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내가 치마를 입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남해에서 같이 살고 있는 메리골드(하우스메이트 2)는 '그것이 알고 싶다'나 '궁금한 이야기Y' 같은 탐사물을 자주 시청한다. 반면에 나는 사회의 그늘진 곳을 파헤쳐 밝히는 이런 프로그램을 보지 않았다. 감정이입을 심하게 하는 편이라 피해자들의 고통과 슬픔에 금세 함께 젖어버리는데 부정적인 감정을 회피하려고 했던 나의 성향 때문에 아예 보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부정적인 감정도 회피하거나 억누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고, 같이 볼 사람까지 있으니 어두운 사회의 단면도 용기를 내어 마주하기로 했다. 그래서 가끔씩 메리골드 옆에서 고양이를 무릎에 올리고(담력을 키우기 위해선 고양이의 도움까지 필요하다) 탐사극을 시청한다.
함께 살아도 다들 바쁜 친구들이라 자주 시간을 같이 보내진 못하지만, 그날은 어쩐 일로 함께 모여 '알. 쓸. 범. 잡(알아두면 쓸데 있는 범죄 잡학사전)'이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범죄'로부터 당신의 일상을 지켜줄'이라는 문구가 프로그램 설명 앞에 붙어 있었다. 가수, 소설가, 과학자, 범죄학 박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범죄에 대해서 다각도로 분석하는 프로그램인 것 같았는데 '그루밍 성범죄'가 그날의 주제였다. '그루밍 성범죄'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호감을 얻거나 돈독한 관계를 만드는 등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폭력을 가하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네이버 지식백과) 약자를 대상으로 심리적으로 호감을 산 뒤 성적으로 학대하거나 착취하는 성범죄를 가리킨다고. 그래서 주로 어린아이들이 피해 대상인 경우가 많았다. 여러 범죄 사례가 이어지다 피해자분들과 그 가족분들이 사건 후 겪는 심리적인 불안 증상, 즉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는 인터뷰가 나오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버렸다. 갑자기 눈물이 봇물처럼 터져 나와 식탁 의자에 무심히 걸쳐져 있던 수건을 집어 들고는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다.
내가 감정이입을 잘하는 것을 아는 친구들은 내가 피해자들의 인터뷰를 보고 마음이 아파서 우는 것으로 생각하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운 것은 그분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 때문이기도 했다.
가족들에게 깊은 상처를 준 것 같아 죄스런 마음을 오래 품었었다. 마치 자기 알인 줄 알고 돌덩이를 품고 있는 바보 같은 암탉처럼, 품지 않아도 될 것을 너무 오랫동안 품었다. 계속 품고 있으면 무엇이든 나올 줄 알고. 탁 꺼내놓고 보았더라면 이것은 품지 않아도 되는 것이란 것을 눈치챘을 텐데 너무 오래 끌어안고 있었던 것이다. 꺼내놓기가 너무 무서워서. 그 당시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중요한 것도 중요하지 않은 것도 모르겠고, 다 부질없게만 느껴졌다. 잘못은 내가 한 것이 아닌데, 죗값은 내가 받고 있던 시절이었다.
열여덟 살이었다. 내 친구가 좋아하는 선배이자, 당시 교제하던 남자 친구의 절친한 친구가 나를 희롱했을 때가.
당시 친구가 있어 더 험한 일은 막을 수 있었다. 친구는 휴대폰을 집어던지며 화를 냈고, 우리는 경찰서로 갔다. 죗값을 받게 해야 하니까. 그는 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사과로 용서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개인 간의 사과로 끝날 문제도 아니었다. 다시는 이런 짓을 못하게 죗값을 치르게 해줘야 했다.
그러나 경찰서에서 "네가 치마를 입어서 그렇지."라고 미친 소리를 하는 경찰을 만났다. "같이 있던 네 친구는 바지를 입었고, 넌 치마를 입었으니 네가 당한 거"라고 했다. 어이가 없고 치욕스러웠던 나는 중학생 시절 성교육 시간에 체육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말씀이 퍼뜩 떠올라 그 경찰을 향해 소리쳤다. (울먹거린 것에 가깝다.)
"누군가가 백화점에 있는 물건을 깼다면 그것이 물건의 잘못입니까, 그 사람의 잘못입니까?"
