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유록 Apr 20. 2022

자랑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해

사실 난 부러워 도시 사람들


남해에 내려온 지 벌써 한 달 하고도 보름. 그동안 서울에서 친구들이 하나둘씩 남해를 찾았다. 낚시꾼이 된 것만 같았다. 아름다운 남해를 미끼 삼아 친구들을 낚는 낚시꾼. 아름다운 남해로 살랑살랑 유혹하면 서울에서 회사일에 인간관계에 치이던 친구들은 덜컥 미끼를 문다. 엊그제도 태어나 처음으로 남해군 땅을 밟는 친구를 위해 터미널이 있는 읍내로 나갔다. 슈퍼도 하나 없는 작은 어촌 마을에서 지내다 보니 읍내에 갈 일이 생기면 다 있다는 그곳에서 살 물건 목록과 세탁소에 맡길 옷 등 할 일이란 할 일은 다 챙겨서 나가곤 하는데 그날은 친구랑 같이 외식할 읍내 맛집까지 골라 집을 나섰다. 다섯 시간을 달려 서울에서 남쪽 바다 끝까지 찾아온 친구가 반달처럼 웃으며 나타났다. 여독도 없는지 갓 씻고 나온 듯 말끔했다. 나름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다고 옷도 신경 쓰고 화장도 했는데, 서울에서 온 친구 앞에 서니 유행과 나 사이의 거리가 남해에서 서울보다 더 멀어 보였다. 예쁜 모자를 쓰고, 귀여운 재킷을 걸쳐 입고, 스타일리시한 백팩을 멘, 남해 바다를 한강공원으로 만드는 도시 사람이 나타났다. 산뜻한 청색 멜빵바지까지 입었다. 아, 멜빵바지가 아니고 서스펜더 팬츠인가...  





화장품 회사에 다녀서일까. 화장도 어찌나 곱게 했는지... 자기 얼굴에 딱 맞는 톤으로 화장한 뽀얀 얼굴에 상큼하게 올라간 속눈썹, 발그레한 볼까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내 친구는 예전부터 내가 묘하게 열등감을 느끼던 그런 부류의 모습이었다. 자기 자신이 어떻게 하면 가장 매력적인지 알고 부지런히 가꾸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보면 빨강머리 앤이 다이애나를 보듯 바라보곤 했다. 누군가가 앞머리만 살짝 다듬어도 알아차리는 예민함을 갖고 태어나 그들의 한 끗 차이를 누구보다 잘 느낄 수 있어서일까. 어릴 때부터 공기처럼 문화생활을 하며 자기만의 취향을 쌓아간 사람들의 세련됨과 그것을 잃지 않으려는 부지런함. 그것은 보기엔 가까워 보이지만 아무리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는 먼산처럼 발자국을 뗄 엄두도 안 나는 것이었다. 아무리 꾸며도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나와는 달리 그런 친구들은 단정하고 깔끔했지만 멋스러웠다. 지나친 열등감이 눈에 필터를 씌운 건지 피부결마저 달라 보였다. 특히 대학시절 나랑 절친했던 친구 중 하나는 어머니께서 예술가 셔서인지 어릴 때부터 심미안으로 가꾸어진 독보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친구 옆에서 나는 묘하게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했는데 그런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트로피를 받은 듯 뿌듯하다가도 다른 사람들이 나란히 같이 선 우리 둘을 보며 느낄 느낌을 홀로 상상하며 작아지기도 했던 것이다. 그 친구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비싼 물건을 휘황찬란하게 두르는 것도 아니었다. 문화적 자본을 쌓아간 시간이 만드는 간극이었다.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과외를 두세 개씩 하며 백화점을 돌아보는 것으로는 절대 메울 수 없는 간극이었다.





남해에 온 지 3일째 되던 날 에이아이(하우스메이트 1)가 물었었다.




"넌 어떤 사람에게 열등감을 느껴?"





물음표가 끝나기도 전에 바로 떠오른 사람은 그 예술가의 딸, 대학 친구였다. 양말마저 찰떡 같이 골라 신는 센스. 향수 두세 개를 레이어링 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취향. 귓불에 콕 박힌 반짝이는 작은 귀걸이마저 어딘가 다른 그의 스타일 앞에 서면 언제나 동경심과 부러움이 쌍기둥을 이루었다. 그냥 예쁘다는 말보다는 매력적이라는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리는 그 친구는 나의 열등감 버튼이었다. 도시의 소비문화는 인간을 끝없이 갈망하게 하고 수많은 쓰레기를 쏟아내어서 염증이 났지만,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내려는 시도가 넘쳐나는 도시의 에너지는 좋았다. 수많은 공연, 전시, 공간들, 재미있는 이야기들. 남해의 자연에 끌려 내려왔지만 자연이 채우지 못하는 한 구석이 점점 볼멘소리를 냈다. 심심해. 자연, 그래 좋아. 너무 예쁘고 바다도 너무 좋지만, 심심하다고. 바다가 채우지 못하는 그것은 바로 '문화'였다. 아름다운 교외에서 한평생 정원을 가꾸며 그림을 그린 타샤 튜더 님이나 자신의 신념을 위해 자연에서 한평생 침팬지를 연구한 제인 구달님도 너무 존경하지만 배우 윤여정 님을 특히 좋아한다. 꾸준히 쌓아온 교양과 취향, 그리고 인문학적 소양이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신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착장은 어찌나 우아하셨던지! 배우님이 하시는 사치는 출연료를 생각하지 않고 하고 싶은 창작자들과 작업하는 것이라고 한다. 늘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그 속에서 변모해 나가며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나가는 배우님을 보면 나까지 덩달아 가슴이 뛴다.






