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18. 14:00(2017)
씻기 전에 담배나 한대 피고 오자 하고, 밖에 나가 보니 지난밤에 내린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허연 눈이 빛나고 있는 걸 보니, 왠지 머리가 핑 도는 듯했다. 생각지 못한 눈이 나를 반겨주었기 때문이었을까, 멋모르고 맨 발로 나와 눈 위에 발을 디뎌야 하는 것이 당혹스러웠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차마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한참을 서서 땅만 쳐다보았다.
집에서 내려온 에스프레소에서 김이 모락모락, 생각보다 기온이 낮지 않아 텀블러를 들고 있는 손이 그리 차지 않았다. 높은 기온에, 소복소복하던 눈은 사람들의 발에, 자동차에 마구 치여 가는 길마다 온통 진창이 되어 있었다. 길게 늘어진 패딩 뒷부분에 자꾸만 신발이 걸리기에, 지저분해지진 않았을까 하고 신경이 쓰였다. 이리 눈이 많이 와도, 사람들은 여전히 걷는구나. 여러분, 어디로 가십니까? 나보다 한 발 앞서 걷고 있는 모르는 남자를 붙잡아 세워 묻고 싶었다. 당신, 이리 눈이 많이 오는데, 어디를 그리 바삐 가십니까? 아직도 내리고 있는 눈이 자꾸만 내 눈 앞을 가려 앞을 바로 보고 가기가 쉽지 않았다. 한참을 빤히 앞사람의 발 뒤꿈치를 보며 걷다 보니 어느샌가 갈림길이 나와서는 내가 가야 하는 길과는 다른 방향으로, 휙 하고 걸어 나가더라. 안녕. 인사를 하고 나는 다시 아무도 없는 텅 빈 길을 걸어야 했다. 어디로 가십니까? 이번엔 나에게 묻고 싶었다. 어디로 가고 있니? 이리 눈이 많이 오는데, 이리도 눈이 많이 와서는, 걸음걸음마다 눈이 차여서 온통 짜증을 내며 걷고 있으면서, 한 발 뗄 때마다 패딩 밑자락이 지저분해질까 온통 신경 쓰고 있으면서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녹아서 진창이 된 길거리를 차박차박 걷는데 누군가 그러더라. 어디로 가고 있지 않습니다. 꼭 어디로 가야 합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도서관 안으로 들어섰다. 입구에 서서 발을 바닥에 탁탁하고 내려치니 따라온 눈 진흙들이 바닥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안녕. 그들에게 인사해줬다.
지난밤에도 역시 잠을 못 자서, 도서관 안으로 들어오니 급하게 피곤해졌다. 생각보다는 따듯하지 않은 온도라고 생각하며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오늘은 몇 시 만남이었더라, 2시던가. 그렇겠지. 몇 주 동안 늘 2시에 만나왔으니까. 오늘은 가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요즘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이야기할까. 갑자기 집중력이 확 올라갔다고, 그런 이야기를 하면 기뻐하시겠지. 생각보다 적응적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밤을 새웠다고 이야기해야 하려나. 요새 잠을 통 못 자고 있다고, 지난번에 만난 후로 2주 동안 또 3kg이 빠졌다고 그런 이야기도 하게 될까. 한참을 멍하니 생각하다 보니, 책상 위에 뭐가 이리도 많이 뛰어다니고 있나. 너희 또 왔구나, 안녕. 안녕. 나는 연달아 인사를 두 번 하며, 마지막 한 번은 이제 그만 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함께 했다. 손으로 허공을 휘휘 저었더니 사라지는 듯하다가 곧 다시 빼꼼 빼꼼 여기저기서 얼굴을 내밀었다. 그래, 안녕. 너희는 내가 좋은가 보다. 며칠 전부터 자꾸만 손목이 아프네. 머리도 자꾸만 아프다. 왜 이리 어딘가 조금씩 아프지. 알겠으니까 그만 투덜대. 힘든 거 알고 있으니까 자꾸 티 내지 말란 말이다. 이젠 가방을 뒤지면 어김없이 나오는 두통약을 꺼내어 복도로 나갔다. 찬 바람. 고작 문 하나 열고 나왔을 뿐인데, 이곳은 왜 이리도 추운가. 좋아하는 셔츠를 꺼내 입고 온 것이 후회가 되었다. 기온이 좀 올라갔기에, 오늘은 이 셔츠를 입고 싶었다. 너무 춥네. 얼른 약 먹고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잠을 잘 수가 없어요. 두렵거든요. 있잖아요. 잠드는 게 두려워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간이 지나 가버리잖아요. 나에게 내가 모르는 시간이 생겨버리잖아요. 무서워요. 금방 내일이 와버리잖아요. 내일이 오는 건 무섭잖아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요. 아니, 내일이 오늘만 같아도. 오늘 같은 내일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죠? 그건 너무 괴롭잖아요. 뭐가, 뭐가 괴로운데? 괴로운 게 뭔데? 무서운 게 뭔데? 그게 다 뭐야? 뭔지나 알고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겠어.
