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이변 (2010)

by 김민주

기상이변(2010)


기상이변. 그랬다. 오늘 아침 텔레비전을 켰을 때, 지난주 즈음엔 노란 우비에 알록달록한 장화를 신고 생글생글 웃으며 날씨를 짚어주던 기상캐스터 누나의 말에 의하면, 기상이변이라고 했다. 이상한 일이지. 8월 한여름에 저 여자, 빨간 목도리에 코트라니. 그리고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졸다가 짝꿍이 팔꿈치로 쿡쿡 찌르기에 고개를 스윽 들어 올렸다. 선생님의 수업이 한창이었고, 꽤나 많이 졸았는지 눈이 뻑뻑해 칠판의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눈을 대충 비비적대고 고개를 돌려 빈자리를 쳐다보았다. 8월, 지구온난화다 뭐다까지 더해져서 더위가 한 때일, 에어컨을 추울 정도로 빵빵하게 틀어 놓고 보충 수업을 들을, 하루에도 두세번씩 아이스크림 생각이 나야할 지금, 세상이 하얗게. 창밖으로 눈이 내리고 있다. 정말 '하염없다'라는 말이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일주일째, 눈은 하루 한 시도 쉬지 않고 계속되고 있었다. 매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길가에 염화칼슘 쪼가리들이 뿌려졌다. 반 아이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했다. 그들의 고민이라면 수험생의 입장으로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나, 몸이라도 상하면 어쩌나 그게 전부인 듯 했다. 고3 여름, 갑작스러운 기상이변으로 눈부시도록 새하얀 눈이 내리고 있다.

나는 문득 답답함을 느껴 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무거운 동복 마이가 답답했다. 마이를 벗어 의자에 걸쳐 놓고 다시 펜을 들었다. 앞에 앉은 친구가 마이로는 추위를 견디기에 부족하다며 껴입고 온 코트의 소매자락이 바닥에 끌리고 있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빈자리를 확인했다. 더운 건 딱 질색이고, 땀나는 건 더 질색이고, 여름이라면 기겁을 하던 아이. 지금 당장이라도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고 투덜대던 자식이, 막상 눈이 오니 덜컥 독감에 걸려서는 눈이 내린 일주일 내내 결석을 하고 있다. 그 뒤로도 두 세번, 수업 중임에도 집중하지 못한 채 힐끗힐끗 빈자리를 확인했다. 짝꿍이 팔꿈치로 계속 찔러대기에 고개를 돌리니 선생님이 매섭게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내가 자세를 가다듬고 헤-하고 웃으니 선생님은 이내 픽하고 한 번 웃고는 다시 칠판으로 몸을 돌렸다. 다시 한 번 휙 비어있는 녀석의 자리를 돌아보고 나 역시 칠판으로 고개를 돌렸다. 진녹색의 칠판, 본래의 색이 뭐였을까 싶을 정도로 하얗고, 또는 노란, 파란, 분홍색 분필가루들이 잔뜩 덮여 있었다. 나는 대뜸 눈 앞이 핑글 도는 것을 느끼고 머리를 감싸 쥐었다. 무의식 중에, 마치 오래된 습관이었던 것처럼 한 번 더 빈자리를 돌아보았다. 내가 종종 수업 중에 돌아보곤 하면 녀석이 시선을 느끼고 역시 내게로 고개를 돌리곤 했었다. 그러고는 한번 씩 웃고는 이내 정색하며 수업이나 들으라는 듯이 고갯짓을 했었다. 마치, 지금 저 자리에 앉아있기라도 한 듯이, 그래서 내게 언제나처럼 고갯짓을 보이기라도 한 듯이, 나는 뚱한 표정을 짓고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다시 칠판을 향했다. 앞 아이의 끌리는 코트자락을 보며 타이를 마저 풀고 윗 단추 하나를 풀었다. 볼펜을 핑글핑글 돌리며 교탁 앞에 서서 목청을 높이고 있는 남자에게 관심을 주려 노력했다. 누가 보기에도 그 노력은 뜻만큼 이뤄지지 않았지만.

얼마나 아픈 걸까. 도대체 일주일이나 빠져야 할 만큼이나 아픈 걸까? 대뜸 눈이 미워졌다. 당분간 이런 현상이 계속 될 것이라더니 이내 생글대며 건강을 잘 챙길 것을 당부하던 기상캐스터 누나마저도 미웠다. 애꿎은 그 여자더러 '이미 아픈 사람은 어쩌라고'라고, 웬 가당치도 않은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밥은 잘 먹고 있을까. 점심시간이 되었지만 녀석 없이는 밥 먹기도 내키지 않아 혼자 교실에 남았다. 팔을 책상 위에 두르고, 고개를 묻었다. 평소 같았더라면, 적어도 지난주만 했더라도, 이렇게 누워있으면 어김 없이 공부 안 하냐, 라며 내 머리카락을 콱 잡아 올렸을 녀석이 있었을걸. 이상하리만치 자꾸 생각나는 녀석이 미웠다. 책상 서랍에서 핸드폰을 꺼내 뒤적거리다가 결국 문자를 한 통 보냈다. '괜찮냐, 많이 아파?' 그리고 잠이 들었다.