이번에 남해에 와서 제일 얇은 롯뜨로 머리를 빠글빠글 볶고 코에 피어싱을 뚫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해버리자는 마음으로 버킷리스트를 지우듯 하기도 했지만, 남해라는 새로운 공간에 왔으니 색다른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 학교와 공공기관을 오갈 땐 그 문화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았으니. 하지만 곧 글을 쓰며 거의 집에서만 시간을 보냈고, 가진 옷 몇 벌을 돌려 입으며 화장도 거의 하지 않고 지냈다. 남해 바다와 풍경은 언제나 다르게 아름다웠지만, 그렇게 50여 일이 지나자 지루함이 정말 곰팡이처럼 여기저기에서 피어올랐다. 물론 셰어하우스에서 친구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지내고 있지만, 도시의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에너지가 그리웠다. 비록 삼십 대 후반이지만 아직 주름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이렇게 스스로를 꾸미지도 않고 새로운 사람도 만나지 않으면서 글만 쓰는 것이 맞을까.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던데, 시골에서의 삶은 이렇게 단조롭고 평화로운 것이니 이 선택을 받아들이고 도시의 즐거움은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나는 평생 이렇게 어느 한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주변인으로 맴도는 것은 아닐까. 도시에서는 아름답고 고요한 자연을 그리워하고, 자연에서는 역동적인 도시를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주변인으로 말이다. '50일의 남해'에 처음으로 권태기가 찾아왔다.





이번에 남해로 여행 온 화장품 회사에 다니는 친구는 힙스터 그 자체였다. 힙스터는 내게 필요한 것이 없냐고 여러 번 물어 자기 회사에서 화장품을 한 아름 주문해주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괜찮다고 넣어두라고 했을 텐데 도시에서 떨어져 있던 시간을 뛰어넘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좋은 제품을 고를 수 있게 된 친구의 안목을 빌리고 싶었다. 필요한 색조화장품 몇 개를 주문했다. 화장품과 함께 친구는 도착했고 친구가 준 새 화장품을 이렇게 저렇게 발라보니 기분이 분꽃처럼 피었다.


'음, 이 느낌, 짜릿해.'


친구를 데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상주 은모래비치로 갔다. 친구는 '예쁘다, 예쁘다'를 연발하였지만, 나는 자주 다른 생각에 빠졌다. 이미 여러 번 온 상주 바닷가였다. 사람 하나 없는걸. 우리는 모래사장에 주저 않아 그리운 사람들에게 영상통화를 걸며 바다를 보여주었다. 마음이 영 딴 곳에 있었다. 그러다 모래사장에 콕 박힌 귀여운 조개가 눈에 들어왔다. 하얗고 조그만 조개가 귀걸이로 만들어 귀에 콕 박으면 상주 바다를 귀에 건 것처럼 싱그러울 것 같았다. 갑자기 신이 나서 친구와 조개를 몇 개 주어 올렸다. '담수 진주를 시켜서 조개랑 같이 엮어 귀걸이도 만들고 목걸이도 만들자.' 친구와 자연이 만든 그 아름다운 것들에 감탄하며 말했다. 어떤 예술작품보다 아름다운 자연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도시의 유행과는 거리가 멀어졌지만, 숨을 쉬듯 이 모든 것들을 누리고 있었다.





나는 이미 수차례 먹었지만 친구를 먹이려고 고등어회를 샀다. 처음 남해에서 고등어회를 접했을 땐 물개 박수를 치며 신기해했는데 이제 친구에게 소개할 정도로 하나의 식문화가 되었다. 그날그날 잡히는 해산물들에 민감해지고 지금은 어떤 어류가 많이 잡히는 지도 대충 사람들의 대화를 들으며 알게 된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있었다. 도시에 살았더라면 새조개가 언제 잡히는지, 멸치 쌈밥이 언제 맛있는지 어떻게 알았겠는가. 새로 생긴 한남동 맛집 메뉴는 먹어보지 못하지만, 갓 잡아 올린 멸치를 회쳐먹을 수 있다. 물론 고등어회도!