다시 또 시간이 지나, 외투를 단단히 입고 밖으로 나왔다. 1시 20분. 자꾸 잠이 와서 좀 이른 시간에 나왔다. 자꾸 손목이 아프니 가는 길에 파스도 하나 사서 붙여야 할 것 같다. 여전히 길이 질척 질척거렸다. 역시 생각보다 춥지는 않네. 늘 걷던 길이었는데, 고작 밤새 온 눈 때문에 한 발 한 발 내딛는 게 정말이지 불편했다. 아침에 도서관에 가던 길보다 확실히 길가에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들은 하나 둘 짝 지어 걸으며 뭐라 뭐라 떠들어댔다. 그들은 신발 끝에 붙는 눈 진흙들이 아무렇지도 않은가 봐. 왜 아무렇지도 않아요? 이렇게 불편한데요. 자꾸만 붙어 따라오잖아요. 그만, 그만 따라 오란 말이야. 나 바빠, 만나야 될 사람이 있다고. 만나야 될 사람? 만나야 되는 사람인가, 왜 만나야 하지? 하얗던 눈이 이래저래 밟히니 금세 지저분해졌다. 원래 하얀색이긴 했던 것일까? 알 게 뭐람. 아니지, 알고 싶다. 내 발에 이리저리 치이면서 곧잘 나를 따라오는 이 녀석들이 원래는 무엇이었던 걸까? 너희, 어디서 왔니? 너네, 뭐야? 아무 대꾸도 없었다. 한참을 고개를 숙인 채로 발에 차이는 녀석들을 바라보며 걸었다. 어디서 온 녀석들이지? 어떻게 만들어진 녀석들이지? 궁금한 게 아직도 한참인데 누구 하나 대답해주는 이가 없었다. 대신에 녀석들만 질척대며 내 발에 자꾸만 따라붙을 뿐이었다. 왠지 키득 키득대며 장난을 치는 것만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너희, 나를 놀리고 있구나. 뭐가 그리 우스워? 같이 웃자. 키득거리는 소리가 멈추었다. 아무도 내 발에 따라붙지 않았다. 잘 됐다. 잘 가. 멀어지는 내 발자국 뒤로 다시금 꾸물꾸물 올라오는 듯하더니 무어라 속삭이는 듯했다. 잘 다녀와, 이따 또 보자.
나를 따라오는 생각들이라 했다. 그중 제일 무서운 생각 하나를 말해보아라 했다.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더라? ‘앞으로도 이렇게 힘든 일들이 자꾸만 닥쳐올 것이라면 차라리 지금 죽었으면 좋겠다’는 얘기였던 것 같다. 그래, 나는 무서워. 언제고 또다시 내게 힘든 일이 생긴다면, 약해 빠진 나는 그걸 이겨 내기 위해 또다시 무수히 많은 밤을 지새우고, 또다시 많이 울어야 하고, 또다시 자책하며, 나는 그렇게 이겨내는 게 아닌 지나가는 시간을 보내야 할 거야. 나는 그게 무서워. 나는 늘 약했으니까. 나는 늘 겁쟁이였으니까. 나는 계속 겁쟁이 일거야. 그래서 나는 무서워. 아, 머리가 아파. 아니야, 아프지 않아. 잠을 못 자서 그런 거야, 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야. 아니야, 무서워. 나는 무서워. 어째서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는 거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거야? 여러분, 당신네들은 무섭지 않아요? 자꾸만 힘든 일이 생기잖아요. 크고 작은 힘든 일이요.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잖아요. 나 봐요, 25살이에요. 젊고 어리다구요. 앞으로 나는 또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겠냐구요. 나는 이제 더 이상 울고 싶지 않아요. 너무 힘들다구요. 아아, 누가 와서 가슴을 마구 찢어버려도 이것보단 덜 아프겠어. 내 삶은 너무 아프다구요. 늘 아팠어요, 늘. 나는 늘, 하루하루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 쳐야 했어요. 죽고 싶다고 울면서도 죽을 수가 없어서 살아야 했어요. 내가 어떻게 죽을 수가 있어요? 죽는 건 무서우니까, 괴로우니까. 사실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더 무서웠으면서도, 그것보다 내가 죽으면 아파할 누군가를 생각하니 그게 너무 괴로워서, 그저 그 생각으로 무서워도 이렇게 살아 있었다구요. 아아, 내가 죽는다면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나를 아무도 모르는 그런 곳에서 죽겠어요. 그런데 나는 너무 무서워. 내게 다시 찾아온 이런 시간이. 이런 생각들이. 선생님, 사실 저는 이겨낼 자신이 없어요. 이제 포기하고 싶어요. 도망치고 싶어요. 지금 안간힘 쓰고 있어요. 이렇게 갑자기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일부러 산책을 하는 것도, 여행을 계획하는 것도. 무언가 하기 위해 살아있으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르겠어요. 