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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유록 Apr 04. 2022

음악은 이미 시작되었어

춤추시겠습니까 휴먼?


 남해에 내려온 지 일주일째. 오랜만에 참 잘 잤다 싶게 푹 잤다. 한 달 살기 때 만났던 남해 친구의 게스트하우스의 방 하나를 세를 내어 친구들과 함께 살고 있다. 첫 달 월세로는 방에 필요한 것들을 사라는 집주인 친구의 배려로 산 윤슬 패브릭 포스터가 햇살을 받아 넘실거린다. 나와 매트리쓰 사이에 조개처럼 숨은 이불을 끄집어 올려 얼굴을 비볐다. 살짝 거슬거리는 이불 감촉에 몸이 녹았다. 평소보다 더 밝은 방안, 몸을 이리저리 뒤틀며 밤사이에 굳은 몸을 깨웠다. 팔과 다리를 반대방향으로 틀어 기어이 두드득 소리가 날 때까지 비틀어 짰다. 이 맛이지. 가려운 정수리를 긁으며 욕실로 향했다. 살짝 뜨겁다 싶은 물 온도에 몸을 잠시 녹였다. 머릿속까지 촉촉하게 젖어드는 물줄기를 하나하나 느껴보았다. 꼼꼼하게 샴푸칠을 하고 정수리 부분을 중심으로 시원하게 샴푸칠을 하고는 말끔히 헹궈냈다. 이렇게 상쾌한 기분은 머리를 감지 않는 샤워에서는 느낄 수 없다.





이탈리아식 커피포트로 커피를 만들고 계란을 삶은  책을 하나 집어 거실에 놓인 캠핑의자에 앉았다. 친구네 고양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무릎에 올라와 갸르릉 거렸다. 이것은 영화 속일까. 나는 지금 무릉도원에 와있는 것일까. 이곳은 삶 너머인가? 이곳은 천국? 내가  살긴 했구나. 오만가지 헛소리가 가득한 머릿속이 한차례 스탠딩 코미디를 마치자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다 글을 썼다. 오전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인데 일을    마음대로  수가 없어서 가장 아쉬웠다. 퇴근  글을 써보려고 마음을 잡아도 바닥에 누워서 멍하게 과자를 아삭아삭 씹으며 넷플릭스를 보기 일쑤였다. 에너지가 남지 않았다. 어쩌면 퇴사를 결정한 가장  이유  하나는 오전 시간을 온전히 쓰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남해의 오전은 축복이었다. 가장 힘들어하던 자동차 소음이 없고, 새소리만 가득했다.  블레스 남해..




지난 회사에 다닐 때는 날씨만 좋으면 뛰쳐나가고 싶었고, 흐린 날은 뭐에다가 술 한잔 걸치며 동료들과 놀고 싶었다. 날씨에 따라 하루가 변하니 컨디션도 오락가락했다. 기분은 외부요인에 의해 늘 들쑥날쑥 했다. 스스로 빛나는 즐거운 삶을 살고 싶다면서 혼자선 언제나 외롭고 심심했다. 내 마음은 이렇게 언제나 널뛰기 중인데 동료 중엔 맑으나 흐리나 항상 즐거워 보이는 친구가 있었다. 미국에서 온 원어민 교사였는데 그 친구가 복도에 나타나기만 하면 그 친구 뒤에 덧댄 풍경이 밝게 빛나는 희한한 사람이었다. 대체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해 그 친구를 유심히 관찰했는데 1년 간 지켜본 결과 그 친구의 하루는 언제나 같았다. 근무, 근력운동 2시간, 한국어 공부, 주말엔 여자 친구와 데이트하며 같이 한국어 공부. 내가 모르는 비밀이 있는 것일까. 하루는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것의 괴로움을 참지 못하고 그 친구를 붙잡아 취조하기 시작했다.




"슈퍼맨(그 친구 이름이다), 넌 어떻게 평일에 한국어 공부, 운동 딱 이 두 가지만 매일 할 수 있어? 날씨가 좋으면 갑자기 여자 친구를 보러 가고 싶거나 하지 않아? 기분이 우울하면 술을 마시고 싶거나...(난 그런데...)"




슈퍼맨은 특유의 싱긋한 미소를 날리며 순순히 불었다. (웃지 마 바보야 설레게)





"아니,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아. 난 삶이 끝날 때 만약 지금까지 산 삶을 다시 한번 살아볼래?라고 저 위에 누군가가 물어보면 yes!라고 외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어. 중국에서 영어를 가르칠 때는 여행도 다니고 사람들하고 어울려 놀아도 봤는데, 나는 그 삶은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어. 스스로 어렵다고 생각하는 언어 공부와 운동, 이 두 가지를 매일 해내고 더 나은 버전의 내가 되는 느낌을 느끼는 지금 내 삶이 좋아. 어릴 땐 비디오 게임만 하고 허벅지가 내 팔뚝보다 가는 허약체질이었어. 그러다 대학 때 독일로 교환학생을 갔는데 언어를 배우면서 여행을 하는 것이 정말 즐거웠어. 그리고 엄청난 실연을 겪고 운동에 빠졌지.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어. 안으로나 밖으로나 모두. 매일매일 변하는 내가 마음에 들어. 그래서 난 이 삶을 택했고 정말 즐거워. 이렇게 멋진 삶을 살다 보니 너처럼 멋진 친구도 만났잖아? 인생은 정말 즐거워."