그날 저녁, 다른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10년 만에 신사동인데 너 왜 남해냐고. 당장 오라고 친구가 울부짖었다. 외국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다 부산에 소재한 대학원에 진학해 그곳에서 배우자를 만나 부산에서 정착한 친구였다. 오랜만에 대도시에 얼큰하게 취한 친구는 달뜬 목소리로 애원했다. 서울로 오라고.



아, 이번엔 강적이었다. 정말 가고 싶었다. 가서 친구랑 가로수길 아무 술집이나 들어가서 새벽까지 수다를 떨며 주변 테이블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젊음을 만끽하고 싶었다. 잠들지 않는 도시의 밤을 느껴본 적이 언제였던가. 하지만 열한 시만 되어도 까무룩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엔 등산을 해야 하는 걸.



고등어회를 배불리 먹고 잠든 다음날엔 남해 금산에 올랐다. 금산은 이름처럼 비단을 두른 듯 아름답다. 특히 위에서 바라보는 절경은 이제껏 등산을 하며 봐왔던 풍경 중에 단연 최고이다. 무엇보다 이 절경을 바라보면서 컵라면을 먹을 수 있는 산장도 있다. 조금 힘들더라도 고생스럽게 산을 올라 먹는 그 라면 맛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1년 만에 가는 금산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산 위에서 먹는 라면도 정말 맛있었다. 하지만 처음과는 분명히 달랐다. 계절마다 날씨마다 옷을 갈아입는 풍경이지만, 처음 갔던 때에 비해서는 사실 감동이 크지 않았다. 그런데 새로 산 아이폰 13프로로 남해를 배경 삼아 친구를 찍어주는 것이 너무나 즐거운 것이다. 마치 프로 스냅 사진사가 된 듯 쭈그리고 앉기를 불사하며 진심으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친구를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나를 위해서이기도 했다. 이번 친구의 여행 내내 친구의 사진사를 자처하며 내가 좋아하는 남해를 병풍처럼 널어놓고 친구를 프레임에 담는 것이 진심으로 즐거웠다.






하산할 때는 쉬운 길로 내려와 셔틀버스를 타기로 했다. 셔틀버스 운전자 아저씨는 이 차는 한 시간이나 뒤에 출발할 것이라고 했다. 순간 남해의 느림이 짜증스럽기도 하고 친구가 기다릴 것에 조바심이 났다. 택씨를 부르기로 했다. 콜택시도 30분은 넘게 기다려야 했다. 택씨를 기다리는데 셔틀버스 운전자분께서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셨다. 친구는 서울에서 왔다고 했고,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나는 어디에서 왔지. 남해 대지포 마을에서 왔는데, 남해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서울 사람도 아닌데... 그분께서는 친구에게 서울이 뭐가 좋냐고 물으셨다. 공기도 안 좋고, 사람도 너무 많다며, 자신은 서울에선 못 살겠다고 하셨다.





"남해는 공기가 보약이야, 남해는 11월에 가장 아름다워. 11월에 또 와."




친구는 "남해 너무 이쁜데 젊은 사람들이 할 것이 없어요"라고 답했다. 택씨 기사 아저씨가 오셨다. 가는 길에 할머니 한 분을 내려드리고 가자고 하셨다. 뒷 자석엔 할머니 한 분이 그림처럼 앉아계셨다. 도시에서처럼 합승은 안된다고 할 수 있나, 언제 택씨가 잡힐지 모르는데 말이다.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가릴 것이 없었다. 할머니께서 사시는 벽련마을을 지나 고불고불한 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갔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바다는 햇살을 받아 어느 때보다 파랬다. 친구는 날씨가 너무 좋다며 감격했다. 남해는 어느 때처럼 예뻤다. 남해 공기는 보약이지만 사탕처럼 다디달았다. 택씨 아저씨는 중간에 버스로 갈아타겠다고 내리려는 우리에게 어차피 가는 길이라며 택시비를 깎아주시곤 집까지 데려다주셨다.