해야 할 일이 없으니, 이만 죽어버리자 하고. 이만 죽어도 되겠다 하고. 아아, 머리가 아파. 약 좀 가져다 줄래?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다. 옆에 있는 이가 아무도 없기에.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무슨 이야긴지 들리지가 않았다. 누가 흉부를 마구 들쑤시고 있는 것 같았다. 아까 너희들이니? 자꾸만 내 발에 척척 달라붙던 너네들 말이야. 대답이 없네. 여기 있는 거 다 알아. 손이 자꾸만 덜덜 떨렸다. 무서워서 그래? 무섭지 않잖아. 거짓말하지 마. 연기하고 있는 거지? 숨 쉬기가 곤란했다. 머리가 아팠다. 몸이 떨리는 것 같았다. 으으, 또 위로 붕. 아래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저기요, 저 곧 날아갈 것 같은데 누가 좀 잡아주세요. 저기요, 저기요.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옆에 있는 이가 아무도 없기에.
계단 위에 서서 심호흡을 한 번 했다. 굴러 떨어지고 싶다. 고개를 마구 가로저었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뭔가 발아래 질척거렸다. 이상하네, 이 곳엔 눈이 왔을 리가 없는데. 뭐가 아파? 정말 니 삶이 그렇게 아팠어? 응, 나는 아팠어, 아플 수 있잖아. 정말로? 정말로 아팠어? 확실해? 정말이야? 응, 정말이야.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아니, 모르겠어. 저어기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싶다.
그랬었죠,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많이 힘들었구나.’하고 안타까워할 거라고요. 그럴지도 모르죠. 저도 잠깐 동안은 그랬어요. 이렇게 힘들게 살아온 나 자신이 불쌍하고, 안타깝고, 한 편으론 그럼에도 이렇게 살아와 줘서 기특하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이제 잘 모르겠어요. 진심으로 기특하다고 생각해? 지금 이렇게 힘든데? 그때 죽었더라면, 지금 힘들지 않았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난 그렇게 생각해.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쉬이 진정이 되질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었다. 그때, 예전에 죽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그런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었다. 자꾸만 나를 탓하지 않기로 했었다. 칭찬해주기로 했었다. 앞으로도 힘든 일이 얼마든지 생길 테고, 지금도 힘들어하고 있지만, 그래도 칭찬해주자고 생각했다.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고 생각하자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렇게 서있을 수 있지 않느냐고. 전에 본 적 없던 것들을 하루하루 새로이 보며 살아가고 있지 않느냐고. 얼마나 찬란한가. 늘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면서, 늘 새 태양이 뜨면 어김없이 밝아지는 이 세상이 얼마나 찬란한가, 너는 그런 찬란함이란 것을 모르고 살았기에. 너는 그렇게 살아남아서 이리도 찬란한 하루를 또 보낼 수 있게 됐노라고. 아아, 나는 이 찬란함이 싫어요. 그에 비해 나는 너무도 어두우니까. 찬란하면 무얼 하나요? 나는 더 어두워질 뿐이에요. 강해진 빛만큼이나 그림자는 더욱 짙어질 뿐이에요. 더 가까운 곳에서 빛을 비추면 그림자는 더 선명해질 뿐이에요. 아니야, 그렇지 않아. 어둠을 넘어 빛이 들어올 거야. 아니야, 그렇지 않아, 무언가 막아 서고 있어. 막아서다니? 빛을 막아 서고 있는 것이 있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빛이 들어오지 않게, 그림자를 만드는 것이 있다고. 그게 뭔데? 나. 너? 그래, 나. 그럼 어떻게 하지? 내가 없어져야 해. 그래야 빛이 들어올 거야. 아니야, 그렇지 않아. 아니야. 아니야.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가려는 길에, 자꾸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쳐다보지 마세요. 안 울 거니까요.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어. 