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2023)

by 김민주

외로움(2023)


어디선가 피어난 꽃에서 바람을 타고 흩날린 씨앗이 내 앞으로 떨어져 또 다른 꽃을 피웠다. 이 꽃은 또다시 날아가 어딘가 누군가의 앞에서 또 꽃을 피울 것이다. 내 앞에 피어있는 이 꽃은 어떻게 질까, 그리고 어디로 날아가 어떤 꽃을 피울까.

참 모를 일이죠. 사는 일이란. 어디서 시작되었을지 모를 파도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을 던져놓고 수면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어요. 때때로 나는 무릎 아래로 얕은 수면을 두고 서서 멍하니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해를 바라보기도 했죠. 어느 때엔 허리 즈음 오는 데까지 들어가 튜브 위에 누워 있기도 했었고요. 파도를 흉내 내어 팔을 휘적이기도 해 보았죠.

내 꽃을 이 파도에 띄워 보낸다. 열심히 팔을 휘적거리면 바다 저편의 어느 곳에는 파도가 되어 도착하진 않을까. 그러면 거기서 평화롭게 물놀이를 하던 어느 사람이 내 꽃을 주워다가 내게 돌려주지 않을까. 그러면 나는 내 꽃을 돌려주려 이 바다를 건너 내게 와주어서 고마워요, 하곤 손을 꼬옥 잡아야지. 그 따듯한 사람의 손은 물을 건너왔으니 차지 않으려나, 쪼글거리지 않으려나, 그러니 내 두 손을 따듯하게 데워놓아야겠다고 그런 멍청한 생각을 하면서 손바닥을 자꾸만 문지른다.

그러나 내 꽃을 주워온 그 어느 사람에게 나는 자꾸만 그것을 안길 것이다. 가지고 있기에 벅차다고 팔을 열심히 휘적대며 보낸 내 꽃을 나는 아직도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당신이 갖고 있어 줘, 잠시만 들어줘, 잠시면 돼. 그리고 나는 등을 돌리고 서서 그 사람이 꽃을 어떻게 해주길 바랄 것이다. 알아서 해주길 바랄 것이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당신이 아끼고 보듬어서 더 아름답게, 더 곱게 피어날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그런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았어요. 꽃을 어찌 피우는지도 모르고 어디선가 넘겨받은 이 씨앗을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누군가에게 떠넘겨요. 내 꽃을 피워주지 못하는 누군가를 나는 탓하게 될지도 모르죠. 한편으론 누군가에게 꽃을 맡긴 나 자신을 한심스러워하기도 하면서요. 그래서 나는 잠시 씨앗을 그대로 손안에 쥐고 있어 보기로 해요. 꽃이 피지 않아도 되니,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해 보기로 해요. 튜브 위에 앉아 주먹 안에 씨앗을 꽉 쥐어 배 위에 얌전히 올려두고 멍하니 구름을 보아요.

나는 욕심이 많아 그런지 이 작은 씨앗마저도 버리지 못하고 꽃으로 피우고 싶어 한다. 손 안의 씨앗을 가만 들여다보면 알게 되지 않으려나. 어떤 물을 줘야 할까. 어떤 곳에서 햇빛을 맞으면 좋을까. 어디선가 날아온 남의 씨앗이 피어나는 것을 보면은 내 씨앗을 피우는 방법도 알게 되진 않으려나. 그러면 내 씨앗도 꽃이 되지 않으려나. 그러면 그 꽃이 또 다른 씨앗을 날릴 수 있게 되지 않으려나. 씨앗이 꽃이 되면은, 그리고 다시 다른 씨앗을 날리면은, 파도가 아니라 바람을 타고 날아간 씨앗을 따라가 그 누군가를 만난다면은, 그러면은 그때는 그에게 내가 도리어 알려주면 되지 않으려나. 나는 그제야 너의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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