 이런 자기 계발서에서 툭 튀어나온 것 같은 스위트하고 멋진 자식. 그는 언제나 적극적이고 사람들에게 친절했다. 오늘 기분은 어떠냐며 늘 달디 단 관심을 던져주었다. 나는 뭔갈 훔쳐먹다 걸린 사람처럼 놀라 내 기분이 어떤지 더듬더듬 찾아보곤 했다. 나도 알아주지 않는 내 기분을 물어봐주던 친구다. 일하면서 일어나는 자잘한 갈등 같은 모든 어둠은 그 친구 앞에선 자취를 감췄고 어떤 문제도 되지 않았다. 빛은 언제나 어둠을 이기니까. 단단하고 즐거워 보였다. 예전엔 가식이 아닌가 싶었는데 남해로 떠나온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그 친구는 정말 즐거웠구나. 내가 지금 그렇듯이.



만약 다음 생을 다시 살지 저 위에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오전엔 아침시간을 즐기며 글을 쓸 수 있을까요? 하고 묻고 싶다. 드디어 행여나 '이 삶을 똑같이 다시 하시겠나 휴먼?'하고 게임오버 창이 뜨면 yyyyy를 갈겨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니 사람들에게 친절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글쓰기가 너무 즐거우니 굳이 밖에 나가서 놀 필요도 없다. 술을 마셔가며 내 컨디션을 망칠 이유도 없다. (그래도 가끔 술은 마신다. 찡끗)





하루는 슈퍼맨과 과식 다람쥐(또 다른 원어민 교사 이름이다)랑 저녁을 먹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삶과 죽음에 대해서 다소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과식 다람쥐는 아이비리그를 나온 예쁘고 똑똑한 수재 중에 수재인데 어릴 때부터 언제나 잘해야 한다는 압박에 힘들었다고 했다. 과식 다람쥐의 어깨에 부담감이 산처럼 쌓여 있는지는 꿈에도 몰랐다. 과식 다람쥐도 슈퍼맨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즐겁게 지낼 수 있냐고. 슈퍼맨은 말했다.




"내 뜻은 아니었지만, 이미 삶이라는 음악은 시작되었잖아. 그래서 나는 신나게 춤을 추기로 결심했어. 정말 신나게. 내가 앉아서 이 음악은 싫다고 바꿔달라고 음악 듣기 싫다고 해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잖아. 그리고 다른 사람들 눈에 멋진 춤을 출 필요도 없고. 나는 진짜 멋지게 나만의 춤을 출거야."





짜식 돌이켜 생각해봐도 진짜 멋지네. 음악은 시작되었지. 맞아. 나도 모르는 사이 의식을 얻었고, 내가 짓지 않은 이름으로 불리며 내가 택하지 않은 가족과 함께 가장 민감한 시기를 보내고, 그렇게 살아온 날을 디딤돌 삼아 어른이 되지. 이 음악이 참 싫을 때가 있었는데, 이제 얼추 박자도 맞추고 추임새도 넣어보기도 한다. 남해에 와서는 이 음악에 맞춰서 꽤 즐거운 나만의 춤을 추고 있다. 남이 그 춤 그거 뭐냐고 뭐라고 하더라도 픽 하고 웃고 넘기고 말 정도로 이 춤을 추는 것이 즐겁다.



산책하기 좋은 날씨였다. 잎들은 눈부시게 흔들리고 아무것도 아닌 채로 희미하게 매달려 있었다.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인가. 나는 지금 순간의 안쪽에 있는 것인가.
이제니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중




너무 아름다운 풍경을 봤는데도 순간 우울해질 때가 있었다. 기간제 교사 생활을 그만두고 스스로가 못나보여 무작정 떠났던 첫 유럽 여행지에서였다. 눈물 날 정도로 아름다운 로마의 노을을 보면서도 기쁘지 않았다. 이 순간은 분명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이 아름다운데 쿵하고 마음이 내려앉는 것이다. 그것은 불안도 아니었고, 외로움도 아니었다. 한참을 이유를 찾았는데, 그것은 내가 그 순간의 안쪽이 아닌 바깥쪽에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타자로서 대상을 바라보는 것은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공허하고 그 속에 거하면 나뭇가지에 매달린 나뭇가지처럼 신비롭고 충만하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때 나는 여행자도 아닌 도망자였고, 그곳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다시 원치 않는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도피자일 뿐이었다. 완전히 아름다운 그 창조물 사이로 당당히 들어가 그 안쪽에서 존재하지 못했다.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 헤아릴 수 없었다. 나는 이 음악이 싫다고 주저앉아 다른 사람들이 멋지게 춤을 추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늘 시간에 쫓겨서 시간만 있으면 하고 싶은 것을 해야지, 해야지 하던 내가 이제는 시간을 즐기고 있다. 삶이라는 음악에 조금씩 어깨춤을 추고 있다. 청춘에서 한 칸씩 두 칸씩 매일 밀려나지만 이제 내 시간의 가치는 내 청춘의 그것보다 높다. 주저앉아서 일으켜달라고 불평만 하던 내가 그것이 무엇이든 선택을 하고 떠나오고 모든 경험을 글로 우려내고 있다. 당장 내가 꿈꾸는 모든 일을 할 수는 없겠지만, 이제 모든 순간마다 그 순간 안에 존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꿈꾸는 모든 것을 하면 마법이 일어난다고 했던 괴테의 마법이 내게도 일어난다면, 일을 그만두고 남해로 내려온 대담함 속에서 천재성과 힘이 솟아날 수도 있겠지. 그런 것이 내 속에 없다고 할지라도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 몸을 비틀고 옥상에 올라가 시원한 공기를 마시고 염소랑 인사를 나누고 계란을 삶아 먹고 글을 쓰겠지. 좋아하는 바다도 실컷 보고. 날이 맑으나 흐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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