그렇지만 쳐다볼까 두렵다. 우는 거 아니에요. 우는 척하는 거예요. 누가 믿어줄까 이런 말을. 누가 봐도 우는 건데. 말로만 아니라고 하면 사람들이 믿어줄 줄 안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냥 꾸욱 다시 눈물아, 들어가라, 하고 괜히 코 한 번씩 찡긋거리면서 참을 뿐이었다. 길가는 아직도 온통 눈 진흙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럴 만도 하지, 아직 한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그새 눈이 다 녹아 사라질 리가 없었다. 발 끝에 자꾸만 질척이고 채였다. 조금 세게 발을 구르면 찰박, 하고 사방으로 물이 튀어나갔다. 나는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망설였다. 다시 도서관으로 가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늘 다니던 길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무서울 것 없는, 익숙한 길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저 사람에게 ‘도서관에 어떻게 가나요?’하고 물어야 할까. 아니, 도서관에 가는 길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며칠 내내 줄곧 도서관에 드나들었으니까. 그럼 왜 나는 매번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망설이고 망설였을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니까. 도서관에 돌아가는 길을 모르는 게 아니야.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는 거야. 도서관에 가야 할지, 다른 어딘가로 가야 할지 모르겠는 거야. 나는 일단 학교로 들어섰다. 당신네들은 어디로 갑니까? 나를 데리고 가주세요.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아아, 그래, 아무에게도 나는 이 말을 꺼내지 못했으니까.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으니까. 아무도 없는 게 아니야, 이렇게 많잖아. 아니, 아무도 없다. 무얼 보고 있는 거야? 눈 앞을 봐. 아무도 없어, 우리 둘 뿐이야. 둘이라고? 너는 누군데? 아무 대답이 없었다. 눈 앞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눈길을 차박차박 걸어 나가고, 걸어 들어올 뿐이었다. 도서관으로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걷고 싶어 졌다. 오랜만에 노래를 들으니 기분이 좋아서 그랬다. 노래 들으면서 산책하는 거 원래 좋아하니까. 그래서 그랬다. 계단 위에 멍하니 서서 눈을 치우는 아저씨들을 바라보았다. 눈을 스윽 밀어내니 그 밑에 있던 초록색으로 페인트칠이 된 땅이 드러났다. 뭐지, 테니스 코트였나? 모르겠다.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람. 모르겠다. 꼭 소용이 있어야 하나?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이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붙잡고 묻고 싶었지만, 붙잡고 묻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그런다고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갈 것인지 알 수 있는 게 아니었음에. 그저 조용히 고개를 가로젓기만 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자꾸만 눈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따라가고 있었다. 내 발자국 하나하나마다 여전히 질척 질척하고 눈 진흙들이 달라붙었다. 한동안 계단 위에 서서 테니스 코트를 치우시는 아저씨들을 바라보며 발아래 있는 눈 진흙들을 차박, 차박 밟아 대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점점 진녹색이 선명해지는 테니스 코트를 바라보며 서있었다. 문득 발이 차가워 무슨 일인가 하였더니, 어느샌가 신발 안으로 가득 눈 진흙들이 들어와 양말이며 신발이며 잔뜩 젖어 있었다. 기어코 이렇게 신발 안까지 들어와서 나를 괴롭게 하는구나. 아, 내가 그들을 차박차박 밟지 않았더라면, 내 발이 이렇게 찰 일이 생겼을까. 아니, 그럴 리가. 모든 것은 내 탓이다.