이것이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들로부터 배운 것이었다. 어린 나도 알고 있었다. 치마를 입었든 바지를 입었든 나를 허락 없이 더듬은 사람이 잘못한 것이지,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맹랑하다는 표정의 경찰에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했다. 지금이야 당시 재수 없게 의식이 한참 떨어지는 후진 경찰을 만난 거고 모든 경찰분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당시는 민중의 지팡이가 어떻게 저럴 수 있냐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 정도로 분노했었다. 내 친구는 '얘, 공부 잘하는 애'라며 나를 거들었다. 하지만 어떤 1등이 와도 청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부모님 연락처."
경찰이 말했다.
부모님들이 오셨고, 그는 훈방 조치되었다.
벌써 20년 전 이야기이니, 성범죄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 대처도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당시는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혹시 행실을 잘못해서 그런 거 아니냐고 손가락질을 받는다고 해도 그 손가락이 문제이지 나의 문제가 아닌데도 말이다. 이제 당시 우리 엄마의 나이쯤이 되어 객관적으로 전후 사정을 돌아보니, 당시에 나와 우리 부모님은 어떤 트라우마 치료도 받지 못했다. 그런 것을 해야 하는 줄도 몰랐고, 그저 잊고 싶은 일로 여기며 잊은 듯 살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금쪽 상담소에서 오은영 박사님은 말씀하셨다. 감정을 회피하는 것은 감정을 다루는 방법이 아니라고.
부모님께서는 그 일을 말하는 것 자체가 두려우셨을 것이다. 부모님 두 분 다 너무 젊으셨고, 예상치도 못하게 그 일이 벌어졌다. 그래도 내가 아는 것들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마저 안고 살아야 했던 시간들은 생각보다 더 괴로웠다.
당시 내 주변에 딱 한 명만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얼마나 놀랐냐며, 네 잘못이 아니라고, 그 애가 또다시 그런 행동을 하지 않도록 경찰서로 데려가 죗값을 치르게 하려고 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고 말해주는 딱 한 명의 어른이. 지지해주고 공감해주는 딱 한 명의 어른. 그 딱 한 명의 어른이 있었더라면 좀 더 빨리 마음에 품었던 돌멩이를 내려놓지 않았을까.
이제라도 어른이 된 내가 열여덟 살이었던 내게 말을 건넸다. 괜찮다고. 아주 잘했다고. 아주 속이 다 시원하다고.
우리는 거실 벽 한쪽에 빔을 쏴서 영화를 보거나 티브이를 본다. 눈물을 닦고 벽을 바라보니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범죄 피해자와 가족들의 인터뷰가 계속 흐르고 있다. 이제는 트라우마 치료라는 말이 티브이에 나올 정도로 인식이 개선되어 다행이란 생각이 지나간다. 그들의 얼굴은 희뿌옇게 모자이크 처리돼 알아볼 수도 없고, 음성도 변조되었지만 슬픔의 깊이는 가려지지 않았다. 신원을 드러내지 않도록 한 것은 피해자 가족분들의 요청이었을 것이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피해자는 얼굴도 목소리도 가린다. 잘못한 것이 없는데 말이다. 2차 피해를 막기 위해서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렇게나 입방아를 찧을지도 모를 사람들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이제 되려 피해자들에게 주홍글씨가 새겨지는 사회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나 역시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가십거리가 되고 싶지도 않고, 쓸데없는 동정을 받을까 무서웠다. 하지만 이십 년 도 지난 지금도 이 일을 꺼내서 문제의식을 제기하지 못하면 그 일은 내 안에서 곪기만 하고 반쪽짜리 글만 쓸 것 같았다. 분명 나를 오랫동안 채웠던 정서는 죄의식과 분노였는데 그 이유를 말하지 못하니 말이다. 그리고 아직도 피해자의 가족을 보자마자 옥상에서 누군가 던지는 물풍선처럼 눈물이 터져 흐른다는 것은 해결할 것이 남았다는 거니까.
성범죄 사건이 개인의 처신 부주의로 일어난 쉬쉬해야 하는 치욕스러운 일이나 자극적인 가십거리가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가해자 잘못이며, 사회가 함께 피해자를 정서적으로 지지해 나가야 하는 일로 인식이 완전히 전환되려면 얼마나 시간이 더 흘러야 할까?
아직 모든 것이 불분명한 어린아이들이나 청소년들에게 그루밍을 가장했든 어떤 방식으로든 이런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길 정말 바란다. 덧붙여 여린 아이들에게 남은 생채기를 어른들이 보듬기는커녕 '네가 부주의했으니 그렇게 된 거'라며 벼랑 끝으로 내몰지 말길 바란다. 너무 연약해 쉽게 상처받는 때이기도 하니까.
이제야 물기 가득한 마음을 꼭 짜서 툭툭 털어 햇볕에 널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