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행복은 구름 너머의 무지개를 따라갔다.(2020)
내 행복은 구름 너머의 무지개를 따라갔다. 개울물에 휩쓸려 이 바위, 저 바위에 부딪치다가 저 강 아래로 떠내려갔다. 나는 다시 불운과 불행과 절망 사이, 내 정육면체 안에는 이제 구름 한 점 없다. 내 상자를 뚫고 자라났던 버드나무가 폭삭 말라 비틀어지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말라 비틀어진 버드나무 이파리를 따다가 침대 곁에 두고 잠이 들었다. 매일 밤 악몽을 꿨다. 내 상자가 무시무시한 것들로 가득차는 무서운 꿈이었다. 끔찍했다. 나는 버드나무를 뽑아버렸다. 그의 곁에 피어나던 들꽃이 따라죽고 그를 흔들러 찾아오던 바람이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으며, 그 탓에 구름도 흘러들어오지 못하는 상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침대 곁에 두었던 단 한 장의 이파리를 결 따라 찢으며 울었다.
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원래 겁이 많나?’ 나는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고 ‘네?’ 되물었다. ‘원래 겁이 많냐구.’ 나는 두번째 물음을 해왔을 떄에서야 알아듣고 대답했다. ‘네, 원래 겁이 많아요.’ 겁이 많아서 사랑하는 버드나무가 시드는 것이 무서워 뽑아버렸어요. 내 작은 상자에 죽은 이파리들이 가득 차서 발 디딜 틈도 없는 꼴을 보는 게 마음이 끔찍할 것 같아서요. 하지만 빈 상자를 안고 있는 것은 너무도 가벼워 아무것도 안 들고 서 있는 것 같았다. 내 상자는 더 이상의 의미를 잃었다. 내가 사랑하는 버드나무는 없고 빈 상자만 남았다. 상자는 아무런 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어요. 나는 상자를 아무렇게나 굴리기 시작했다. 빈 정육면체는 구르면서도 비어있는 소리를 내었기에 그 소리가 내 가슴을 찢어놓았고, 나는 그 소리를 덮기 위해 소리를 지르며 울어야 했다.
내 행복은 개울물에 휩쓸려 강 아래로 떠내려갔다. 언젠가 잡아두었던 행복들이 소리도 내지 않고 살금살금 떠났다. 정신을 차리니 빈 상자가 흠뻑 젖어 찢어질 듯한 모습으로 강 하류에 떠내려온 후였다. 나는 어떻게 도망간 행복들을 잡아오는지 모른다. 알 수가 없다. 바다로 흘러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허나 나는 물공포증이 있다. 내게 잡히지 않으려고 수영을 해서 도망간걸까. 손으로 찢은 버드나무 이파리 결들이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흩뿌려져 있다. 퍼즐을 맞추듯이 자리를 맞춰 붙이면 모든 것이 되돌아올까? 내게 이파리는 돌아오겠지만 찢어진 적 없는 이파리는 돌아올 수 없다. 그게 나를 절망으로 끌고 들어간다.
어느샌가 내 정육면체가 작아졌어요. 멋드러진 버드나무가 자라던 상자는 찢어지고 해져서 덧대어 붙이길 반복하다보니 나만 겨우 들어갈 크기가 되었더랬다. 나는 그곳에서 살기로 한다. 찢어지고 낡은 상자 안. 더 이상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살 수 없는 좁은 곳. 아늑함도 없이 불편하기 짝이 없는 그런 곳. 밤이 되면 잠이 들며 그런 불안감에 휩싸인다. 아아, 나는 내일 아침에도 이곳에서 깨어나는 걸까? 나는 낡아 빠진 상자 안에 산다. 언제 찢어질 지 모를 불안한 상자. 그래도 나는 그 안에 들어간다. 버드나무의 그늘이 그리워서. 허나 그곳에 버드나무의 그늘은 없다. 대신 언제나 어둠이 존재한다. 나는 양초 하나 들고 들어가지 못하고 매번 맨몸으로 어둠 속에 뛰어들었다. 어느 날은 잠에 들 무렵 상자가 통으로 강 아래까지 떠내려가는 바람에 안까지 물이 들어차곤 했다. 나는 쏟아져 들어오는 물길 속에서 숨을 쉬지 못하며 이렇게 생각한다. ‘버드나무야, 미안해.’ 내가 너를 지키지 못해서, 내가 나약해서, 내가 너를 뽑아버려서. 내가 너의 잎을 갈기갈기 찢어버려서. 내가 너를 사랑해서.
매일 아침 해는 떠오르는데 나는 굳게 닫아둔 상자 속에 갇혀 햇빛 한 올 받지 못한다. 아아 비가 오던 그날 너와 봤던 무지개가 떠올라. 그때 내 행복이 그 무지개가 좋아서 따라 나선 것은 아니었을까? 좁은 정육면체 안에 나만 겨우 들어앉아있는데도 그 틈바구니가 비어있는 것이 슬퍼서 나는 비가 오는 날을 기다린다. 비라도 들이닥쳐서 내 옆에 있어줘. 외롭고 무서워. 아아, 나는 내일 아침에도 이 곳에서 깨어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