안녕. 안녕. 안녕. 몇 번이고 인사를 되뇌며 발을 바닥에 탁탁 내려쳐도 아무것도 떨어져 나가는 게 없었다. 꽁꽁 언 발만 아려올 뿐. 아무것도 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일까, 무엇도 붙어있지 않기 때문에 떨어지는 게 없는 것일까.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살았느냐고 그랬다. 저, 살아 있는 거 맞나요? 살아 있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요? 무엇이 살아 있는 것인가요? 어떤 삶이, 아니, 삶이 뭔가요? 삶이란 게 정말 있는 거예요? 그게 뭔데요? 답을 알 길이 없는 질문이 계속 계속 떠올랐다. 내 앞으로 지나치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아이들의 눈이 나에게 한 마디씩 던지며 지나쳐 갔다. 너는 그게 왜 알고 싶어? 정말 궁금해? 그게 왜 궁금해? 나는 궁금하지 않은데. 그런 게 다 무슨 의미야? 우린 이미 살아있는걸? 어떻게, 어떻게 우리가 살아 있다고 단언할 수 있는 건지 나는 모르겠다. 살아있다는 게 뭔데. 나는, 언제부터, 어떻게 살아 있었는데?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나는 태어나는 그 순간에 울지 않았다고 한다. 온갖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어깨뼈도 부러진 채 태어났다. 보름 동안 엄마를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큰 병원으로 옮겨진 나는, 힘겹게 첫울음을 터뜨린 그때부터, 어쩌면 그때부터 이 삶에 지쳐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가 나를 안아주실 건가요. 낯선 이. 누구세요? 간호사였겠지. 그 손은 따듯했을까? 나를 살리기 위해 밤낮으로 신경 써 주셨을 테지. 그런데 그렇게 살아서 뭐요? 나는 분명히 살아났다. 누군가에 의해서, 아마 꽤 많은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났을 것이다. 죄송해요. 당신의 그 노력을 나는 희미하게 피어오른 연기처럼 후욱 불어 없어지길 바라고 있어요. 쉽지 않을까요. 자고로 흐릿한 연기는 쉽게 사라지기 마련이니까요. 나는 그랬죠. 누군가 가볍게 손을 휘젓는 것만으로도 형체 없는 연한 담배 연기처럼 휘릭하고, 흔들렸지요. 바람이 강한 날, 무심코 뱉은 담배 연기가 금세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이, 무언가 나를 강하게 밀어버렸다간 나는 그대로 떨어지고 말 테죠. 나는 그저 아주 여린, 누군가의 날숨을 따라 나온 담배 연기 같은 사람이니까요. 저는 그때, 살아났어야 했을까요? 원망스럽다. 내 등짝을 때리던 그 간호사의 다급한 손을 꼭 마주 잡고,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아주 꽉 부여잡고 그녀를 말리고 싶다. 당신이 앞으로의 내 삶을 볼 수 있다면 그때 나더러 살아달라고 내 등짝을 마구 쳐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래도 그녀는 나를 살려주었을지도 모른다. 아가, 그래도 이 삶은 멋지단다. 아가, 너는 누군간 이겨내지 못했을 수도 있는 순간을 이미 이겨내며 태어났단다. 너의 울음이 터지던 그 순간, 많은 사람들이 너를 축복해주었단다. 생명이란! 너의 생명력을 모두들 경이로워했단다. 많은 사람들이 안도했단다. 아가, 너는 그렇게 태어났단다. 약하지도, 겁쟁이도 아니었던 너는, 그렇게 죽음의 순간에서 삶을 선택했단다. 아니요, 저는 늘 그 순간을 원망하며 살아왔어요. 겁쟁이 주제에 왜 그때는 물러서지 않았는지, 약해 빠진 주제에 센 척하며 살아나고 말았는지, 나는 늘 그 순간이 원망스러웠어요. 나는 늘 생각해왔다. 내가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이 아니라고.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노라고. 내가 그렇게 엄마를 힘들게 하며 태어났다고 그랬었다. 엄마는 너무 힘들어 나를 안아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고 그랬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이미 첫 순간에서부터 누군가를 힘들게 하며 태어났구나, 죄를 지으며 태어났구나, 미움받으며 태어났구나. 그래 내가 원망스러웠다. 태어나고야 만 내가 싫었다. 