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볍고 아주 무거운 (2023 겨울)
창 밖으로 굴러다니는 플라타너스 이파리들이 웬일인지 마음속에 들어온 것이다. 차고 건조한 바람을 맞고서는 밟으면 파사삭 부서져 버릴 그것들이 길바닥을 구르고 구르다 내 눈에 밟혀서 마음속으로 굴러 들어왔다. 따듯한 히터 바람을 맞으며 태연히 앉아 그림을 그리던 내가 자꾸만 창 밖으로 고개를 돌리는 이유일 것이다.
언젠가 또, 오늘처럼 차디찬 겨울이 있었음에도, 그런 겨울을 수도 없이 만났음에도, 나는 그 찬 바람에 자꾸만 마음을 빼앗겨요. 비어있는 마음속으로 바람이 들어와 떠다니다가 소용돌이를 쳐요. 나는 이렇게나 줏대도 없이 소용돌이치는 바람에 휩쓸리는 사람이에요. 뱅글뱅글 도는 마음을 묶어둘 곳이 없어서 바람 속으로 던져버려요.
따듯한 바람을 쫓아 해가 도망가버린 탓에, 꽤나 해가 짧아졌다. 밖으로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벌써 기울기 시작한 햇빛을 구름 저편으로 기우는 그 빛을 잠시 바라봤다. 곧 사라질 것이 아쉬워, 그 아쉬움을 모른 체하려고 다시 붓을 집어 들었다. 헤드셋을 따라서 자꾸만 누군가의 노래가 흘러 들어왔다. 자꾸만 붓 끝이 멈칫대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서 대충 내팽개쳐두고 노트를 꺼내 들었다.
저 멀리 소용돌이를 따라 달아나는 마음을 1mm 정도 될 이 펜 끝으로 잡으려고 애를 써요. 어떤 바람이 소용돌이를 만들어 마음을 날려 보내는 걸까요, 사실은 그저 어떤 바람에도 쉽사리 흔들리는 마음을 가진 내가 소용돌이를 만들었을 텐데도요, 저는 자꾸 이 겨울을 원망하고 죄 없는 겨울이 빨리 지나가길 빌어요. 이 펜 끝으로 마음을 붙잡아 두는 것이 내게 벅차서요.
나는 아주 가볍고 아주 무거운 마음을 가졌다. 이 녀석은 작은 바람에도 떠나갈 듯 펄럭이면서도 내가 붙잡기가 힘들 만큼 제멋대로인 것이다. 내가 이것을 어떻게 할 도리가 있을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매어놓아야 차분히 내려앉아있을까. 어찌할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오늘도 멀리의 플라타너스 이파리에 시선을 빼앗기고 시간을 보내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