한숨 쉬고 독일마을로 갔다. 남해의 대표 관광지인 독일마을은 내가 지내는 곳에서 차로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곳인데도 사실 제대로 가본 적이 없다. 사람 많은 관광지는 가기 싫다며 잘 가지 않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서울 친구와 함께 끝없이 즐비한 독일마을의 화려한 카페와 맛집을 보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들떴다. 밤인데도 독일마을은 조명 때문에 여기저기가 반짝반짝했다. 남해는 밤이 되면 정말 칠흑같이 어두운데, 그래서 밤하늘에 별도 잘 보이지만 밤에 다니기가 두렵기도 한 곳이다. 그런데 독일마을은 해가 진 후에도 가짜 별이 가득 떠오르는 도시처럼 조명이 가득했다. 양고기에 기가 막히는 독일 맥주를 한잔 마시고, 이리저리 독일마을을 걸어 다녔다. 파독을 했던 분들의 집이라는 표지가 여기저기에 세워져 있었다. 파독 광부, 파독 간호사, 그분들과 결혼한 독일인들이 거주하셨거나 아직 거주 중인 공간이었다. 그분들의 사연을 읽으며 독일에서 고된 삶을 마치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이 아름다운 마을에 와서 보냈을 사람들의 삶을 떠올려 보았다. 독일 맥주, 독일 소시지, 독일식 디저트... 그들은 이 먼 곳까지 와서도 자기들만의 문화를 즐기며 사셨구나. 독일과 한국, 그중에서도 남해가 만나 만든 이 독특한 공간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친구는 다음날 아침 떠났다. 남해에 또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나는 그때까지 남해에 있을까? 친구는 내게 많은 물음표를 남겨주었다. 장기 연애를 하다 권태기가 온 연인처럼 남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첫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처음 남해와 사랑에 빠진 이유는 분명 남해가 심하게 아름답고 이곳에 살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도시의 속도를 따라잡으려다 숨이 차서 이곳에 잠시 쉬러 온 사랑방 손님 같았다. 남해를 관광객처럼 즐기기만 하는 것은 싫다고 해놓고선 이제 다른 것을 보여달라며 본전을 찾는 관광객처럼 굴었다. 남해는 한결같이 그대로였는데 말이다. 남해의 아름다움과 여유를 디저트 먹듯 즐기기만 했다. 관광객처럼 남해를 소비하며 지내는 삶이 주는 행복은 생각보다 유효기간이 짧다. 남해가 아름다워서, 조용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서, 여러 이유로 남해를 찾을 수 있지만 이곳도 사람들이 사는 삶의 터전이다. 서울에서건 남해에서건 세상을 시식용 코너처럼 맛보기만 하면 영원히 배부르지 못할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맛만 얌체처럼 골라먹으며 메뚜기처럼 옮겨 다닐 것이 아니라 남해에 살 것이라면 남해 그 자체를 살아내자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유유자적, 안빈낙도하면서 살 생각은 없다. 조용한 바닷가에 산다고 화장끼 없는 얼굴로 미니멀리스트가 되어 살 필요는 없으니까. 남해에서도 서울에서처럼 역동적이고 재미있게 살고 싶다. 남해가 갖고 있는 것으로 재미있는 것을 많이 만들어내야지. 나중에 누군가 "남해는 정말 예쁜 데다 젊은 사람들이 할 것이 많아요!"라고 말할 수 있도록.




도시의 속도가, 소음이, 공해가, 피로가 '싫어서' 남해로 왔다. 하지만 도시의 문화와 역동적임은 누구보다 '좋아한다'. 남해는 아직 서울보다 훨씬 고요하고 정적이지만, 남해 바다의 조개껍질이, 남해의 눈부신 풍경이, 남해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먼 이국땅에서 남해로 온 사람들이, 남해가 좋아서 남해에 온 나 같은 사람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재미있는 것들이 많을 것이라고 믿는다. 도시에서보다는 조금 더 번거롭고, 조금 더 상상력을 발휘해야 되겠지만, 보약 같은 공기를 마시니 감내해야겠지. 빌딩 숲이 아니라 크고 작은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시멘트가 아니라 크기도 모양도 다 다르게 생긴 돌들이 서로 맞물려 담을 이루는 남해에서, 어느 누구나 제각기 아름답다는 것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깨닫고 있다. 매일 다른 바다 색깔에 감탄할 수 있는 감수성과 바닷바람을 맞으며 피자를 먹을 수 있는 이곳만의 낭만을 가지고 남해에서만 만들 수 있는 것들을 많이 만들며 놀아야지. 아참, 그리고 우리의 친구 인터넷도 있으니 온세계가 레퍼런스다. 찾지 못할 것이 없고 연결되지 못할 곳이 거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얼마나 가능성이 무궁무진한가.





친구가 떠난 날 밤, 옥상에 나가 보니 보름달이 너무 밝아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밝은 달은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정말 전기가 없던 조선시대 때라도 보름달이 뜨는 밤에는 연인을 만날 수 있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 사극을 보면 보름달이 뜨는 밤 데이트를 했구나, 그럴만했겠더라. 달빛에 얼굴을 씻은 연인이 얼마나 예뻐 보였을까. 남해엔 물론 전기도 인터넷도 잘 들어오지만, 이렇게 사극 이해도마저 높여주는 남해의 밤이었다.  






이 글을 읽었다면 이미 미끼를 문 것이여.



 



남해 금산






























매거진의 이전글 황금 마티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