그러니 나를 괴롭히지 말아라, 누군가에 의해 억지로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어떠한 짐도, 어떠한 질책도, 어떠한 타박도, 어떠한 부담도 주지 말아라. 나에게는 늘 무거웠다. 이 삶이,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며 살고 있는 이 삶이 나는 무섭고 또 그만큼 무거웠다. 나는 그저 태어났으니 태어났을 뿐이고, 그러니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이제 나도 선택하게 해주십사 생각했다. 끝내는 건 내 몫으로 해주십시오, 그렇게 소원했다. 시간이 지나 언젠가가 되면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누르고 있는 수많은 것들에게서, 나를 힘들게 하는 수많은 것들에게서 도망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이제 안다. 나는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내가 무거워하는 이것들이 무엇인가 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내게 쥐어준 것이 아니라, 내가 메고 있는 가방도 아니고, 이 무거운 패딩도 아니라, 이건 인생 그 자체일 뿐이기에. 도망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알고 있는데도 여태껏 도망치지 못하는 것은 내가 겁쟁이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노래가 귀 안 가득가득 들어오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만 가득한 이 거리를, 처음 보는 건물이 많은 이 거리를 가고픈 데 없이, 가려는 데 없이 계속 빙빙 맴돌기만 했다. 그러다 어느샌가 누군가 자꾸만 길게 늘어진 패딩 자락을 붙잡는 듯 해 돌아보니 익숙하면서도 낯선 꼬마가 옷자락을 붙들고 늘어졌다. 유달리 겁이 많은 아이였다. 잘 우는 아이였다. 하지만 늘 숨어 우는 아이였다. 아가, 그만 울거라. 네가 우는 소리에 머리가 어지럽구나. 무시한 채 앞으로 나아가려하니 자꾸만 내 옷자락을 붙들고 쫄래쫄래 따라왔다. 멍하니 바닥을 보며 한참을 걷다 어쩐지 나를 따라오는 발소리가, 뒤따라오는 울음소리가 점점 많아지는 듯해서 다시 뒤를 돌아보니 역시나 여러 사람이 내 뒤를 쫓아오고 있었다. 조금 더 큰 아이가, 또 그보다 조금 더 큰 아이가, 그리고 또 그보다 조금 더 큰 아이가, 그보다 조금 더, 조금 더, 조금 더. 몇 명인가 모르겠다만 서른은 족히 돼 보이는 크고 작은 아이들이 내 뒤를 졸졸 뒤따라오고 있었다. 너희는 누구니? 왜 다들 나를 따라오고 있었던 거야? 아이들은 하나같이 대답을 하지 않고 그저 모두 같은 표정으로 내 얼굴만 멀뚱히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도 가만히 그들을 멀뚱히 쳐다보다 왠지 지치는 기분이 들어 무시하자 생각했다. 다시 스무 발걸음 정도 옮겼을까, 멈춰 서서 뒤를 돌아 여전히 멀뚱히 나를 쳐다보는 그 표정을 보았다. 괜히 울화가 치미는 듯 해 화를 내었다. 너네 도대체 누군데? 왜 나를 자꾸 따라오는데? 부담스럽고 싫어. 이제 그만 가라. 제발 가라. 가장 앞에 서있던, 가장 나이가 많은 듯한 아이를 툭 밀었다. 아이는 힘 없이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 아이는 울지도 않고 주저앉은 채로 또 멀뚱히 나를 쳐다만 보고 있었다. 다들 돌아가! 다시 한번 소리치니 아이들이 같은 목소리로 일제히 말했다. 우리도 가고 싶어. 그럼 왜 가지 않는 거야? 어서 가라. 또다시 대답 없이 내 눈만 쳐다보고들 있는다. 가, 가, 그만 따라오고 가. 다시 한번 아이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네가 우리를 보내주지 않잖아. 그리고 동시에 엉엉 아이들이 울기 시작했다.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무리 중 가장 어릴 것 같은 작은 꼬마 아이가 엉엉 울며 조심스레 다가오더니 바닥에 앉아있는 내 머리에 작은 손을 뻗어 머리를 스윽하고 쓰다듬어주었다. 멍하니 꼬마의 눈만 쳐다보고 있자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도 그 애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순간 그 자리에 누가 있었냐는 듯이 그 많던 아이들이 모두 사라졌다. 내가 주위를 두리번 거리니 거리 가득 목소리만 울려 퍼질 뿐이었다. 너는 그럴 수 없어, 너는 아직 그럴 수 없어,라고.