한 숨 자고 일어난 뒤에도, 수업을 두세 시간 더 듣고 난 후에도 녀석에게 답장은 오지 않았다. 나는 간간히 핸드폰을 꺼내 확인해 보고는 곧 실망하고 시무룩해졌다. 반장인 내 짝꿍은 그럴 때마다 힐끗 쳐다보고는 눈치를 주곤 했다. 도대체 무엇이 이렇게 불편하고 답답한걸까. 결국 소매마저 걷어 부치고 앉아 문제집을 뒤적거리다가 창 밖을 보았다. 옥상 위에도, 난간 위에도 하얗게 눈이 쌓인 일학년 건물. 도저히 집중을 하지 못하고 눈만 데굴데굴 굴리다가 다시 엎드렸다. 공부도 잘 되어왔고, 딱히 다른 문제도 없었다. 수능이 코앞이라는 선생님의 협박 어린 말씀에도 단 한 번 눈 한 번 깜빡 않고 침착하게 잘 해왔고, 어느 날 받은 찹쌀떡도 담담히 먹었었다. 이렇게 집중 안되고 답답한 마음이 들기는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았다. 저녁시간에 뒷자리 애한테 얻어먹은 커피 덕에 잠은 더 못 자고 엎드려 만 있었다. 핸드폰을 다시 한 번 꺼내 보고 또 다시 시무룩해지고. 밖에선 정말 펑펑 내린 눈에 신난 초등학생 꼬맹이들이 눈싸움을 한다고 야단 떠는 소리가 들렸다. 듣기에 딱히 거슬리지 않아서 그쪽에 잠시 신경을 두다가 잠들었다. 다시 일어났을 땐 답장이 와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밖에선 정말 펑펑 내린 눈에 신난 초등학생 꼬맹이들이 눈싸움을 한다고 야단 떠는소리가 들렸다. 듣기에 딱히 거슬리지 않아서 그쪽에 잠시 신경을 두다가 잠들었다. 다시 일어났을 땐 답장이 와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스스 일어났을 땐 자습이 시작한 후라 주위가 조용했다. 고3., 우리는 이미 죽기라도 한 듯 숨죽이고 공부한다. 다시금 답답함이 느껴져 한숨을 뱉는다. 녀석의 자릴 한 번 더 돌아본다. 문득 아까 보내 놓은 문자가 생각나 핸드폰을 스윽 꺼냈다. 아무것도 없다. 서걱서걱 샤프심 갈리는 소리. 다시 팔뚝 위로 고개를 묻는다. 걷어붙여둔 소매 때문에 양 팔이 차게 식어있었다.

차가운 여름 바람에 창문이 흔들린다. 창 밖으로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보인다. 정말 겨울이 되기라도 한 듯, 잎이 하나도 남아있질 못하고 빈 나뭇가지들만 으드득 대고 있었다. 빈 나뭇가지. 괜한 불안감. 두근거린다. 그것을 느낀 순간부터 급격히 얼굴이 달아오름을 느꼈다. 누군가 눈치채진 않았을까 눈치를 살폈지만 모두들 나 따위엔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그 아이라도 있었더라면 금새 눈치채고 종이 쪼가리를 보내오지 않았을까? 가슴이 꽉 막힌 느낌. 영 글자가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펜이 손 안에서 핑글핑글 돌기만 한다. 옆 짝꿍이 옆구리를 쿡 쑤신다. 공부 안 안하냐는 눈빛. 아마 딴청만 부리는 내가 괜스레 신경 쓰였나 보다. 알겠다 몇 번 내두르고 빈 칠판을 보지만 진녹색 칠판과 하얀 분필가루가 소용돌이쳐 섞이고 만다. 머리가 아프다.


8월 이후로도 하루도 빠짐없이 눈이 내려왔다. 운동장이 하루도 흙바닥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간 수업이 많았던 일요 자습 일에도, 수능 날 전국의 어느 수험장에도, 내가 입학통지서를 받고 엄마랑 얼싸안고 소리 질렀을 때에도, 3월 여전히 그치지 않는 눈에, 덥다고 칭얼대던 그 아이가 생각나는 지금에도, 그 아이는 없었고, 없다.


타이까지 단정히 하고 그 아이를 보러 갔었다. 함께 동행했던 반 아이들과 몇몇 선생님들의 얼굴은 쌓인 눈에 빛이 반사되어 비추고 있었음에도 어두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두 번의 인사와 가벼운 목례, 어른이 된 양 반듯이 앉아 싱글싱글 웃어대며 내 인사를 오냐 받아주고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었다. 친하게 지냈던 몇 아이들이 기어코 울음을 터뜨렸고, 울음은 삽시간에 퍼지고 말았다. 결국엔 나까지도 그 아이 사진 앞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그 아이, 죽어버린 것이었다.


버스 정류장에 서서 발아래 치이는 눈을 착착 대고 쳐냈다. 빨간 목도리에 입가까지 푹 묻고, 오지 않는 버스에 성질을 부리며 내려앉았다. 벌써 혼자 이십여분. 왠지 모르게 서글퍼짐을 느끼고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기어코 얼마 지나지 않아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아무도 없는 버스정류장 가득 그 소리가 왕왕하고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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