한 달 살기 4일 차 명랑운동회
내가 정하지도 않은 '우리 팀' 이 이기길 바라며 '우리 팀 이겨라!'를 목청껏 외치는 날. 어린 시절 쉽사리 감정이입을 하지 못했던 날이 바로 이 운동회였다.
'왜 편을 갈라서 싸우는 걸까? 같이 놀면 안 되는 걸까?'
꼬마 평화주의자는 내가 이기면 상대가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싫었다. 운동을 잘하는 아이들은 은근히 우상화되고, 그 와중에 소외되는 아이들이 생기는 것도 불편했다. 자기 속도로 뛰면 되지 왜 남보다 빨리 뛰어야 하는 걸까. 우리가 만들지도 않은 규칙에 따라 승패가 나뉘는 게임 안에서 이겼다고 기뻐하고 졌다고 좌절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꼬마 불편러도 어느 순간 경기에 몰입하여 목이 터져라 우리 팀을 응원하긴 했다. 각본 없이는 볼 수 없는 이 드라마틱한 현장에서 나만 혼자 간디처럼 앉아있기엔 나는 너무 어렸고, 운동회는 재미있었으니까.
성인이 되고 나서는 의식적으로 스포츠 경기나 컴퓨터 게임에 몰입하지 않았다. 사람들을 '서바이벌' 경쟁 속에 몰아넣는 티브이 프로그램도 즐기지 않았다. '픽 미 픽 미'를 외치며 피라미드 제일 꼭대기에 오르라고 부추기는 사회가 어딘가 잘못된 것 같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피로했다.
그런데 내가 남해에 와서 '운동회'라는 것을 해야 했다.
'아.. 여기까지 와서 운동회를?'
이것이 운동회를 앞둔 아침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한숨을 쉬며 올려다본 남해의 하늘은 어린 시절 운동회 날 봤던 가을 하늘처럼 파아랬다.
10월 15일.
남해에서 네 번째 날은 '운동회'를 하는 날이었다. ('남해 살러' 단체의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의 일정 중 하나였다.)
각자 먹을 김밥을 싸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각자 취향껏 자기 김밥을 쌌다. 걔 중엔 태어나 처음으로 김밥을 싸 보는 이도 있었다. 밥을 너무 많이 넣어서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김밥, 이미 옆구리가 다 터진 김밥, 싸자마자 먹어버려서 사라지는 김밥 때문에 웃음도 터져 나왔다. 누군가는 능숙하고 누군가는 미숙해서 더 즐거운 시간이었다.
김밥을 만든 후엔 해보고 싶은 게임을 포스트잇에 쓰기 시작했다. 어디서 들어보지도 못한 게임이 종이에 착착 적혔다. 다들 타고난 운동신경이나 어떤 능력에 따라 성패가 갈라지지 않는 게임을 쓰려고 노력했다. 가령 탁구채가 아닌 다른 것으로 탁구를 치는 '이색 탁구' 같은? (탁구를 잘 치는 사람은 숟가락으로 쳐도 잘 치긴 하더라만)
주최 측에서 미리 경기를 정해 놓지 않아서 좋았다. 특히 운동회의 단골 소재인 이어달리기 같은 경주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참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 경기는 참여하고 싶지도 않고 보기만 해도 지친다. 누구라도 넘어져봐... 그런 드라마는 안 보고 싶다.
미미하게나마 누군가의 운동신경이 승리에 도움이 되기도 했고, 누군가는 실수를 해서 미안해하기도 했다. 나 역시 누군가가 이기면 누군가는 지고 마는 게임의 본질 때문에 짜릿함과 희열 같은 여러 종류의 즐거움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일 것이다.
그래도 이 남해 운동회는 어떤 능력이 다른 사람보다 모자란다는 열등감 같은 것을 느끼게 하는 폭력적인 운동회는 아니었다. 함께 즐거우려고 처음부터 함께 고민하며 만들어 나갔던 운동회였다.
이후로 나는 남해에서 여러 가지 게임을 그저 마음 편하게 즐겼다. 다들 순간을 열심히 즐기러 온 사람들이라 이기고 지는 것에 큰 관심이 없었다. 지더라도 "괜찮아, 괜찮아, 고개 들어."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었기에 여러 번 지더라도 재미있었고, 모든 순간이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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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회에서 이겼는데 별 게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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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으로 싸 두었던 김밥을 먹을 때, '남해 살러' 대표님께서 바가지에 물을 담고 그 위에 풀잎을 하나 띄워서 갖고 오셨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졌다. 이런 역사 깊은 배려와 유머가 있으니 앞으로 누구도 마음 다치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누구의 마음도 체하지 않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