도서관 앞에 도착해 담배 하나 피고 들어가자 했던 것이, 하나가 두 개가 되어, 또 세 개가 되어 그 자리에 꽁초가 점점 쌓였다. 연기는 모두 흩어져 나뭇가지 사이로, 바람 사이로 사라졌는데 지독한 담배 냄새만은 내 머리카락에, 옷자락에 스며 바람이 불 때마다 조금씩 흘러나왔다. 저도 그럴까요, 바람 따라 사라져도 어디선가 다시 또 바람이 불어오게 되면 사람들은 나를 기억해 줄까요? 아, 너에게선 이런 냄새가 났었다, 하고. 아, 너에게선 이런 소리가 났었다, 하고. 그러면 바람이 불어올 때 나를 보고 싶어 해줄까요? 나를 그리워해줄까요? 나를, 기억해 줄까요?
그래요, 그러면 누군가 나를 기억해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제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그렇게라도 누군가 나를 그리워해주고 기억해준다면. 어느 날 솔솔바람이 불어 슬며시 떨어진 잎사귀를 보고서는 내가 생각나 눈물 흘려주는 이가 있다면, 저의 지나간 시간을 담은 사진을 부둥켜안고서는 네가 이렇게 예뻤단다, 하고 그리워해주는 이가 있다면, 설령 그런 사람들이 아주 많다한들. 그제야 저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아아, 내가 찬 바람을 타고 저어기 하늘 위로 바닷가로 산 중턱에서 헤매고 다니면서도 그저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으로 나는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요? 아마 나는 그리 행복하지 못할 것 같아요. 그런 사람인 겁니다.
계단을 털레털레 걸어 올라갔다. 책을 펴고 앉아있는데 뭔지 모를 이질감이 들어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었다. 책이 뭐지? 종이를 한 번 만지작거렸다. 이게 책? 책인가 이게? 머리가 어지러웠다. 자꾸만 잠이 쏟아졌다. 잠이 드는 시간은 무섭지만 잠이 들고 싶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무것도 없는 무의 세계로 가고 싶었다. 그곳에는 다른 사람들도, 나도 없는 그런 곳이길 바라면서. 자꾸만 머리가 무거워 곧 있으면 책상 아래로도 떨어질 것 같았다. 눈에 한 글자 한 글자가 들어오고 있음에도, 그 글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건 그저 의미 없이 쓴 낙서처럼 보였다. 그저 각 지고 동그랗기도 한 의미 없는 선분들이기만 했다. 몇 시간이고 앉아서 그런 시간을 보냈다. 추워하며 한참 동안 밖을 걸어 다녔기 때문인지 자꾸만 잠이 쏟아졌다. 아니면 어젯밤 밤을 새워서 그런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커피를 벌써 몇 잔째 마셨는데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듯했다. 요사이 커피 한 잔이면 며칠밤이고 샐 수 있을 것처럼 잠을 안 잤었는데, 오늘은 왜 이리도 잠이 쏟아지는지 모르겠다. 그저 며칠 밤낮이고 캄캄한 암막커튼을 빛 한 점 들어오지 못하게 꽉 묶어 쳐두고, 해가 떴는지 달이 떴는지도 모른 채 긴긴 잠을 잘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계속 머리가 뚜욱 뚜욱 떨어졌다. 눈 뜨기가 힘들었다. 나는 내 눈 하나 어찌하지 못하고, 머리 하나 어찌하지 못하고 비틀비틀 흔들리고 있었다. 누군가 이제 그만 잠들어라, 하고 나를 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 하고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보니 익숙한 그 얼굴. 내가 자장가를 불러줄게. 하고는 내 등짝을 따라 토닥이며 귀에 익은 자장가 소리가 울렸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그 소리가 그리 무서웠을까. 마치 나에게 그만두라고 이야기하는 듯해서, 마치 나에게 포기하라고 이야기하는 듯해서.
벌떡 일어나 가방을 챙겼다. 필통, 책, 배터리, 잡다한 것들을 가방에 욱여넣고 일단 일어서고 봤다. 더 이상은 안될 것 같았기에. 저는 오늘 밤 곤히 잠들 수 있을까요? 저는 오늘 어떤 꿈을 꿀 수 있을까요? 어느 누구 하나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곁에 아무도 없었기에. 그날 밤 나는 아무런 꿈도 꿀 수 없었기에.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그날 밤에도 나는 잠들 수 없다는 것을. 집으로 가는 길이 매우 깜깜하고 무서웠다. 집으로 가는 길이 맞을까? 모르겠다. 그저, 집이 나오기를, 하고 걸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